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갓길에 종종 꼬마 화분 하나씩 손에 들고 오는 식물 홀릭이지만, 성함도 성격도 모르고 충동적으로 입양해오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이내 의도치 않은 식물 저승사자로 둔갑하고야 만다. 공부라도 조금 해두면 하나라도 더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한, 나름 절박한 모임이었다.
식물과의 관계도 연애와 마찬가지 아닐까? 서서히 조금씩 물드는 인연이 오래가는 법. 화려한 꽃송이나 쭉쭉 뻗은 잎사귀에 반해 잘 알지도 못한 채 덜컥 들여왔다가는 금세 시들어가는 모습만을 지켜보게 된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와의 관계는 역시 첫째도 정성, 둘째도 정성이다. 뭉근하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다 보면 어느새 꽃망울을 탁 티워 내 짝사랑에 화답해준다.
스터디라 부르고 있지만, 사실 별것 없다. 그저 하루에 한 개씩 식물 사진을 올리면 된다. 여유가 되는 날은 꽃 이름이나 꽃말 등을 검색해 덧붙이기도 한다. 스무 명 남짓이 모여 벌써 80일 가까이 매일매일 식물 사진을 올리다 보니 작지만 하루를 싱싱하게 밝히는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사무실가의 화단이나 동네 산책길에서 마주친 가로수들, 집 앞 담벼락 사이로 기특하게 솟아난 풀 한 포기가 어느새 내 마음에도 씨앗을 내리고 있다.
청와대 춘추관 뒷길을 거닐던 날에는 이렇게 돌담 시멘트 틈새로 씩씩하게 자라난 아이를 보았다. 여느 때 같으면 '잡초가 용케 이런데 자리 잡았네?'하고 총총히 지나쳤을 나. 그런데 이 모임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식물멍에 빠지게 되었다. 기특하게 자라난 식물의 강인함을 찬탄하고, 휴대폰 꽃 검색으로 이름을 찾아보게도 되었다. 여태껏 내게 잡초일 뿐이었던 들풀에게 계란꽃이라는 사랑스러운 이름도 되찾아주고 나니 새삼 특별하게 다가온다. 북아메리카 출신이라는 이력도, 화해라는 꽃말마저도 새롭고 독특하다. 김춘수 시인도 어쩌면 길가의 이런 잡풀에 이름을 찾아주고 나서 '꽃'이라는 저릿한 시를 지은 것은 아닐까.
식물 공부를 시작하면서 종종 도서관에 들려 실내 식물 키우기나 정원 가꾸기에 관한 책들도 찾아보았다. 실질적인 식물 육성 팁을 준 책들도 좋았지만 정작 나를 사로잡은 건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1차 대전을 겪으며 전쟁의 잔혹함과 비인간성에 고통을 겪던 헤세는 어린 시절부터 늘 위안이 되어주던 자연의 넉넉한 품을 느끼기 위해 정원 돌보기에 매진했다. 사유의 공간이 된 정원에서 느낀 단상들은 훗날 한 권의 책이 되어 활자로 꽃 피운 치유의 정원으로 거듭났다.
헤르만 헤세는 우리에게 소설가로 잘 알려졌지만 알고 보면 3,500점이 넘는 수채화를 그린 화가이기도 하다. 마흔에 접어들어 시작한 그림은 헤세에게 있어 글쓰기와 정원일만큼이나 마음에 위안을 주고 삶을 성찰케 하는 매개체였다. 한없이 투명하고 해맑은 그의 그림들.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화가는 아니었을지라도 우리 모두에게 있는 선한 씨앗을 연한 색감의 수채화로 말갛게 싹 틔운다는 점에서는 여느 명작 못지않은 귀한 작품으로 다가온다.
정원일을 하는 헤세의 사진은 책 곳곳에서 찾아볼 수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숙연한 마음으로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는 사진은 그의 나이 75세 때의 모습이다. 집 앞 장미 화단에 무릎 꿇은 채 잡초를 제거하는 노령의 작가에게서는 삼보일배하는 구도자의 경건함마저 전해진다. 어쩐지 먹먹한 기분. 정원일은 그에게 한 생명을 책임지는 견고한 마음가짐, 온몸으로 땅의 기운을 느낀 후에야 누릴 수 있는 꽃봉오리라는 기쁨, 그리고 순환하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매일같이 일깨워준 것은 아닐까?
비가 오지 않을 때면, 나는 매일 잡초를 뽑는 일로 소일합니다.(중략)
이런 노동은 무언가 종교적인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땅에 무릎을 꿇고 잡초를 뽑아내는 일은 마치 하나의 의식을 치르는 것과 같지요.
그것은 의식 그 자체를 위한 것이며, 영원히 새롭게 행해지는 것입니다.
서너 개의 채소밭이 깨끗하게 다듬어졌을 때, 비로소 그 밭들에는 녹색의 채소가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데미안과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삶의 근원에 다다르고자 한 헤르만 헤세. 녹색의 채소를 가꾸듯 매일매일 하심(下心)으로 마음속 잡초를 뽑아낸 그가 일군 영혼의 채소밭. 그 알싸한 푸른 무 한 입을 베어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