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완 May 22. 2017

나는 조금 느립니다

야매 득도 에세이 #25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켰는데 30분이 지나도록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주문이 안 들어간 거 아닌가 불안하고,

음식이 왜 이렇게 늦냐고 항의도 해보고,

죄송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기분은 이미 상했고,

음식을 기다리며 같이 간 사람과 얘기를 하다가도 우리 음식이 나왔나 계속 힐끔거리게 되고,

혹시 나보다 늦게 온 사람 음식이 먼저 나올까 감시하고,

이렇게 기다렸는데 맛만 없어봐라 마음으로 협박도 하고,

막상 음식이 나와도 기다린 시간이 억울해 맛도 그저 그런 것 같고,

겨우 이런 음식 때문에 내 소중한 시간을 버렸나 생각하면 다시 또 화가 나고,

아무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분명 마음속에선 온갖 감정들이 소용돌이 칠 것이다. 기다리는 건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기다림이 늘 일어나는 가게가 있었다.


안국동에 즐겨 찾던 막걸리 집이 있었다.(지금도 그대로 있지만 주인이 바뀐 후론 자주 가지 않게 되었다.)

분명 한국인인데 까무잡잡한 피부색이며 멋지게 기른 콧수염이며 영락없이 멕시코 사람 같은 주인이 혼자 운영하는 가게였다. 아, 그래서 가게 이름이 이랬구나. 주인장의 얼굴을 봤으면 누구라도 무릎을 쳤을 것이다.

그 가게 메뉴판 맨 앞엔 대충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제가 좀 느립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오래 기다리셔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음식을 오래 기다리는 것이 싫은 사람이야 그 글을 읽고 바로 나가겠지만 대부분은 그 글을 읽고 단번에 한없이 너그러운 마음이 되어 흔쾌히 기다리는 것을 택한다. 원래 느리다는데 어쩌겠는가. 음식이 나오기까진 대충 20분에서 30분 정도가 걸렸는데 그 시간 동안 먼저 나온 막걸리를 홀짝거리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별로 오래 기다린 것 같지도 않은데 안주가 나오는 기분이었다. 음식 맛은 어찌나 좋은지, 멕시코 양반이 음식을 참 잘하는군. 이 정도면 한 시간도 기다릴 수 있겠어라고 마음먹게 되는 이상한 가게였다. 앞서 얘기했던 기다림과는 사뭇 다른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메뉴판에 적힌 한 줄의 글이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처음부터 느리다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기다리는 초조함에서 천천히 얘기나 하고 있지 뭐, 하는 여유로움으로 바꿔 놓았다. 현대인들이 뭐든지 빨리빨리,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도 모두의 마음속엔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이 있다. 숨어 있다. 그것을 그 한 줄의 문장이 꺼내 준 것이었다.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한다. 아니, 솔직히 너무 자주 한다.

남들은 모두 자리를 잡고, 무언가를 찾고, 무언가를 이루고,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아 우리는 자주 불안하다.   

뒤처지는 거. 그거 또 내가 전문이다. 전에 얘기한 적이 있지만 나는 4수를 해서 대학에 갔고, 휴학도 했고, 스물다섯 살에 군대에 갔고, 늦은 나이에 대학 졸업해선 3년 간 백수로 지냈다. 이것만 봐도 나는 또래보다 6년에서 7년 정도 늦다. 나는 이십 대를 시작하면서부터 뒤처지기 시작해서 계속 뒤처진 채로 살고 있다.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뒤처졌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그러지 않았나 돈 많은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것도 실력이라고.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내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성공으로 가는 것만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쪽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형편도 아주 쬐끔씩 나아지고 있다. 때로는 그 변화가 너무 적어서, 내 욕심만큼 나아가지 못해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분명 나는 나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느린 사람이다.


'내가 원래 좀 늦어.'

나는 예전부터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 버렸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숨기지 않고 말하고 다녔다. 신기한 건 주변 사람들이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하거나 한심해하지 않고 내 느린 속도를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부럽다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그런 반응을 보면서 나 역시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함보다는 천천히 간다는 여유로움이 생겼다. 마치 단골 막걸리 집에서 주인장의 느린 손을 탓하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을 즐겼던 것처럼.

나는 농담으로 남들보다 7년이 뒤처지고 있으니 남들보다 7년 정도 더 살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아니면 남들보다 7년 젊게 산다고 생각해 버린다. 실제로 나의 정신연령은 실제 내 나이가 아닌 7살 정도 어린 나이에 맞춰져 있다. 또래들은 이미 졸업했을 고민들을 이제 하고 있고, 방황도 계속하고 있다. 그런 정신상태 때문일까 나는 옷 입는 것도, 얼굴도 실제 나이보다 많이 어려 보인다.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고 사람들로부터 늘 듣는 얘기다. 그렇다. 나 동안이다. 이런 거라도 자랑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웃음) 나는 느린 만큼 젊게 산다. 느린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남들과 꼭 속도를 맞춰 살아야만 하는 걸까.

사람들은 남들과 똑같이 살기 싫다고 말하면서도 왜 똑같이 맞추려고 애를 쓰고 뒤처질까 불안해하는 걸까. 그리고 설령 뒤처지고 느리다고 한들 그게 그리 큰일일까? 사람은 각자의 속도가 있다. 자신의 속도를 잃어버리고 남들과 맞추려다 보면 참 힘이 든다. 남들과 다르게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그 인생은 남들과 전혀 다른 삶이 된다. 느린 건 창피한 게 아니다. 개성이다. 오우 유니크해!

내 삶이 완전히 불안하지 않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나도 종종 불안하다. 하지만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불안은 크게 없다. 어차피 나는 느리니까. 그리고 천천히 가다 보니 남들은 저만치 앞서 뛰어가 버려서 어느 쪽으로 내가 따라가야 하는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어디로 갔든 상관없이 그냥 내 길을 찾아 걸어갈 뿐이다.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으니 앞서가네 뒤처졌네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게 되어버렸다고 할까.  


지금 내가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면 아마도 뒤처진 게 맞을 거다.

그래도 빨리 뒤쫓을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속도와 길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느린 건 창피한 게 아니다. 인정하자. 우린 뒤처졌다.

이왕 늦은 거 천천히 가면 안 될까? 인생도 더 길어졌는데 빨리 가서 뭐하려고 그러나. 나 혼자 느릿느릿 가려니 외로워서 그런다. 같이 천천히 가자. 응?   








하완의 인스타그램

instagram.com/hawann_illust











매거진의 이전글 뭘 해서 먹고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