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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루아의 고양이 Jun 15. 2021

구름멍

구름결에 실린 어느 화가의 사랑 이야기

구름 한 점 없이 쨍하게 짙푸른 하늘은 어쩐지 매력 없는 조각 미인 같다. 구름사진만으로 휴대폰 사진 폴더가 꽉 찰 만큼 구름에 홀렸던 시절. 뭉게구름, 양떼구름, 새털구름, 비늘구름, 두루마리구름, 면사포구름같이 어여쁜 이름들을 일부러 찾아보던 그런 시절이었다. 권층운, 층적운, 난적운처럼 이과 각 잡힌 한자명은 모태 문과인 나에겐 서늘하게 다가왔는데, 구름이란 늘 연구대상이 아닌 연모의 대상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구름멍에 빠져 있노라면 무겁고 칙칙한 고민들이 두둥실 떠오르는 기분이 든다. 가볍게 퐁실퐁실 떠다니는 고뇌들을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고 있노라면 뭘 저런 걸 하루 종일 머리 싸매고 괴로워했나 싶을 때도 있다. 느릿느릿 바람에 떠밀려 가는 구름들을 보고 있으면 불안감으로 쿵닥거리던 가슴이 어느새 진정되고 마음이 한결 가뿐해진 느낌이다. 창문 없는 공간에서 긴급 구름 수혈이 필요할 때면 그동안 부지런히 찍어둔 구름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래기도 했었다. 


<새털구름 습작>, 존 컨스터블, 1822년, 빅토리아 & 알버트 미술관 소장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가인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의 구름 연작은 사진의 빈틈없는 생생함에 조금 지칠 무렵 나의 구름바라기 짝사랑을 달래주었다. 아인슈페너 위에 얹어진 생크림 마냥 부드럽게 마음에 휘감기는 그림들. 사랑에 깊이 빠진 자만이 그려낼 수 있는 구름이었다. 컨스터블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은 마리아 비크넬(Maria Bicknell)이었다. 언젠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림이란 기분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라 했던 그였기에, 서른이 넘어 비로소 용오름 바람처럼 솟아난 첫사랑의 감정을 겹겹의 풍성한 구름으로 그려낼 수 있지 않았을까?


<마리아 비크넬>, 존 컨스터블, 1805-9년 경, 테이트 갤러리 소장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앳된 얼굴의 마리아 비크넬과 그녀를 만나 메마른 삶에 처음으로 벼락같은 사랑을 느낀 서른셋의 존 컨스터블. 


부유한 곡물 상인이었던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았지만 그림을 향한 열망을 끝내 버리지 못한 컨스터블은 아버지를 설득해 마침내 미술학교에 입학한다. 졸업 후 출세가도의 관문으로 여겨지던 육군사관학교의 미술 교수직을 고사하고 풍경화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시대의 조류를 따르지 않고 가슴이 이끄는 그림을 그려나간 그를 세상은 쉽사리 품어주지 않는다. 양가의 반대, 특히 그의 평이한 신분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비크넬가의 거센 반대에 두 사람은 애끓는 마음으로 7년간 몰래 사랑을 이어간다. 마리아에게 보낸 컨스터블의 연서 이 사랑이 이내 사그라들 청춘의 열병이 아닌 오직 행운이 깃든 이에게만 허락되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에 빠진 전 행복합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저를 황폐하게 하고,
아직 채 사라지지 않은 제 마음속 사막을 뛰어넘는 애정이 있으니까요.
당신과 결혼할 수 없다면,
이 세상 그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을 겁니다.

<구름 습작>, 존 컨스터블, 1822년,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 소장
<구름 습작-폭풍우 속 일몰>, 존 컨스터블, 1821-1822년 경,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그의 나이 마흔, 마침내 평생의 사랑과 결혼하게 된 컨스터블. 사랑으로 흠뻑 적셔진 그의 하루하루는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조차 총천연색으로 빛나게 한다. 하늘은 더 짙푸른 바닷빛에 물들고, 폭풍우 거센 날조차 먹구름 사이로 새신부의 발그레한 볼처럼 연한 핑크빛 햇살이 새어 나온다. 차오르는 행복감으로 넘실대는 그의 붓끝에는 이제 물감이 아니라 무지갯빛 구름이 도톰하게 묻어나는 것만 같다.


<마리아 컨스터블과 두 아이>, 존 컨스터블, 1820년, 테이트 갤러리 소장


어느 밤,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품에 끼고 도란도란 책을 읽어 내려가는 평온한 얼굴의 마리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말없이 지켜보는 컨스터블의 시선에서 그의 삶에 잦아든 은은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이즈음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일상의 행복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충만했던 시기이다. 어렵게 하나가 된 부부는 매년 가족을 키워나가며 훗날 7남매의 대가족을 이루게 되었고, 그 또한 작가로서 점차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경제적인 어려움에서도 벗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검푸른 어둠 속에서 모닥불처럼 안온하게 스며드는 가족의 모습. 7년의 세월을 굳건한 마음으로 사랑을 지켜온 이 남자에게 느즈막이나마 이런 행복이 깃들다니, 어쩐지 고마운 마음으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비구름이 있는 바다 풍경 습작>, 존 컨스터블, 1827년, 영국 왕립미술원 소장


여전히 그의 가능성만을 엿보았던 고국 영국과는 달리 프랑스에서는 1821년 영국 왕립미술원의 전시와 이어진 파리 살롱 전시를 기점으로 그의 작품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작품의 배경에 그쳤던 풍경을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의 급변하는 감정을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 용해시켜버린 그의 독창적인 시에 찬사가 이어졌다. 새로운 풍경화의 시대를 연 컨스터블은 훗날 밀레로 대표되는 바비종 화파와 모네와 르느와르 등이 주축이 된 인상파를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삶은 얄궂게도 인생의 가장 찬란한 나날에 때아닌 거친 노대 바람을 실어 보낸다. 7번째 아이가 이 세상에 온 그 해, 하늘은 마리아를 조용히 데려갔다. 그녀의 나이 이제 겨우 마흔. 7년의 기다림 끝에 12년간 함께 한 평온하고도 충만한 결혼 생활이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 점점 길어져 가는 투병 생활 중에 컨스터블이 그려낸 구름과 하늘빛은 이제 더 이상 파스텔 색감의 여리여리한 행복으로 가득했던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자화상>, 존 컨스터블, 1806년, 테이트 갤러리 소장


비가 자분자분 내리는 이 아침, 일생에 단 한 번 찾아온 사랑을 잃고 검은 옷만을 고수한 채 홀로 7남매를 키우며 자신의 삶을 끝까지 살아낸 한 남자를 생각한다. 그녀가 떠난 후 구름은 그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내내 거센 비바람 같던 하늘이 또 어느 날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잠시 핑크빛과 연노랑으로 물든 날도 있었겠지. 어쩌면 그런 사랑을 품고 살아갔기에 함께 한 추억을 이따금 반추하는 것만으로도 남은 생이 스르르 살아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1806년, 장대비 같은 사랑을 눈앞에 둔 그의 옆모습에서 풍기는 결연함이 어쩐지 안쓰럽고도 부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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