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구멍, 사랑스런 흠결, 충만한 틈새

Survival of the Green

by 흰봄

구멍. 뚫어지거나 빈 자리. '있어야 할 것'을 전제로 하는 이 단어는 어쩐지 그 울림조차 공허하다. 가지고 있던 것을 잃었다는 점에서 상실감이 느껴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결핍감에 사무친다. 그렇게 생각하면 구멍, 하는 그 발음만으로도 어쩐지 멍해지고 허해진다.


하지만 때때로, 그런 구멍이 절실해지고 소중해지는 때가 있다. 바로 몬스테라다.


몬스테라는 내가 처음으로 인지하게 된 관엽식물의 이름이자, 끄적끄적 심심풀이로 그림을 그릴 때 내가 무엇을 그리는지 알고 그린 최초의 식물화 주인공이었다.


자칫 모르고 보면 야자인가 싶을 만큼 마디를 따라 길게 찢긴 잎, 군데군데 한가운데도 서슴지않고 난 크고작은 구멍들. 더군다나 몬스테라(Monstera)라니. 아무리봐도 괴물(Monster)밖에 떠오르지 않는 이름이지 않은가. 이름과 그 이파리의 생김새에서부터 한 성격 하는 식물이겠거니 지레짐작하고 기괴하다 섣불리 판단내려버렸다.


그래서 나중에, 그 괴상한 흠결 같은 찢김과 구멍들이 더 작고 어린, 연약한 잎들을 위해 스스로를 찢은 행위의 결과라는 걸 알았을 때는, 홀로 창피해 하며 여태껏 가져온 편견을 보상하듯 더 큰 애정을 갖게 되어버렸다.


열대우림의 큰 나무들 아래, 빛이 잘 들지 않는 곳. 적은 빛으로 살아가는 몬스테라에게 구멍이 없다면 아래에 있는 작은 잎들에게는 빛이 닿지 않게 된다. 적은 빛마저도 홀로 욕심내지 않고 서로 나누기 위해 큰 잎들이 찢어졌다는 것이 몬스테라의 잎이 찢어지고 구멍나는 이유라고 한다. 비록 가설의 하나일지라도,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구멍도 찢어짐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부족해 채워야만 하는 어떤 것, 하자이자 손상인 결함으로 여겨지는 게 아니라, 자기자신보다 더 작고 여린 것을 위한 떼어냄, 혹은 훗날의 더 크게 자랄 스스로를 위한 물러섬 정도로 느껴지는 것이다.


비단 몬스테라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도 그러하니까. 상처나 구멍난 마음, 멍들고 찢겨 지워지지 않는 상흔 모두가 외부를 향한 어떤 다정함의 발로이자 자기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과도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구멍과 찢김만큼 다정한 것이 없다. 구멍이 숭숭난 몬스테라의 잎사귀가 오늘따라 유독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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