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스키스와 하우스, 함께 할 수 없는 사람

by havefaith

다음 웹툰 <에스키스>가 끝났다. 미대에서 만난 어느 cc. 돌직구를 던지며 재능있는 시인과 늦게나마 그림을 배워나가는, 조금은 타인을 신경쓰는 소라. 갑자기 결말로 다가서는 듯 싶더니 쿨내나는 시인이처럼 쿨하게 결말이 났다. 그들은 많은 cc처럼 헤어졌다. 그는 헤어지고 아무렇지 않지 못했다. 가만보자. 그러면 이게 쿨한건가?


시인이는 ‘그답지 않게’ 소라 때문에 많이 아팠다. 헤어진 이유는 있을 법한 이유였다. 그녀는 술김에 오해로 생긴 일을 숨기기 위해 그와 헤어지자고 했다. 시인은 이미 그걸 알고도 힘겹게 모른 척 해왔는데도. 그는 그녀를 무척 사랑하지만 그녀는 그녀를 위해 그와 헤어지자고 했다.

이유야 이해할 수 있다. 미안해서, 무서워서, 상처주기 싫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그러나 시인이는 그 말에 단박에 헤어진다. 뭐가 됐든, 그녀는 그를 딱 그정도만 생각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에게 미안하다고 사정을 설명하는게 아니라 도망가고 차라리 헤어지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정도로만. 우스울 만큼 매정하지만 그 말이 이내 맞다는 생각을 한다.


그와 소라는 다른 이와 함께 하고 있다. 시인에게 소라라는 존재는 비슷한 이름이나 모습만 봐도 심장이 조이게 만들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잠깐씩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일이다. 그가 남긴 말은 나의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꼭 소라였어야만 했나?’ 별 말 아닌데 이름을 바꿔 생각하니 충격적일만큼 정신이 맑아졌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나 역시 꼭 그 사람이어야만 했던 건 아니었다.


요즘 다시 보는 미국드라마 M.D. Dr. House. 시즌1-2. 우리의 하우스 박사님은 생각보다 인기가 많다. 시즌 1에서는 캐머런이 그를 좋아했고 데이트를 하자고 하기도 한다. 아주 짠내나게 그는 그녀가 자기를 좋아한 것은 자신이 구제불능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에. 그게 데이트에서 할 소리인가. 하지만 그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나이도 많고 잘생기지도 않고 다리마저 한 쪽이 불편하고 여러모로 별로인 그를 좋아하는 건, 시한부를 선고받고도 결혼했던 캐머런에겐 ‘기사’나 ‘구원자’ 에 가까운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어쩌면 캐머런은 그 말에 놀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양쪽 모두 이해가 간다.

캐머런이 가식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동정과 연민은 생각보다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는 것이다. 게다가 하우스는 동정과 연민 더하기 플러스 알파로 못된 남자의 매력이 있다. 성격은 더러워도 자기 분야에서는 역시 한 가닥하니까. 하우스가 너무 비관적이라고 생각하나? 누가 자신이 그렇게 좋고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겠나. ‘도대체 왜 나를 싫어하지?’와 ‘도대체 왜 나를 좋아하지?’중에 무엇이 더 와닿는 질문인가. 누가 자신을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고 하면 먼저 의심할 수도 있다. 그가 보는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 걸까. 혹시 착각하는 건 아닐까. 난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닌데.


하우스는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즌2를 보면 스테이시를 보는 그의 눈빛이 아프다. 캐머런도 그래서 아프게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스테이시와 하우스는 5년을 함께 했고 헤어졌다. 그놈의 망할 다리 때문이었다. 평생 절름발이가 되었지만 그를 살리려고 그녀는 수술을 강행했다. 다리엔 보기 싫은 흉터가 생겼고 고통이 너무 심각해 윌슨 이외의 친구 바이코딘 알약을 달고 산다. 그녀의 결정은 틀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는 그래도 내 다리라며 이를 깨물었다. 차라리 죽는게 낫다 싶었으니까. 자신은 이렇게 고통스럽게 걷지 못하고 그녀가 너무나 멀쩡하게 걷는다. 그녀가 미웠고 자신도 싫었을 것이다. 고통에 빠진 하우스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녀는 그를 떠났다. 하우스는 절름발이이고 혼자가 되었다. 다리도 아프고 마음도 만신창이다.


스테이시는 지금 다른 이와 함께 있고 원인 모를 병이 의심되는 그 남자 때문에 하우스를 찾았다. 사랑하는 여자의 남자를 치료해야한다니. 질투를 한다. 원인은 발견했지만 그 남자 역시 병으로 걷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자신 때문에 다시 만난 스테이시와 하우스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그럴만 하다. 하우스는 (남들에게) 착한 사람은 아니다. 자신이 좋으면 그래도 해 본다. 하우스는 느끼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그러나 유치할만큼 저돌적으로, 그녀에게 진심을 전한다. 그녀는 사실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하우스는 재밌고 이상하다. 첫 만남은 재수없었고 거지같았지만 금방 같은 집을 쓸만큼 매력적이다.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고른다면 그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맞아, 너가 바로 내 반쪽이야. 하지만 우리는 함께 할 순 없어.

그런 그녀에게 또 온갖 마음을 다해(안어울리는 편지까지) 아낌없이 다가간다. 그녀가 마음을 열었고 정말 완전한 재결합이 눈앞에 있다. 그녀는 가만히 있으면 그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 때, 하우스는 제동을 건다. 다시 시작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는 저번처럼 또 다시 헤어질 것이라고 한다. 잘 되지 않을 것이라 한다. 바뀌는 게 없을거야. 나와 있으면 당신은 불행해질거야. 그토록 바라던 그녀와, 사랑하는 스테이에게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얘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할 수 없다고.

하우스의 유일한 친구 윌슨은 그를 비난한다. 하우스의 뛰어난 면이 불행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는 겁쟁이라고, 사실 그는 비참해서 뛰어난게 아니라 그저 비참한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가 과연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을까?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평범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는 있다. 매일 날밤을 샐 수도 없고, 나나 내 일보다 누군가를 함께 생각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비범함이 멸종되지는 않을 일이다. 이렇게 이별을 고할 만큼. 막말로 하다못해 이상한 사이라도 유지할 순 있다.

하우스를 보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윌슨과 달랐다. 그는 다시 혼자 남고 싶지 않아서 그녀를 보낸 것이다. 그녀가 떠난 5년은 지옥같았고 윌슨이 그를 거두느라 아주 힘들었다. 그는 그녀가 원할 때 늘 곁에 있어줄 수 없고, 풀리지 않는 케이스가 있으면 그녀와의 밤보다 퍼즐을 선택한다. 자신도 그녀도 변할 수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그녀를 다시 아프게 하고, 그 역시 다시 만신창이가 될 것이 보인다. 차라리 그는 비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랑조차 버리는 비참하고 불행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굳이 진심을 드러낼 필요는 없으니까.

시인과 하우스가 그녀들과 행복하길 바라지만 그렇지가 않나 보다. 행복이란 건 무엇인가. 소라와, 스테이시와 함께 하는 게 행복인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좋아하면 그런 고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걸림돌은 대체로 결국 상대방을 그 정도 밖에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원래 이래, 라는 말로 맞춰보지도 않고 맞춰달라고만 하는 이기적인 모습이라 생각했다. 그건 관계의 우위나 상대방의 성향을 이용하는 거란 생각도 했다. 결국 그 모습을 받아들이거나 멀어지게 되니까. 여전히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가끔 그들이 생각나지만 그들도 내가 생각날까? 마음의 온도 차이인지, 만들어진 성향의 차이인지 별 시덥잖지만 떠오르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고민을 하곤 한다. 나만 그런 건가? 내가 애매모호하고 우유부단해서 이러는 건가? 오던 잠도 떠나버린다.

단순하게 살기 위해 내렸던 결론은 고민이 되었다. 아니다 싶으면 다 끊어버리고 싶었다. 세상은 좁고 사람은 가까운 걸 아는데도 신경쓰는게 피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어려웠다. 역설적으로 그냥 좀 복잡할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고 해결이 되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아낀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과 함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좋아해도 만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나을 수도 있다.

나는 이렇고 그 사람은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관계처럼 한쪽이 더 희생하거나 한쪽이 더 아끼는 관계일 것이다. 그러나 이유를 묻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샅샅이 뒤집어서 확인한다 해도 그걸 제대로 확인할 순 없을 것이다. 그 사이를 어느 한쪽에서도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건 그래도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걸 말할 순 없다. 평생을 기약하는 게 바보 같은 약속이듯이, 늘 함께하자고, 좋으면 함께 해야한다는 것 역시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토록 아끼던 사람은 쳐다보기도 싫은 사람이 될 때가 있고 열병처럼 앓고 불면증처럼 뒤척이던 그 시간 역시 언젠간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허탈하면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당신의 소식이 궁금할 때가 있다. 기분이 좀 그렇다. 나는 이런데, 그러는 당신은 나를 간혹 생각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반갑고 즐겁다가도 다시 떠올린다. 상처받는 게 두렵다. 두려워서 마음과 시간과 기회를 놓쳐 후회한다. 바꿔보려고도 한다.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제일 바꾸고 싶던 것들. 결국 바뀐 게 없다. 결국 나는 그 질문에 봉착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나를 이런 사람으로 받아들여줄 수는 없는 것인가. 내가 이기적이라 부르던 그 ‘나는 원래 이래’라는 이유 때문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우리는 계속 이런 사이가 될 것이다. 어느 날까지 당신과 연락하겠다는 말을 우리는 하지 않았다. 언제든 연락은 끊어질 수 있다. 어느 날 아무 연락도 오지 않는 날이 점점 가까워질 것 같아 두렵다. 계약처럼 권리와 의무를 주장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런 애매한 사이에 맞는 애매한 답을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 사이를 막고 있는 것도, 열고 있는 것도 나 자신이다. 함께 하고 싶다고 그렇게 헤매면서도, 함께 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를 가진 원인은 여기에 있었다.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낀다는 이유로 꼭 함께 있어야 하나? 어느 사이든 이별을 고민하거나 헤어지는 것은 결국 그게 아니라는 반증처럼 느껴진다. 꼭 그 사람이어야 하는 건 애당초 없는 걸지도 모른다. 마음에 오래 머무를 수는 있지만 언제든 떠날 수도 있다. 사람을 통해 나를 보았고 멀어진 사람들은 함께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꼭 그 사람이어야 하는게 아니다. 반대로 꼭 나여야 하는 거다.

아직 당신이 궁금하다. 핑곗김에 연락을 한다. 연락하지 않을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해도. 함께할 수 있고 없고는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다. 끊어지지 않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 진지하고 재미 없는 얘기는 언젠가 해야겠지만.

keyword
havefaith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구독자 997
매거진의 이전글하누만 아사나, 앞뒤다리찢기의 시작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