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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 Jul 30. 2020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잘 버티는 중이었다.

모든 것이 힘든 하루였다. 잘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화가 나고, 하고 싶은 걸 꾹 눌러야 하는 것도 힘들다. 너무 예민해지지 않으려 하는데 자꾸만 내 말은 화살이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꽂히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차라리 그 화살의 방향을 나에게로 돌릴 수 있다면 좋을 것만 같은데,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때이다. 잠시 동안 쉬어야 겠다고 진지하게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어디 가서 아주 크게 소리 지르고 아무도 날 찾지 않을 때까지만 있다가 오고 싶다. 잘 살고 있고, 내 마음을 잘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날짜를 세어보니 아직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내가 온 만큼의 시간 곱하기 몇 배, 아니 몇십 배의 시간이 지나야 이 마음이 진정될까. 


지금 내 세상에서는 하면 안 되는 것만 천지이다. 우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겠고, 연락도 하면 안 되고, 회사 땡땡이도 안되고, 소리 질러도 안되고, 멀쩡한 척하고 살아야 한다. 나는 너무나 루틴 하게 하루하루 잘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밤 악몽을 꾸고, 그렇지 않더라도 왜인지 모르겠지만 새벽에 수시로 깬다. 정신을 맑게 하고 싶은데 이미 머리도 아프고 속도 안 좋아서 술도, 커피도 안 된다. 나는 지금 이 감정을 함께 공유할 사람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오늘은 나를 위해 같이 여행을 가자는 친구들에게 오빠랑 갔던 데라서 싫다고 엄청 화를 내고 모질게 말했다. 퇴근 때 같이 저녁 미사를 가기로 했던 엄마가 갑자기 퇴근이 늦어진다고 한 연락에도 엄청 짜증을 냈다. 집에 와서는 아빠에게 엄청 짜증을 내다가 엄청 혼이 났다. 나는 너무 잘 살고 싶은데 자꾸만 이럴 때 연락하고 싶다. 전화해서 울든 소리를 치든 뭐라도 하고 싶다. 내 삶은 이렇게 망가지고, 나는 너무너무 힘든데, 나는 잘 지내는 듯 보여야 하기에 그럴 수가 없다.


휴대폰 용량이 다 차 버려서 들어간 사진첩에는 식전 영상에 쓰려고 모아둔 동영상이 한가득이고, 아직 풀지 못한 제주도 스냅도 한 가득이다. 그런데 정말 나를 무너지게 하는 건 그런 거창한 게 아니다. 매일 밤마다 통화하며 몰래몰래 캡처해두었던 그의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나에게서만 보여준다고 믿었던 예쁜 눈웃음, 장난 가득한 엽사들이다. 나도 모르게 공동 현관 비밀번호를 누를 때 무의식적으로 누르는 우리 신혼집의 번호이고, 이제는 낄 수 없어 그냥 웃고만 있어야 하는 또래 직원들의 연애 이야기이다.  브런치 서랍에 쌓여있는 부치지 못한 편지들이 그렇고, 마지막이 언젠지 기억도 안나는 그가 하루 끝에 보내오던 장문의 카톡들과 사랑을 속삭이던, 진심이라 믿었던 편지들이 그렇다. 그래, 그의 마음속에서 내 자리가 사라진지는 정말 오래되었던 건데, 충분히 준비하고 있어야 했는데. 내가 미련해서 그러질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걸 귀찮아하고, 모든 걸 형식적으로 나에게 맞춰주던 그의 모든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왜 바보같이 나는 다를 거라, 우리의 사랑은 다를 거라 그렇게 확신했었는지 모르겠다. 알고 보면 그는 여러 방법으로 나에게 답을 주고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가 점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그렇게 나에게 말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잊지 못했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이렇게 숨죽여 울며 답도 없는 글을 쓰는 것뿐이다. 도대체 누구 보라고 올리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답을 들으려 쓰는 건지도 모르겠는 이 장황한 글을 쓸 뿐이다. 정말 슬프고 억울한 건 나만 이렇다는 것이다. 나만 이렇게 아파하고, 나만 이렇게 다 지난 추억들에 가슴 아파하고 나만 아직 정리할 준비가 안 됐고 나만 끝나버린 우리 관계를 어떻게든 이어 붙이려는 것이다.


정말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그냥 열심히, 아니 꾸역꾸역 주어진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음악 소리로 방 안을 가득 채운 채 우는 이 밤이 너무 싫다. 


남들은 5년 6년 아니 10년씩도 잘만 만나고 잘만 살고 잘만 사랑하는데 나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문제이길래 내 20대를 다 바쳐한 사랑을 고작 이런 이유로 끝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못한 것도 너무 많은데,  이제는 그누 구와도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하고 너무 화가 나고 너무 슬프다.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내가 어떤 걸 해도, 아니 어떤 걸 하지 않는다 해도 다시는 우리가 돌아갈 수 없다는,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번외. 눈물 뚝 그치는 법을 찾았다. 방금 알아냈다. 카톡 대화창에 그가 부르던 내 애칭을 검색한다. 마지막 날짜가 무려 4월 27일이다. 그날도 그 새끼는 나한테 아무렇지 않게 애칭 부르면서 다른 여자랑 연락하고 있었겠지. 이 생각을 하니 눈물이 싹 멎는다. 대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 날짜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모든 카톡을 복기하며 상황을 다시금 더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참 불쌍하다. 이런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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