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전역 그리고 실패의 경험
2001년 6월 햇살이 가득한 영천의 육군 3 사관학교 충성대 연병장에서 나는 학사장교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7년간의 군 복무는 포병장교로 2008년 6월 30일 육군 대위로 만기 전역하였다.
군 복무 중에서 가장 즐거웠던 추억을 되살리자면, 강원도 진부령 일대에서 곰취와 더덕 등을 처음 먹으며 자연과 함께 하는 군 복무를 하였던 점, 그리고 포대장 시절 주변여건이 매우 좋은 수도권 부대에서 포대장으로 근무하여 강원도와 정 반대의 여건을 누렸던 생활이 기억난다.
지금 전역 후 나를 되돌아봤을 때 간과했던 것은 전역 전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지 못했고, 너무 쉽게 군 전역 후 겪을 사회를 생각했던 것이다. 취업에 대한 준비가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친했던 동기의 권유로 전역 후 보험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여러 예비역 장교들이 많이 선택하는 이 직업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무작정 직무 설명만 듣고 난 외국계 보험회사에 입사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보험영업 개인사업자가 된다.
결과는 어땠을까? 말하기 창피하지만, 난 보험회사 좋은 일 만 시켜주고 처절하게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것도 약 2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보험회사 취직 예비역 장교 10명 중 7~8명은 전역 직 후 전역 전 근무하는 초급 장교 부사관 등을 대상으로 영업을 영위해 나가다 흔히 말하는 끈 떨어지면, 좌절을 경험하고 실적이 없어지며, 보험 해지 등의 환수조치로 어려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보험회사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영업이라는 자기 적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무작정 입사하다가는 바로 실패를 맛볼 기회가 주어질 수 있으니 이 글을 읽게 되는 누군가라도 보험영업 도전에 신중하였으면 하는 바람에서 창피하지만 나의 보험영업사원 실패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 시절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경제적인 이유와 여러 가지 가정 문제 때문에 이혼을 경험하게 된다. 아직 우리나라 사회에서 이혼한 가정은 현실적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이 지난 지금 굳이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시 처한 이혼이라는 삶의 중대한 결정과 좌절된 삶을 이렇게 글로나마 표현하지만, 이혼을 했고 실패를 경험한 나는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했어야 했다.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색다른 도전
2010년 이혼과 실패의 힘든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가지고 있던 자본금으로 휴대폰 판매점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혼 후 엄마가 하도 힘들어하는 나를 데리고 간 점집에서 소리 나는 직업을 하라는 황당한 발언을 걱정 반 믿음반으로 선택한 어처구니없는 사업 시작이었다.) 당시 여러 가지 현실적으로 절망적인 생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혼 후 7살 딸, 4살 아들 두 명의 자녀를 내가 키우게 되어 어쩔 수 없는 핑계의 사업 도전이었다. 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일을 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는 개인 사업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견뎠는지 그리고 그 시기를 좌절하지 않은 나와 잘 버텨준 아이들에게 감사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였다. 경험이 없었던 나의 한 달 판매실적은 가게 임대료 내고 아이들과 생활하기에는 매우 빠듯하였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희생하는 것에 비해 가정생활과 소득 둘 다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결국 약 10개월 만에 가게를 정리하였다. 그리고 아이들 양육을 위해서는 급하게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아는 지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경험하게 된다.
2011년 당시 나는 32세였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20대 초중반이었다. 때문에 어린 선배들? 에게 일을 배웠고, 서비스업이 몸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다양한 실수로 인한 꾸지람도 많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경험한 몸으로 하는 일, 처음에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자책감과 자괴감으로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참고 이겨냈다. 그리고 적응했다. 어느 환경이나 생각 없이 일하는 것보다 생각을 하면 개선될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진 못해도 새로운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최선을 다했기에 단기간에 적응할 수 있었다.
나의 인생에서 약 6개월간의 아르바이트가 그렇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나는 신입이었고, 대학교와 7년간의 장교생활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그냥 나이 많은 알바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고객 서비스의 중요성과 요령, 나이보다는 실무경험과 기술역량 등이 현장에서 중요하다는 점도 느꼈다. 당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친절하고 경험이 풍부하여 여러 가지로 배울 점이 많은 우수 직원, 불친절하고, 본인의 경험만 믿고 일하는 전형적인 예의 없는 직원, 일하는 것에 흥미를 못 느끼고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직원 등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이들과 새로운 경험을 하였다. 또한 셰프들에게 주방관리 요령 및 조리 요령, 식재료 관리방법 등을 어깨 넘어 배운 것은 나중에 나의 가정에서 요리하며 관리하는 모든 일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비록 아마추어이지만, 지금 주방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게 요리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