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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아이아빠 Dec 30. 2020

둘아이아빠

집에서의 내 위치

  주말 평온한 아침. 나는 화장실에서 큰 일을 치루고 있었다. 아침마다 화장실을 가는 편인 나에겐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 오빠, 어쩔 수 없어. "


    변기 옆 문 밖에서 아내의 소리가 들렸다.


  " 나 안에 있어. 저쪽가서 해. "


  갑자기 발로 차인 문이 턱 열리면서 내 왼쪽 허벅지와 무릎을 때린다. 문틈 사이로는 아내가 둘째아이의 엉덩이를 모두 깐채, 한손에는 두 발목을 다른 손으로 등을 받친채 서 있었다.


  " 아, 진짜 이건 너무하자나. "


  화장실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 우리집인데, 왜 궂이 여기로 들어왔는지.. 아내의 표정을 해맑다.


 " 여기에 애기 샴푸가 있어서 그래. 들어간다. "

 " 입장 바꿔 생각해봐. 내가 들어간다고 했으면 난리났을걸?"


  조용히 다시 문을 닫았다. 밖에서는 아내의 웃음소리와 함께 장모님의 나무라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를 낳고서.. 아니 낳기 전부터.. 연애 이후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 집에서의 위치는 바닥이다. 아이의 똥! 만도 못한거 같다. 나도 귀한 집 자식이라 집에서는 오냐오냐 하면서 키워졌는데, 집에서 화장실도 눈치보고 가야 하나 싶다.


 이 뿐만이 아니다. 내가 퇴근해서 저녁을 챙겨먹으랴고 했을 때다.

  아내는 신혼 초, 운동을 하고 집에온 나를 위해서 된장찌게를 끓이다가 엄지 손가락을 크게 베인적이 있었다. 손톱과 마디끝을 베었는데 꼬맬수가 없어서 압박 밴드를 감았었다. 그 날 이후부터, 아내는 부엌과 영영 멀어진지 오래다.

  하여튼, 우리집은 내가 요리를 주로 하는 편이다. 요리도 자주하다보니, 장모님보다 잘하는 요리가 생겼고, 장모님께서도 피곤하고 귀찮으시기에 내가 하는 요리를 드시는 편이다.

  오늘도 그랬다. 집에 오자마자 손만 닦아내고 뚝딱뚝딱 요리를 했다. 밥을 먼저 얍력밥솥에 넣고, 밥 씻은물로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찌게물 우리거, 간단한 생선을 튀겼다.

  책상에 조촐하게 차려 아내와 장모님이 식사하시는 동안 나는 첫째애에게 장난감을 쥐어주고 둘째애를 안고 있다. 그 와중에도 첫째 애가 장모님과 아내를 찾는 탓에 정신없는 저녁식사 시간이 된다.

  두분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내차례. 밥상에 앉아 밥을 먹으려는데 아내가 아이를 보다 말고 말을 했다.


  " 오빠, 잠깐만 애 좀 안고 있어봐. "

  " 얘, 너희 남편 밥도 제일 나중에 먹는데 그거라도 편하게 먹으라고 좀 해줘라. 아이 이리 주고 식사해. "

  " 아니, 엄마 허리 삐끗했다며, 잠깐이면 돼. 오빠, 빨리 안아."


  침이 범벅인 둘째 아이를 한쪽 무릎 위에 올려 놓고, 한 손으로 식사를 이어간다. ' 애가 토해서 닦으려나?'

  불편한 자세로 식사를 이어가면서 자꾸 무릎에서 미끄러지는 아이를 부여잡았다. 진짜 불편한 식사다. 아내는 핸드폰을 만지고 있다.


 " 와, 이건 좀 너무하자나. 그거 나중에 해도 되는거 아니야?"

 " 2분이면 돼. 2분. "

 " 내가 다 먹고 하면되잖아. 2분이면 끝날 일이면.. 장모님. 제 집에서의 위치가 이렇습니다. 카톡보다 못하고 애기 똥보다 못한거 같아요. "


  우스겟 소리로 농담을 던졌는데, 장모님은 속이 상하셨나보다. 아이를 내게서 데려가시면서 말을 이었다.


 " 시어머니께서 보시면, 속상하시겠다. 내가 봐도 속상한데 잘 좀 챙겨 니 남편. "


  아내는 10분정도 핸드폰을 더 만지작 거리더니 이내 아이를 안았다.



  자기 전, 오늘과 이전에 있었던 일이 너무 속상해서 말을 꺼냈다.


  " 나는 집에서 위치가 어디정도 되니? 화장실도 편하게 못가는 거야? "


  아내는 '팬트하우스' 드라마에 빠져 대충 대답을 했다.


  " 알았어. 미안해. 조용히 좀 해봐. 잘 안들린다. "

 " 와, 드라마 때문에 내가 할말도 못하는거야? "

 " 오빠 때문에 중요한 대사 못들었잖아. "


  티비에서는 막장소리가 주구장창 나고 있었고 아내는 집중하며 보고 있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이내 맥주 한캔을 꺼내 든다.


  '집에서의 내 위치 및 자존감 세우기를 계획하에 해야지 이건 진짜 안되겠다. '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맥주를 다 마시고 캰을 찌그러 트리고 책상 위에 놓는데, 싱크대에 아이 젖병이 보였다.

 

'에휴'


한숨과 함께 젖병을 닦으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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