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 밤 Sep 30. 2016

The eternal night

Prologue




[The eternal night]

             w. 하얀 밤









# Prologue 





서늘하다.



우주의 공기는 늘상 시리게 서늘했다. 현은 입을 오무려 말아 훅 입김을 내뱉었다. 숨에 짙은 탄소 향이 배었다. 들고 있던 딜루전을 잇새에 물곤 소매를 쓱 걷어 올렸다. 맞은편 행성을 바라본다. 저만치 빛덩이 하나가 계속 깜빡였다. 행성이 숨쉬듯 내뿜는 빛이었다. 시간 설정해 놓은 것을 떠올린다. 푸르게 반짝이는 별은 여전히 잠잠하다. 



“엄청 오래 걸리네.”



심심해. 추워서 얼어 죽으면 어떡하지. 입에 문 뒤꽁무니를 잘근잘근 씹었다. 가슴 속으로 몽롱한 기운이 퍼진다. 매캐한 탄소향 끝으로 단맛이 돈다. 딜루전은 우주법상 금지된 잎 류 마약이었다. 적발되면 보통 행성민 자격이 박탈되지만, 뭐. 그것도 다 행정적인 이야기다. 초창기 법은 대부분 지켜지지 못했다. 현은 볼이 홀쭉해질 때까지 마지막 한 모금을 빨아들이곤, 끝이 다 탄 꽁초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걸 밟아 발로 쓱 밀자, 주홍 불씨가 오스스 메마른 땅 위를 나뒹굴었다.



커다란 정적. 



침묵을 듣는다. 새카만 진공이 현의 눈동자로 빨려 들어간다. 샛말간 고요함이 내려 앉고, 그는 미동 없이 침묵 틈 사이에 앉아 그 사이에 숨어든 소리를 찾는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제게로 흘러 들었다가 연기처럼 흘러 나간 시간을 더듬어 오르면,



‘현.’ 



희미한 목소리가 들린다. 



‘-Be yourself,’ 



소근거리는 목소리. 먼 곳에서부터 길게 날아드는 목소리. 소근거리다가, 속살거리다가, 사라진다. 그는 손을 올려 습관처럼 귓볼을 만졌다.



뜨거워, 아직. 많이.

점멸하는 태양의 흑점을 가져다 놓은 듯, 신기하게도 여기 만큼은 좀체 식지를 않는다.





순간이었다. 섬광이 번쩍였다 .눈 앞에서 엄청난 양의 빛이 터져나왔다. 파장에서 비롯된 진동으로 인해 텅 빈 공간마저도 지천으로 흔들렸다. 눈 앞이 어찔하다. 고개를 확 털었다. 반대쪽 귀에 낀 이어커프에서 치직거리는 통신음이 들렸다.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치직



[This is T from C-980.]



-치직



[Yes, This is N from A-436. I’m listening.]



-치직



[일단 매립한 에너지 모두 무사히 발파 완료했어. 평균 폭발 직경은 약 1.2km로 집계되고, 1차 폭발을 포함해서 잔여 폭발까지, 총 80회 정도 발생했고.]



80?



-치직



[왜 80회야? 150회 정도로 셈해서 설치한 거잖아.]



-치직



[그러니까. 살펴 봐야지.]



-치직



[같이 가?]



-치직



[난 이미 움직이고 있어. 현 너는 섹터 나인으로 복귀해. 자료 실시간으로 전송할 테니까 데이터 분석 좀 해 줘.]



-치직



[Okay. 섹터 나인에서 봐, T.]




이어커프를 뮤트시켰다. 조금 전 들은 숫자의 의미를 생각한다. 폭발 횟수가 적다는 건 터져야 할 에너지가 무언가에 의해 막혔다는 뜻이다. 그럼 그 '무언가'는 무엇인가? 손을 꽉 쥐었다 폈다. 막을 건 아무 것도 없을 텐데. 막힐 일도 없을 거고. 적어도 이 은하계 내에선. 무의식적으로 소플론의 출력 버튼을 높여 포탈을 생성 하려다가, 아. 정신을 차렸다. 복귀 전 할 일이 있다. 현은 제 자켓 안주머니에서 조그만 캠을 꺼냈다. 새로운 메모리 카드를 넣고 전원을 눌러 켜자, No Contents, 라는 메시지가 깜빡거렸다. 렌즈를 설정해 재생 버튼을 눌렀다.


현의 캠 프레임 속으로 C-980 행성이 담겼다. 방금 폭발한, 아니. 저와 T가 합작으로 폭발시킨 행성 C-980은 일명 아일렌이라 불리는 작고 아름다운 별이었다. 그건 전체가 적당한 양의 토양과 수소, 얼음이 결합되어 이루어졌기 때문에, 새카만 진공 속에서 표면이 늘 에메랄드처럼 반짝였다. 험난하게 깎인 얼음 산맥 위로 너울거리는 오로라 자락이나, 가끔 빛의 파장에 밀린 얼음 먼지들이 형성하는 대형 폭풍은 참 장관이었는데.



[DISASTERING HAILEINE]

아일렌을 황폐화시켜라.



현은 이번 오더 메시지를 받고 한참이나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잘못 읽은 줄 알았다. 아일렌의, 황폐화? 황폐화시키라고? 거길? 고개가 사정없이 기울었다. 그 단어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서 통용 되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의 황폐화란, 대상이 온전하게 서 있지 못하게끔 만드는 거였다. 대상이 사람이면 그와 관계된 모두를 엉망으로 만든다. 대상이 사물이면 그걸 둘러싼 모든 주변을 엉망으로 만든다.  주변을 파괴해 서있는 자리를 절벽으로 만들어 놓고, 그렇기에 자신들이 내미는 손길을 뿌리칠 수 없도록. 덫을 치는 거지. 



’T, 이거 해야겠어?’ 

‘안 하면.’

‘너무 졸렬한데.’ 

‘그건 우리 생각이고.' 

'잔인해.'

'그것도 우리 생각이고.'

'T.'

'현. 우리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

'제일 중요한 건, 돈이야.'



 T는 하얀 머리칼을 매만지며 이렇게 덧붙였다. 



'너 이번 납부일 지킬 수 있어?'



그 말에 쯧. 혀를 찼다. 흘긋 본 날짜는 어느새 이틀을 남겨둔 상태였다. 그의 질문대로, 나는 과연 이번 납부일을 지킬 수 있나? 촉박한 기한은 큰 결심을 하게 만든다. 숨과 찜찜한 기분을 함께 들이마셨다. 

 아일렌을 황폐화 시킨다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초창기의 기술력만 가진 아일렌 행성의 원시 토착민들은 -아이렌 족- 아마 직경 0.5km의 폭발에도 우수수 무너져버리고 말 것이다. 고도화 된 안전 시스템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100회로도 충분할 것이다. 아냐, 더 확실하게 결과를 내기 위해서라면 150회 정도. 



'150회. 그 이상 되면 다 무너져.'

'Okay.'

'그리고 원래 천 바테룬에서, 천 바테룬 더 받을 거야.'

'...네고 가능하면 뭐. 마음대로.'

'내 양심값은 받아야지.'



행성민들을 몰살시키는 건데.




[UPLOADING COMPLETED]



정지 버튼을 눌렀다. 어느새 폭발도 멎어들었다. 이젠 먼지 더께 아래로 희미한 빛만 번질 뿐이었다. 캠 내에서 촬영한 영상을 짤막하게 줄여, 의뢰인에게 전송했다. 오더를 무사히 완수했다는 보고이며 팀 내 자체적인 기록이었다. 다음번 의뢰도 수주받기 위해. 





[A New message, 1.

     3,000 baterun.]




 얼마 지나지 않아 소플론 -손목에 차는 통신기기 및 포탈 형성기- 에서 입금 완료 메시지가 울렸다. 하얀 글자로 3,000 바테룬이 찍혀 있었다. 예상했던 2천보다 훨씬 큰 금액이다. 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목적이 명백하게 구렸으나 오더를 피할 이유는 없었다. T의 말대로 우리에게, 아니. 현 자신에게 중요한 건 어떠한 가치를 담은 생각도 신념도 아니었다. 졸렬함은 그냥 우리가 느끼고 말면 될 거였다. 저는 돈이 필요했다. 아주 큰 돈이. 신념은 차후의 문제다. 




‘Thanks for using us.

While there is life, there is hope.

I hope you always be with luck and well.'




형식적인 감사 메시지를 보낸 후, 자리에서 툭 털어 일어났다. 매캐한 먼지가 뒤덮어 반짝이는 빛을 잃어버린 아일렌을 물끄러미 내려본다. 피해의 크기를 가늠해 본다. 살아 남은 게 있을까. 살아 남았어도 애매할 거다, 모든 게 페허가 된 곳에서 제정신으로 버티기가. 가슴에 손을 얹고, 마음이 좋지 않다. 정말로. 




고개를 들었다. 제 머리 위로 느리게 자전하는 행성들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쭉 켰다. 광활한 진공 속으로 행성들의 울음 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손목에 찬 소플론 버튼을 눌러 에너지 출력을 최대치로 높인다. 오른쪽 발을 내밀어 제 앞의 땅을 좌에서부터 우로, 가로로 길게 그었다. 치지직, 회갈빛 선이 그어지며 버석한 모래 바람이 인다. 곧이어 회갈빛 선은 둥그런 원으로 변하고, 현은 그 중심을 발바닥으로 탁 내리쳤다. 짧게 반짝이는 빛과 함께, 내리친 그곳이 얇고 투명한 막으로 변했다. 




Order No. 168, Complete. 

홀로 중얼거리며 현이 빛나는 청록 원 안으로 쑥, 가볍게 뛰어 들었다. 머리가 막 아래로 끝까지 잠겼다. 빛은 마치 지퍼가 닫기듯 쭈욱 일렬로 입을 합 다물렸다. 땅은 곧 금새 원래의 형태로 돌아왔다. 





그가 사라지고, 그곳엔 이내 우주 특유의 적막감이 맴돌았다.


















프롤로그 

우주 이야기 



모든 저작권은 제게 있고 무단으로 퍼가지 마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푸른 람 0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