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 득도 에세이 #27
최근 연인과 이별을 한 친구가 있다.
떠나간 애인을 그리워하며 너무나도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거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하나의 세계를 잃는다는 것이니까. 그 고통을 알기에 위로를 해주고 싶었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와, 그럼 이제 다른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얘기네? 완전 좋겠다."
아무래도 나는 위로에 소질이 없는 것 같다. 이런 걸 친구라고. 한대 얻어맞지 않은 게 다행이다.
내가 친구에게 한 얘기는 반 정도는 웃으라고 한 얘기지만 반 정도는 진심이었다.
헤어지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왕 헤어진 거 어쩌겠나.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이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솔직히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고 나서도 계속 다른 사람에게 눈이 간다. 그 사람은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사람일 수도 있고, TV에 나오는 연예인일 수도 있다. 내 옆에 분명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은 어떨까 궁금해하고 멋진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마음으로 내 옆의 사람과 비교하게 되어있다. 물론 나는 그렇지 않다.(내 여자 친구가 이 글을 읽을 것이다. 나도 살아야 하니 이해를 바란다.) 아무튼.
그런 인간의 본능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의 관계를 깨뜨리는 바보 같은 짓을 쉽게 저지르지 않는다. 그런 우리는 모두 칭찬받아 마땅하다. 이런 인내의 화신들! 자, 이별을 하게 됐다는 건 이젠 다른 사람을 마음껏 만나도 된다는 허락이다. 참지 않아도 된다. 이 얼마나 좋은가.
나도 안다. 이런 말이 별 위로가 안 된다는 걸.
뭔가를 얻으면 반드시 뭔가를 잃게 됩니다.
뭔가를 버리면 반드시 뭔가를 얻게 됩니다.
-만화 '자학의 시'중에서-
여기 성공한 사람이 있다.
그가 마냥 부럽겠지만 그 역시 그 성공을 얻기 위해 반드시 무언가를 잃어야만 했을 것이다. 바쁘게 일만 하느라 건강을 잃었을 수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해 가족과의 추억을 잃었을 수도 있다. 무언가를 얻었다는 건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얘기를 뒤집으면 무언가를 잃었다는 건 무언가를 얻었다는 뜻이다. 그는 건강을, 혹은 가족을 잃은 대신 성공을 얻은 셈이다.
무언가를 잃으면 반드시 무언가를 얻게 된다.
무언가를 얻었을 땐 얻은 것에 집중하느라 우리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무언가를 잃었을 땐 잃은 것에 집중하느라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무언가를 얻었다고 느낄 땐 기쁨이 크니까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낄 때 생긴다. 상실의 슬픔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그 슬픔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만약 상실로 괴로워할 때, 우리가 이 상실로 반드시 무언가를 얻게 된다 생각할 수만 있다면 이 슬픔들을 조금 더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앞에 얘기했던 친구는 요즘 그림 그리는 것에 빠져있다.
원래도 그림을 그렸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면서 그림 그리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는 그. 이별로 생긴 빈자리를 그림으로 채우다가 새로운 열정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무언가를 잃으면 반드시 무언가를 얻게 되는 게 맞는 모양이다. 그래도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떠나간 그녀를 그리워하며 소주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빈 곳이 다 채워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
나머지 빈자리에도 다른 것들이 어서 채워지기를.
그동안 그 자리는 그리움으로 채워놓아도 나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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