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란 다양한 기호와 취미를 버무린 양푼 비빔밥 같다. 내 경우엔 나름 진지한 양당 구도를 형성하지만 주제 자체가 귀여운 까닭에 논쟁이 아무리 격해져도 심각해 보이지 않는 부먹/찍먹 정도의 취향 설전을 선호한다. 우열이 아닌 다름의 세계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취향 만담이랄까. 이미 마음을 무겁게 가라앉히는 사안들로 가득한 세상이다. 취향까지 각 잡고, 폼 잡고, 힘 빡 주기에는 어깨에 담이 걸릴 정도로 주위가 정신없이 돌아간다. 취향 정도는 퇴근해 극세사 잠옷으로 홀랑 갈아입듯 좀 느슨하게 가고 싶다.
취향에 한없이 가벼운 접근법을 지닌 나와는 달리 2021년도의 취향이라 하면 자아 정체성에 가깝단 생각이 든다. 내가 이런(이렇게나 쿨한/힙한) 사람이야라는 일종의 선언문 같다. 사람은 누구나 같은 듯 조금씩 다른 자기만의 고유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 수많은 닮은꼴 중에 자신만의 특별함을 어필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곧 지루하다는 공식도 오랫동안 이어져왔기에 더욱 그렇다. 나만해도 '결혼상대로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최고다'라는 어른들 말씀에 끄덕끄덕하면서도, 누군가 나에게 '취향이 참 평범하시네요'라고 하면 좀 모욕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으니 말이다.
나의 매일매일은 평범한 일상으로 편안히 흘러가길 바라지만, 나 자신만큼은 평범한 옆집 김 씨가 아닌 특별한 누군가로 기억되길 바라는 심리는 뭘까? 눈에 띄는 비범함이 없어 나처럼 평범한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은 아닐까. 짝사랑하는 사람 앞에 선 우리의 갸녀린 마음을 떠올려보면 그런 것도 같다. '나 좀 봐주세요!'를 끊임없이 외치는 SNS의 화려한 피드들도 알고 보면 '내가 이토록 근사한 사람이니 관심 좀 가져주세요'라며 애정을 갈구하는 구애시는 아닐는지. 자기 우월성을 과시하는 심리의 바닥에 바닥까지 헤엄쳐 내려가다 보면 결국은 누군가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해서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대범하던 소심하던 우리는 대체로 사랑에 목마른 관종 같다. 여전히 엄마 손이 많이 가는 5살 어린아이의 마음을 간직한 채 어른의 세계를 힘겹게 유영하는 정장 차림의 어른이. 어째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나 자신과의 시간을 자주 갖을수록 타인의 관심에 일희일비하는 경우가 줄어든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장단점을 고루 버무린 불완전한 매력덩어리인 자신을 아끼기 시작하면 밖에서 애정을 채집할 필요성이 점차 감소하기 때문이다. 자급자족식 사랑의 순기능이랄까? 나 자신을 사랑하려면 일단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스스로 어떤 점이 자랑스럽고 뿌듯한지 등에 대한 빅데이터가 쌓여야 한다. 우리는 컴퓨터 시스템 업데이트는 곧잘 하면서 스스로의 운영 체계에 대한 업데이트는 아직도 윈도우 7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취향에 관한 새로고침도 렉 걸리기 전에 짬짬이 해줘야 한다. 똑같은 듯 매일 조금씩 변해가는 나 자신과 오래오래 벗하며 살아가려면 가끔씩은 바지런을 떨 노릇이다.
멍 때리는 게 취향이라고 이야기할 때면, 그런 것도 취향이냐며 의아해하는 이도 있다. 누군가에겐 삶을 낭비하는 시간 같아 보여도, 나에게 멍 때리는 순간은 용량이 꽉 찬 휴대폰 사진 폴더를 정리하는 의식과도 같다. 과부하가 걸린 뇌에 잠시 휴식을 주고 마음을 맑게 비워내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냉장고 속 상한 식자재를 골라내듯, 이따금씩 비워내야 더 귀한 것들로 다시 나를 채울 수 있다. 미니멀리즘의 시작은 옷장도 찬장도 아닌 나 자신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하지 않을까? 잔잔한 일상의 행복이 스며들 틈새 정도는 남겨둬야 하니까.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아침에 일어나 명상을 해왔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잠시 갖는 혼자만의 시간은 바쁜 하루 중에도 내 중심을 잡아주는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오후 5시 번아웃 직전에 나를 붙들어주는 건 명상이 아닌 멍상이었다. 이미 지친 몸과 마음에는 아침 명상 때처럼 무념무상의 상태를 목표로 잡념을 물리칠 기력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생각이 이끄는 대로 멍하니 나를 맡기다 보면 잡념을 이기려 에너지를 소진할 때보다 더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멍 때리다 의식의 흐름대로 떠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생각은 말랑말랑해져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 이미지들로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었다. 갓 구운 따끈한 붕어빵, 핫쵸코를 양손에 품고 이어가는 절친과의 수다, 길냥이에게 아침밥을 주는 엄마의 뒷모습, 해먹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함께 바라보던 어느 주말의 우리 부부. 삶의 부수적인 요소들은 아래로 침잠하고, 나에게 근원적인 행복을 주는 것들로 어느새 마음속이 새롭게 채워지고 있었다. 멍상 타임은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은 잠시 넣어두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시금 찾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취향이란 그런 게 아닐까?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다양한 행위들의 모음집 같은 것.
그러니 어떤 취향을 지녔던 우리 가볍게 누려보자. 불태우는 건 이미 일터에서 충분히 했잖은가? 가끔은 멍 때리며 머리를 비우고 내면으로의 산책도 시작해보자. 비워낸 자리에 새롭게 쟁여놓은 취향을 경쾌하게 누리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사는 게 갑자기 말도 안 되게 즐거워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