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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를 빚는 옹기장이

by have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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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키고 싶은 때가 있다. 하루나, 몇 년, 인생이라기엔 거창하고 일상이라기엔 꽤나 진지한 내 시간 속에. 후회라기 보다는 멀리서 봤을 때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떠오를 때마다 만약에 이렇게 했다면, 그런 일이 없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고. 그건 호기심이었고, 마음의 빚이었다. 대체로는 바꿀 수 없는 흑역사가 대부분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어리석은 실수를 대학생이 되어서도 한동안 생각했다. 친구라 생각했던 이가 등 뒤에서 내 욕을 속삭이는 걸 들었다. 어느 순간 반 친구들의 표정이 똑같이 바뀌었고 선생님이 있는 자리에서조차 내 욕을 했다. 그 때도 나는 모른 척 했다. 밥 먹을 사람은 있었고, 공부는 알아서 하면 됐다. 어머니는 그 때 어머니대로 집에서 힘들었으니 무소식이 희소식일 것이니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언니도 예전에 왕따는 당했다고 했다. 언니도 밥 먹을 사람은 있었고 공부는 알아서 했다니까. 엄마는 몰랐고 한참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선생님이 그리 믿음이 가지 않았다. 괜찮냐고 물어보기만 했지 누구 하나 선뜻 도와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무너져서 펑펑 울어버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우리 동네 만화책방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욕을 했다. 다 지난 일인 줄 알았는데. 역시나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건물을 나오자마자 친구에게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남들만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어물쩡 넘어가려다 실패해서 들켰던 나의 어리석은 짓도 많았다. 툭 내 뱉은 말이 과해서 후회한 적이 많았다. 의도가 어찌 됐든 입이 방정이었다. 늘 덜렁거렸고 꼼꼼하지 못했다. 하다못해 마킹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대학에 못가는 건 아닌가 했다. 다른 친구들은 해방감에 웃고 마중나온 어머니와 웃을 때 수능을 잘 봤는지 마음에 걸려서 웃지 못했다.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다들 왜 그렇게 날아갈듯이 기뻐했을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렇게 신이 난 적은 없었다. 어머니는 이미 딸들을 대학을 보내보았기 때문에 사정을 알아서 그랬을 거고, 나는 그런 어머니와 언니들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은 시작에 불과하다는데 시작을 삐끗할까 걱정해야 했다.소리가 들릴까 이를 깨물고 등으로 울었다. 하늘이 자주 무너질 듯 했다. 그럼에도 한번도 무너지진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서 내 머리를 온통 괴롭혔던 일도 지금은 옛날 일이 됐다. 새터도 못 가고 학교에 처음 간 날 나만 친구는 커녕 아는 사람 하나 없다는 느낌에 등골이 서늘했다. 아무 말도 없었는데 '쟤는 누구지?' 라는 말이 표정으로 다가왔다. 주변에 앉은 친구에게 어색하지 않은 척 먼저 말을 거느라 진땀을 뺐다. 대학에 적응하지 못할까봐 안절부절했다. 다들 잘나보였고 나는 혼란스러운 척 하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많이 찾아보았다. 친구가 많지도 않았는데 누군가에겐 어이없는 배신을 당하고, 모욕적인 말을 듣고, 때로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은 무관심하게 마음을 후벼팠다. 그게 언제적일인데 그러냐, 언제까지 그럴거냐고 자문도 했다. 놓고 싶지 않아서 그런게 아니라 놓지 못했다. 상처를 준 이는 그게 뭐라는 듯이 나아갔다. 쿨하고 구질구질하고를 떠나서 아픔을 소화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와중에도 자기연민에 빠진 건 아닌가 싶었고 먼저 알아차리지 못했던 내 부족함이 화가 났다.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린 게 억울했다.


벽을 쳤고 까칠하고 모진 말을 했다. 목적 없는 사람은 없는 건가. 사람은 마음대로 안되니 공부를 하자. 공부는 사람처럼 떠나버리진 않으니까. 그런데 공부도 마음대로 되진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에게 맞는 것인가, 나만 꿈이라고 좋아하고 사실은 자격이 없는 건 아닐지 그 문제를 붙잡고 있었다. 뛰어나지 못한 건 아닌가, 그 꿈을 찾아나설 의지는 있나, 그런 것도 없이 경제적인 뒷받침을 받을 수 있나. 사람 문제는 머리론 아는데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했고, 진로는 마음을 따르는 게 맞는데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했다. 베개는 젖지 않았지만 이제는 소리도 없이 주룩주룩 울었다.


직장을 다니고 나서는 그마저도 잊힐 새로운 일이 생긴다. 여긴 그 때와 다른 '더 어른'들이 있는 곳이라 실수할까봐 걱정했고, 실수가 생기면 또 마음졸이며 해결해야 했다.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 딸이고, 부모님이실 분들 중에서도 내 마음이 먼저라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승진을 위해, 상사에게 좋은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티 나는 일은 잘하고 티나지 않는 일은 다른 이들이 허덕이게 했다. 무능력하지만 자신을 능력있게 포장하는 아랫 사람과 비판하지 않고 그 아랫사람을 곧이 곧대로 믿어버리는 윗 사람. 그 사이에 끼어서 이리 저리 치이는 '좀 더 아랫 사람'. 위아래로 훑어보며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시선도, 웃자고 하는 소리라면서 듣는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이야기, 신분에 따라 생기는 고충, 다방면으로 폭력적인 언사.


묵묵히 일하는 이들보다 좋은 소문 하나가 더 의미 있고, 원칙 없이 결정이 내려져도 그 결정은 그대로 따라야 한다. 사과를 받는 일보다 사과해야 할 일이 많고, 감사하지 않아도 감사하다는 말은 입에 붙었다. 참신한 아이디어는 좋지만 윗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참신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고, 자유로운 의견을 내보라고는 하지만 윗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자유는 찾기 힘들었다. 사회생활에 많은 기본과 인성, 능력이 필요하다지만 입사 후 연수 중 어렴풋이 들었던 그 말이 정답이었다. '윗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맞추는게 현명하다고. 기본도, 인성도, 능력도 '윗사람'이 결정할 때가 많았다. 반평생이 넘게 시험을 보아서인지 '출제자의 의도' 정도로 생각하고 넘겼던 말이었다. 문제는 틀려도 되는데 사람과 어긋나면 아주 힘들어지는 건데도 말이다.


그 와중에 나는 이미 출제자의 의도만 파악하느라 내 의도를 잃어버린 건 아닌가 불안했고, 윗사람의 생각만 따르다 보면 나는 사실상 없어지는 건 아닐까 그 고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내가 '윗사람'이 되면 '윗윗윗..사람'의 의견만 맞추며 평생을 보내다 자리를 물러나야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상상을 하면서. 내 자리가 생기는 것도 고생이지만 자리라는 건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 나만 앉을 수 있는 자리란 건 없을 것이다. 내가 사라진대도 언제 그랬냐는듯 자리는 새 사람을 필요로 하고, 앉힐 것이다. 일을 배우는데는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지만 사람으로선 자존심을 내려놓기가 힘들다. 나보다 어른들에게 받는 상처는 티 안나게 울고 속을 끓이게 했다. 혼자 있을 때 소리 내어 펑펑 울게 만든 걸 보면 더 고난도의 , 고품격 상처가 많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 때야 돈을 내고 다녔고, 지금은 돈을 벌러 다니니 더 힘든 건 맞겠지만 진짜 힘든 건 업무 보단 대체로 사람이다. 아직도 물음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걸까? 무엇이 현명하고 옳은 것인가?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윗윗윗...사람'은 물론 '윗사람'들처럼 나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일 수도 있다. 아찔하게 상상력을 부려보면 나중에 내가 '윗' 딱지를 붙인 사람이 되었을 때 다른 모습일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이 똑같거나 더 심한 불평을 하게 만들진 않을까? 내 부족한 점을 돌이키진 않고 열정이나 포용력 역시 미달인지 '아랫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숲은 시들어 가는데 내 앞의 풀포기 하나만 공들여 키우는 걸 답답해할지도 모르고. 실제로 내가 모르거나 놓친 부분들을 꼼꼼하게 놓치지 않는 모습에 갈 길이 멀다고 느낄 때도 많다. 상하관계를 떠나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 답답함을 풀러 피곤한 저녁에 시간을 내어 술잔을 채우고 식사를 한다. 너무 앉아 있어서 몸이 무거워진 것 같다는 둥, 한 해가 갈 때마다 체력이 닳는 게 느껴진다는 둥, 일만 하지 말고 다른 것도 배우면서 해야 되는데 쉽지가 않다는 둥, 아이를 기르느라 일하기도 바쁘다는 둥, 온갖 이야기를 직접 만나고, 전화나 카톡을 하며 나누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해도 우리가 서로를 공감하는만큼 이해하지는 못하리라. 우리는 그 곳에 있고, 그 사람들을 알고, 비슷한 일을 직접 겪었으니까.


상처와 고통, 기억. 그 모든 걸 흑역사라 칭한다면 흑역사는 간헐적이지만 만성적으로 언제든지 있을 것이다. 정말 사람 못 살라는 법은 없나 싶은 게 그렇게 괴로웠던 일이 이제는 머리 속에 굳이 떠올리려고 하지 않는 이상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늘 새로운 고통으로 대체된다. 퀘스트를 깨는 것이다. 평생 정해져 있는 고통이나 흑역사의 총량이 배분되어 있듯이. 이것도 미리 아프면 나중에 덜 아플 거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아주 괴롭지만 그래도 지나갈테니 힘을 빼고 덜 다칠 준비를 하라고 해야 할까. 버틸 생각만 하지는 말고 아무리 심호흡을 해도 안되겠으면 그냥 드러누워버리라고 할까. 총알이 어디서 어떻게 날아올지 모르는데 온몸을 방탄복으로 두르기도 그렇고, 총을 먼저 어디다 쏘기도 그런 심정이다.


속상한 일은 기쁜 일보다도 먼저 머리 안에서 자리를 잡고 훨씬 더 오래 눌러 앉아있다. 사람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천천히 알아가며 믿음을 쌓아가도 늦지 않고, 내 생각이 다 맞는 것 같아도 내가 놓치는 것이 분명 꽤 많다. 자꾸 머릿속을 벗어나지 않는 감정이나 기억을 아무리 넘어가려 애를 써도 머리가 결정하는게 아니라 내 마음이 결정하는 일이다. 속성 코스로 덜 생각할 수도 없고 덜 아플 수도 없다. 기억나지 않지만 아기일 때부터 흘린 눈물과 쌓아놓은 흑역사를 포함해서 그나마 배운 건 그냥 내처 아프고 골똘히 생각하는 게 제일 빠를지도 모른다는 것. 넘어간 척 하면 나중에 엄한 데 폭탄이 터질 수도 있다. 이제는 시간이 제법 지났다고 생각해도 좀 더 관대하게 기다려도 과하지 않다. 마음은 머리처럼, 세상처럼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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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시간 같은 건 상관 없이, 어느 산 속에서 옹기를 빚는 옹기장이는 아닐까. 스쳐지나가는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처럼. 사랑이 떠나고, 배신을 당하고, 내 옹기만 터진다고 가마에 들어가서 불과 함께 사라지는 그 결말 때문은 아니다. 옹기장이로서의 마지막 하루가 아니라 다르고 그를 옹기장이이게 했던 수많은 똑같았던 날 때문이었다. 우리의 모습 역시 가마에 들어가서 사라지기 보다는 가마 속 타들어가는 불과 터진 옹기를 뜬눈으로, 매운 재를 마시며 계속 바라보고 있는 게 더 가까울 테니까. 흑역사라고 꼭 터진 옹기, 깨뜨려야 할 옹기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흑역사를 빚은 옹기는 오히려 역작이라고 할 만큼 아름답고 멋이 있을것이다. 다른 어떤 기억보다 오래 함께 해왔으니까. 그런 일이 있었지, 그리고 모든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면 더더욱 빛날 것이다. 그 마음까지 오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가. 상상해보자. 흑역사를 빚는 옹기장이를. 매일 온갖 쓰임새에 모양을 지닌 옹기를 만든다. 어떤 건 팔려고 내보내기도 하겠지만, 아픈 손가락 같은 옹기를 도통 말 없이 깨뜨리기만 하는 것이다. 고되게 빚고, 센 불을 맞고, 바람에 말리고, 완성이 되었다고 해도 말을 해주진 않을 것이다. 다만 어느 날 갑자기 느낌표가 하나 뜨는 것이다. 이제는 되었다고. 이제 보내도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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