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룸메와의 동거, 평화를 꿈꾸며 시작했지만

Survival of the Green

by 흰봄

오롯한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나를 키운 지 일 년 반이 지나갈 때쯤, 룸메이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뭉글뭉글 차올랐다.


이 험한 세상,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 것이란 자취 초반의 두려움이 막 옅어지고 있던 무렵이었다. 아니 오히려, '좀 할 만 하잖아?'라는 멋모를 자신감이 차오르고 있던 때였는지도 모르겠다. 독립을 축하하며 받았던 이름모를 식물이 지나간 빈 화분이 자꾸만 눈에 밟히던 때였고, 서점에서 인터넷에서 자꾸만 초록에 시선이 머무르던 때였다. 분명 일 년 반 전까지만 해도 인테리어의 일부로밖에 보이지 않던 식물이 어느 순간 생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그들의 이름을 하나 둘 외기 시작했을 때 결국 내 방의 한켠을 그들에게 내주어야 한다는 숙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기어이 숙명론까지 끄집어내며 장황설을 풀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식물과 함께하고 싶었다. 식물을 '키우고' 싶다고는, 차마 바람의 형태라도 말할 수 없었다. 나 정도는 내가 키울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러며 치기어린 자신감에 때때로 우쭐한다 할지라도, 그게 다른 생물을 키우는 능력으로 이어지진 않으리란 걸 이미 시작도 전에 알았으니까. (쓰다보니 이렇게 단정적 어조로 자기객관화를 할 수 있게된 건 오늘까지 나를 거쳐 간 식물들 덕분인 것 같다.) 그렇기에 그저, 식물이 내 곁에서 스스로 자라도록 두고 싶었다. 내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이 방, 볕 잘 드는 창가에서 그들이 초록을 뻗어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초록을 룸메 삼고 싶었다.


그렇게 초록의 생존 투쟁이 시작되었다. (두둥) 끈적한 관심과 서투른 손길, 엇나간 애정의 굴레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식물들의 서바이벌. (두두둥) 평화로운 초록 라이프를 원했지만 순식간에 애원과 비명으로 점철된 스릴러, 혹은 호러로 장르 전환 되어버린 식물 일기. 그 첫 장을 시작한다.


오직 초록만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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