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하완 Aug 01. 2017

타인의 취향

야매 득도 에세이 #32

 




 즐겨보던 TV 프로그램에서 남자들의 잇 아이템이라는 '수염 파우더'를 소개하고 있었다.

 수염 파우더가 뭔가 하고 봤더니, 영화나 드라마의 분장처럼 가루로 된 수염을 브러시를 이용해 피부에 붙이는 제품이었다. 좀 쓸데없어 보이긴 했지만, 수염을 기르고 싶은데 수염이 안 나거나 수염 숱이 부족한 남자들이라면 귀가 솔깃할 만했다. 그건 그렇고, 그걸로 수염은 잘 만들어질까? 남성 출연자들이 직접 시연에 나섰다. 어설픈 실력 때문인지 제품의 한계인지 다들 우스꽝스러웠고, 스튜디오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여성 사회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 여자는 수염 기른 남자를 극도로 싫어하는데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기르고 싶냐는. 그 질문에 한 출연자는 이렇게 답했다. 수염은 여자들 맘에 들기 위해 기르는 거 아니라고. 수염은 그냥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그리고 여자 중에도 소수지만 수염 마니아가 있어 괜찮다고. 미지근한 다수를 공략하는 것보다 열광적인 소수를 공략하는 게 더 성공률이 높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아, 나는 그 전략에 단번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뭔가 깨달은 것 같은 기분. 깨달음은 불현듯 수염 파우더와 함께 찾아온다.


 앞서 얘기한 '수염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다. 두루두루 다 잘하려 하지 않고 한 가지에 집중해서 성과를 높이는 전략. '수염 전략'은 다수에게 잘 보이는 걸 과감히 포기하고 수염을 좋아하는 소수에게 집중한다.

 우리가 평소 즐겨 쓰는 전략과는 아주 다르다. 보통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헤어스타일'이나 '여자들이 좋아하는 코디' 같은 걸 검색해서 호불호가 적은 다수의 취향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와는 반대로 여자들이 좋아하든 말든 기르고 싶으니까 수염을 기르고, 많은 여자 필요 없고 수염이 좋다는 사람만 만나겠다는 당당함은 쿨하다 못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걸 모조리 했는데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모두가 그걸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들의 취향은 다양하고, 수염을 좋아하는 여자들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간과한 것일까. 다수가 아니라서? 수염은 안티(anti)가 많은 대신 경쟁자는 적은 블루오션이다. 우리는 왜 소수의 취향을 왜 무시했단 말인가. 우리는 왜 안티를 두려워하는가.  


 '좀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걸 그려야(만들어야) 할까?'

 친한 동생으로부터 이런 고민을 들었다. 물론 나도 하는 고민이다. 세상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고, 그래서 자신이 하는 작업에 확신은 떨어지고, 한없이 불안한 마음이 들 때, 이런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이 긴 어둠을 끝내고 어서 빨리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다. 그것은 경제적인 이유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내 작업은 좀 대중적이지 않은 것만 같고,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말랑말랑한(?) 작업을 해야 사랑을 받는 걸까, 남들이 좋아하는 것에 나를 맞춰야 하나,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그림. 그런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결론은 하나 마나 한 고민이라는 것이다. 만약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걸 해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작정하고 많은 사람의 마음에 든다는 것, 그거 되게 어려운 거다. 많은 이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과 배우들로 작정하고 흥행하려 만든 수많은 상업영화가 줄줄이 망해 가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걸 대놓고 해도 실패하기 일쑤다. 사람들의 취향은 정말 각양각색이어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걸 해서 성공했다기보다는 본인들이 하고 싶은 걸 했는데 그걸 많은 사람이 좋아해 준 것이라 보는 게 맞다. 그것을 두고 '취향을 저격'했다는 표현을 쓴다. 성공한 이후에 왜 성공했나를 분석해 보니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런 요소들이 있더라 하는 거지, 꼭 그 요소들 때문에 성공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다 갖추었는데 대중적인 성공을 못 거두는 경우도 수두룩하고,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게 아닌데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도 한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은 그야말로 결과론적인 얘기다. 진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이라는 게 있다면 나부터 당장 하겠다. 성공이 보장되는 걸 안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나는 그의 첫 영화 '저수지의 개들' 때부터 열렬한 팬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대중적이지 않다. 대놓고 B급 정서로 무장한 그의 영화는 애초에 많은 사람을 만족시킬 생각 따윈 없다는 듯, 줄기차게 폭력적이고 황당한 자신만의 스타일과 이야기로 폭주한다.

 마니아층만 좋아할 그런 그의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폭넓은 사랑과 인정을 받는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대충의 취향에 맞추려 하지 말고 자신만의 개성과 세계관을 밀어붙여야 하는 건 아닐까. 그 세계가 설득력 있다면 대중은 열광한다. 저격당하는 것이다.

 대중을 맞추려 눈치 보는 작품은 얄팍할 수밖에 없다. 대중은 그것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외면한다. 차라리 개성 있는 편이 낫다. 그게 바로 '수염 전략'이다.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쿠엔틴 타란티노라지만 그의 영화를 싫어하는 안티들도 많다. 봐라, 어차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사람들에 맞추려 하면 점점 힘들어진다.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없어서 그렇고, 사람들의 변덕에 이리저리 휘둘리게 될 테니까. 나만 해도 이게 좋았다, 저게 좋았다, 그런다. 그 마음을 어떻게 맞춘단 말인가.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한다고 모두 인정을 받게 되는 건 아닐 거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걸 해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어차피 결과를 알 수 없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낫다. 남들의 인정에 목매지 말고 자기 세계에 집중하다 보면 그 세계가 더 단단해지고 결국은 사람들도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끝내 인정받지 못한대도 손해 볼 건 없다. 적어도 하고 싶은 건 실컷 했으니. 남들의 취향에 맞추려고 노력만 하다 끝내 인정 못 받은 것보단 낫지 않나?

 모두를 맞추려다간 아무도 못 맞추는 수가 있다. 그러니 많은 사람에게 잘 보이려 하지 말고, 우리 모두 수염을 기르자! 무난한 사람보다는 개성 있는 사람이 되자! 안티를 두려워 말자! 우리가 개성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유치한(?) 마음 때문이라는 걸 되새기면 선택은 한결 가벼워진다.


 그나저나 이런 얘기는 성공한 사람이 해야 설득력이 있는데, 나처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사람이 하니까 설득력 무지 떨어진다. 미안하다. 그냥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걸 찾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부디 건투를 빈다.






하완의 인스타그램
instagram.com/hawann_illust





 

매거진의 이전글 잃은 후에 오는 것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