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하나에 애정과, 분무 한 번에 관심과, 손길 한 번에 애틋함과, 영양제 한 방울에 기특함과- 투둑, 투두둑, 투둑, 툭. 애정과 관심과 애틋함과 기특함의 무게가 어찌나 무거웠던지 시선 한 번에, 분무 한 번에, 손길과 영양제 그 한 번 한 번에 초록 이파리들이 사정없이 떨어져 나갔다.
대체 왜, 뭐가 문제야, 어디가 아픈 거야,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뭘 어떻게 해주면 될까, 제발 죽지마. 애타게 외치고 처절하게 부르짖고 서글피 달래보고 절망하며 눈을 질끈 감아보아도 갈변하는 이파리, 물컹거리며 끊어지는 줄기, 곰팡이를 달고 녹아가는 뿌리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더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아까보다 좀 건강해졌을까, 새로운 뿌리가 나지는 않았을까, 새 잎이 돋아날 조짐은 없나. 정말이지 시시각각, 일분 일초가 멀다하고 들여다 보았다. 그저 초록이 좋아서이기도 했다. 잎마다, 줄기마다 각기 다른 초록빛이, 그 구불거리고 곧은 모양새가 봐도봐도 새롭고 볼수록 보기 좋아 계속 보고 싶었다. 그런 초록이 좀더 선명하고 좀더 많았으면 좋겠어서 계속 보게 되었다. -그래, 여기서부터는 욕심이 맞다. 쓰기 전에도 짐작했지만, 쓰고 나니 확실히 알겠다. 그들이 날 떠나게 만든 건 다름아닌 나의 과한 애정과 숨막히게 짙은 관심이었다는 것을.
빛과 공기가 충분히 닿지 못할까봐 지레 걱정하며 파릇한 이파리들을 굳이 솎아내었다. (조금 많이)
햇빛도 보고 통풍도 되라고 겨울날 창가에 올려뒀다 추워지면 내렸다 다음날 또 올려줬다. (식물이 온도와 추위에 적응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진딧물 세 마리에 깜짝 놀라 온 이파리 곳곳에 가닥가닥의 줄기마다 살충제를 도포해 버렸다. (살충제의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과하게 사용하면 식물이 녹는다고 한다)
유리병 속 식물이 기우뚱 거린다고 하이드로소일로 이리저리 모양을 바꿔가며 뿌리를 짓이겼다. (정말 짓이겨졌는지 그후로 물을 갈아줄 때마다 뿌리가 녹아나왔다)
꽂아둔 영양제가 줄지 않는다고 오고가며 꾹꾹, 고양이도 아닌데 꾹꾹이를 해대서 3주 동안 들어가야 하는 걸 3일 만에 다 넣어 버렸다. (고백하자면 영양제 첫 사용이었고 정말 영양제가 안 나오는 줄 알았다)
새로 나는 연약한 줄기가 올라올 공간을 마련해주겠다고 이리저리 식물 위치를 바꾸다 결국 다른 줄기에 치이고 꺽여 까맣게 마르게 해 버렸다. (하아, 이토록 연약할 줄이야)
이런 나를 지켜보던 동거인은 절단마에 오체분시, 독살에 수장에 연쇄살초마, 플랜트킬러 등 온갖 기함할 명칭을 갖다대며 내 손을 거쳐가는 식물들을 애도하고 (대체로) 나를 놀려댔다. 그리고 매순간, 나는 대꾸도 못하고 아아, 아아아, 신음과 한탄과 비명 그 사이 어딘가쯤의 소리를 낼 따름이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비극에도 불구하고, 아까보다 조금쯤 나아지지는 않았을까, 하고. 혹은, 아까보다 더 죽어가는 건 아니겠지, 하고.
과한 애정은 독이 된다. 사람을 망치는 것도, 식물을 망치는 것도, 적정량 이상의 애정과 그에서 비롯된 자의적 재단과 가지치기다. 상대가 숨막힌다 외치는 소리마저 막아버리는, 영양제의 탈을 쓴 독단과 독선이 그들을 꺽어버리는 것이다. 나와 함께하는 너에게 이것도 해 주고 싶고 저것도 해 주고 싶어, 왜 거절해, 다 널 위한 건데, 널 위하는 내가 이렇게 바라는 건데. -분명 이런 나를 못견뎌 떠난 식물들 만큼이나 떠나간 사람들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새삼 내가 퍼부어 온 애정으로 위장한 압제의 문제적 농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숨쉴 틈을 줬어야 했는데. 스스로 뻗어나가고 뿌리내릴 자유를 줬어야 했는데.
이렇게 반성하면서도, 여전히 화분과 화병을 틈만나면 들었다놨다 수시로 들여다 본다. 그래도 하나 배운 바로, 무언가 좀더 해주고 싶은 걸 참고 있다. 정말 진짜 문제가 생겨 나를 필요로 하면, 그때 손을 뻗자. 그 전까지는 지켜만 보자, 다짐한다. 영양제 한 방울 더 넣고 싶어 부들거리는 손을 꾹 쥐고, 끈적한 시선으로 열댓번은 더 훑어내리며 오늘의 초록 일기 마지막 줄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