비현실 세계

by 교씨

나는 자주 "여기"에 없곤 한다.

눈은 반쯤 풀린 채, 눈앞에 펼쳐진 지금의 세상은 흐려지고, 몽상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을수록 눈에는 힘이 들어가고, 시야는 선명해진다.

내가 원하던 모든 것들이 이 안에 있다.

좋은 것들이 가득하고, 좋지 않은 것들마저 감내할 수 있는 너그러움까지 주어졌다.

바라던 바를 모두 이룰 수 있는 나의 비현실 세계가 그렇게 시작된다.

늘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하루에 무너지는 내가, 이곳에선 아랑곳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 사이에 피어난 예쁜 것들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고, 글로 남긴다.

불완전함을 견디지 못해 기인한 강박은 더 이상 나를 속박하지 못한다.

녀석은 커다란 날갯죽지를 펼쳐 훨훨 날아가, 자유라는 유산을 내게 남긴다.

사람들에겐 친절을 베풀고, 따뜻한 사랑을 나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헤프지 않나 싶을 정도로 애정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주저로 가득 찬 마음은 용기가 밀고 들어와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가 끝내 쟁취하는 기적도 일어난다.

그렇게 이곳에서의 나는 온전하게 완벽하다.

하지만 어느새 몽상의 문밖으로 내던져졌을 때,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다.

하루는 늘 엉망진창이었고, 나는 매번 불완전함을 견디지 못해 무너져 내린다.

차가운 냉소를 마시고는 반짝이는 그들의 눈동자를 외면하고, 강박은 커다란 날개를 펄럭거리며 날아들더니 나를 낚아챈다.

사람들에겐 꾸겨 넣었던 친절을 애써 건네고, 여전히 사랑에는 인색하다.

가까운 사람에겐 말라비틀어진 사랑이라도 꾸역꾸역 전해보려 노력해 보지만 그마저도 미루기 십상이다.

용기를 삼킨 주저는 기적 따위는 일으키지 않고, 결국 그녀를 먼발치서만 바라보게 한다.

이곳에서의 나는 완전하게 비겁하다.

어쩌면 영영 죽지 않을 삶, 하지만 영원히 죽어있는 삶.

단 한 번이라도 깨어나 살아볼 수 있을까.

깨어난다면 여태껏 본 적도, 느껴보지도 못한 진짜들을 마주할 것이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사랑과 고통, 환희와 슬픔, 그리고 뭉뚱그린 채 말려있던 감정들.

그것들을 온몸으로, 최선을 다해 받아내고 싶다.

찢어지고, 찔리고, 포근하고, 향이 나기도 하는 삶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마주하며 꼭 껴안고 싶다.

그러려면 현실의 무겁디무거운 비참을 견뎌내야 할 테지만, 비참함을 견디는 일이 비참해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하는 수 없다.

못마땅한 현실 세계에서 도망쳐 나만의 유토피아인 “비현실 세계”에 발을 들이는 수밖에.

오늘도 난 그곳에서 온전하게 완벽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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