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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완 Apr 10. 2017

실연의 아픔

야매 득도 에세이 #18











프리랜서. 어딘가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삶.

알람 같은 건 맞출 필요가 없고 하루 종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상사의 눈치 볼 일 없는 삶은 얼핏 좋아 보이지만 직접 겪어보면 더 좋다.(웃음) 물론 돈을 벌어야 하니까 일을 해야 하지만 나처럼 부지런히 그림을 그려 홍보하지 않는 날라리 작가는 의뢰가 별로 없어서 돈 대신 자유로운 시간을 많이 얻는다. 응? 이거 좋은 거 맞나?

자유로운 시간이 많은 건 참 좋은데 문제는 언제나 돈이다.

회사를 다닐 땐 한 달이 지나면 비록 쥐꼬리만한 월급이라도 통장이 다시 채워지니까 괜찮았는데 프리랜서에겐 월급이 없다. 몇 개월씩 수입이 없어서 줄어드는 통장잔고를 확인하며 한숨을 쉬는 일이 잦다. 늘지 않고 줄어드는 통장잔고는 내 인생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더 심한 경우 인생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기분까지 드는데 어쩌다 통장잔고의 숫자가 내 삶의 질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어 버렸는지 몰라도 아무튼 줄어드는 통장잔고는 한 사람의 영혼을 뿌리까지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와아아! 줄어든다.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어. 망했다. 나는 불안하다아아.

그렇다. 프리랜서의 삶은 불안하다. 아마도 이런 불안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 두지 못하는 것이겠지. 나 역시 그랬으니까.


내가 다니던 회사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일이 많을 땐 당연히 일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일이 없을 땐 그냥 놀아도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 출근을 안 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고 사무실 안에서 무얼 하든 상관없었다는 말이다. 한동안 회사에 일이 없던 시기가 있었는데 나는 한 달 동안 매일 의미 없이 컴퓨터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영화도 보고 인터넷 쇼핑도 해보고 인터넷 유머를 다 훑어보아도 시간은 더럽게 안 갔다. 아, 밖에 나가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면 좋겠다. 그러나 나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니고 회사의 것이구나. 마치 책상 앞에 앉아있는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월급이 입금되었다. 그 돈은 나의 자유와 맞바꾼 것이었다. 일의 양과는 상관없이 한 달 동안 자리를 지키면 똑같은 액수의 월급이 들어온다. 결국 직장인들은 자신의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게 아닐까.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 한다고, 편하게 돈 벌었으니 개이득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커다란 답답함으로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월급을 포기하지 못하고 책상 앞에 묶여있던 나. 누가 나를 묶어 놓은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나를 구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답답했다. 아아... 애증의 월급.


프리랜서가 된 지금은 자유로운 시간이 많다. 그러나 그런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기 위해선 비용이 든다. 내가 자유를 팔아 모아뒀던 돈을 고스란히 다시 자유를 사는데 쓰고 있는 셈이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러고 보면 직장인들이 자기 자유(시간)를 팔아 번 돈을 열심히 모으는 이유도 나중에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가 아닌가. 결국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은 나중에 자유를 사는 데 다시 쓰이게 될 테니 지금의 내 상황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이런 걸 생각하면 인생은 커다란 모순처럼 느껴진다. 이걸 누구에게 따져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월급과 이별했다. 가끔 그녀(월급)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곤 하는데 그럴 때면 그녀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도 있다. 그녀가 주던 안정감. 하지만 그녀는 나를 너무 구속했다. 이미 헤어진 여자를 떠올리면 뭐 하랴. 지금 나에겐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 그녀의 이름은 '자유'다. 가끔은 날 불안하게 만들지만 구속하지 않아서 좋다.   

연애를 하려면 데이트 비용이 든다. 전 여친과의 연애에선 자유를 비용으로 냈고, 현 여친과의 연애에선 돈을 비용으로 낸다. 어떤 연애가 더 낫다고 단정 지어 말하긴 어렵다. 각자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는 현재 애인에게 잘 하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더 내가 가진 자유를 사랑해야겠다.


지금처럼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면서 돈도 계속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어쩌면 욕심이다. 운 좋은 몇몇은 둘 다 가질 수 있겠지만 나 같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나는 돈과 자유 중에서 자유를 선택했다. 월급을 포기하고 그 월급만큼의 돈을 써가며 매월 자유를 산다. 내 돈 주고 산 자유니 당당하게 즐기지 못하면 돈이 아깝다. 그러니까 통장잔고는 그만 확인하고 좀 놀아라! 불안해하지 말고! 정 불안하면 돈을 벌던가.  

 

음. 아직은 돈 벌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는 걸 보니 버틸만한가 보다. 깔끔하게 정리가 됐다. 그럼 이제 자유를 마음껏 누려야겠다.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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