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내 무몬이 얼음이 됐다

Survival of the Green

by 흰봄

무몬은 무늬몬스테라의 줄임말, 얼음은 식물이 더이상 성장하지 않고 멈추어 있는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다.


튼튼한 개체는 한 달에 신엽을 두 장씩도 낸다는 건강과 성장의 상징 몬스테라가 데려온 지 한 달만에 얼음 상태에 빠져 두어 달 째 꿈쩍을 않고 있다. 무늬몬이라 특수한 건가 생각하려 해도 무늬 하나 없는 그린몬스테라는 그보다 더 전부터 꽝꽝 얼어 있으니 참작의 여지가 없다. 환경에 문제가 있나, 아님 그저 나랑 안 맞는 건가, 인간대 식물종의 상성까지 생각해 보다 너무 많이 갔다 싶어진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꾸준히 자라고 있다는 건, 사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초록별을 건너려는 걸 붙잡아 온 내 첫 식물 스킨답서스와 홍콩야자가 그러했고, 식덕의 문을 열기도 전에 찾아온 식태기에서 날 끄집어낸 히메몬스테라가 그러했고, 수채화 물감이 번진 것 같은 흰 얼룩에 반해 데려온 첫 무늬종 무늬싱고니움이 그러했고, -이렇게 하나하나 짚을 것도 없이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식물들이 번갈아 가며 그 시기를 겪었다. 이미 죽었는데 내가 못알아보는 건 아니겠지, 아님 설마 조화는 아니겠지, 싶을 만큼 꽁꽁 얼어버리는 시기를 말이다.


얼음, 땡-을 시켜주는 건 집사의 몫이 아니다. 식물 스스로다. 아니, 엄밀히는, 식물은 애초에 얼음이 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화분 속에서 뿌리를 쭉쭉 뻗고 있거나 자구를 내고 있거나 줄기 저 속에서 새잎을 낼 준비를 하고 있거나, 그도 아니라면 최소한, 지금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 눈엔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입은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식물은 매일 매순간 조금씩 꾸준히 끝없이 자란다. 움직인다. 변화하고 생동한다. 식물의 역동성을, 식물과 함께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변화하지 않고 상대의 변화만을 바라는 나와는 다르다.


얼음이 된 (것처럼 보이는) 식물을 볼 때 조바심이 드는 건 그 이유도 한몫할 것이다. 저렇게 멈춰 있는 것처럼 보여도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텐데- 더 크고 멋진 식물이 되고자 힘을 비축하고 있을 텐데, 정작 온갖 부산을 떨며 돌아다니는 나는 어떤 변화를 위해 오늘을 살았던 걸까.


무의식중에 그런 어두운 초조함의 급습을 받으면 또 안달하게 되는 것이다. 왜 안 크지, 왜 성장하지 않지, 왜 새 잎을 내주지 않지. 이 글을 쓰는 이제서야 내게 묻는다. 그 초조함의 대상이 정말 오롯이 식물이었는지.


아마 어쩌면, 식물의 변화보다도 내 눈에 더 띄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의 변화일 것이다. 하지만 또 어쩌면, 나 또한 식물처럼 매일 매순간 조금씩 꾸준히 끝없이 자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새 잎은 내는 것 같은 황홀한 변화가 눈에 띄지는 않을지라도, 아마 분명, 변화하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식물과 마찬가지로 한여름의 얼음이 되지는 않은 것일 테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분명.


그렇게 생각하니 "왜 안 크지, 왜 성장하지 않지, 왜 새 잎을 내주지 않지"의 질문에 뒤이어 "으이구, 애쓰고 있구나, 나도 나름 애쓰고 있어." 같은 애틋한 말이 절로 튀어 나온다. 새 잎을 쑥쑥 뽑아내는 초록이들을 보면 뿌듯하고 얼음이 된 초록이들을 보면 짠하고 기특해진다 (물론 감쪽같은 조화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내게서 변화의 희망을 그 누군가 놓지 않아주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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