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다정한 색, 초록
오직 초록만이 살아남는다
왜였을까. 모든 것에 큰 호불호가 없었음에도, 학생 때까지 싫어하는 색을 꼽으라 하면 바로 초록을 골랐다. 파워레인저(제대로 본 적도 없지만)를 비롯한 각종 애니메이션에서 초록을 너무 안 예쁘게 뽑아놔서 그랬을까(전반적으로 과하게 튀는 형광초록이 쓰였다). '그린'을 담당하던 캐릭터들에게 매력을 못 느낌과 같은 맥락으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린' 역할의 캐릭터 특성을 잘 모르겠다) 그닥 눈에 띄지도 않고 큰 감흥도 감동도 주지 못하는 색이었다, 초록은.
그렇지만, 좋아하게 된 건 식물로서의 초록이들보다 색깔로서의 초록이 먼저였다. 비단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식물은 내게 인테리어 소품일 뿐이었지만, 색깔로서의 초록은 내 선호도 순위에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며 좋아하는 색 반열에 들게 되었고, 급기야는 그 이름마저도 사랑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초록, 연두, 녹색, 풀색, green, vert(프랑스어로 [베흐]라고 발음한다)까지, 어쩜 소리도 모양도 이토록 예쁜지. -딱히 예쁠 것 없는 그 모든 게 다 예뻐 보이는 걸로 봐서 콩깍지 씌 듯 반한 게 틀림없다.
식물을 좋아하게 되며 좀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초록을 사랑하게 되었다. 햇빛에 비추면 반투명하게 투과되는 청량한 초록부터 한여름 쨍한 햇살을 한껏 머금은 초록, 수채화처럼 희고 푸르게 물든 초록과 새순의 여리디 여린 초록. 반면 성숙한 잎의 탁한 듯 진한 초록과 그보다 더 완숙해져 암녹색을 띠는 초록, 노란끼를 드리우는 초록. 이 노란끼도 다채로워져 꼬까옷 갈아입듯 예쁜 노랑으로 변하는 초록부터 아픔의 방증으로 누렇게 타버리는 초록, 나아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무언가들의 흔적으로 거무튀튀한 자국을 묻힌 초록까지 있다. 쓰다 보니 안쓰러움에 눈물이 찔끔 나는 초록마저 거론하게 되었지만, 그 또한 초록이니 별수 있겠는가, 받아들여야지.
하지만 생각해 보면, '받아들여 주는' 건 내가 아닌 초록이다. 초록이 나를 받아들여 주는 것이고 초록이 나의 세계를, 나의 손길을 수용해 주는 것이다. 때때로 물 주기를 잊거나 외려 생각 없이 과음을 시키기도 하고, 통풍도 햇빛도 습도도 영양제도 뭐 하나 제대로 맞춰주지 못함에도 연둣빛 새순을 올리고 반짝이는 새잎을 틔우고 어른이 됐단 듯 찐-한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게 다정함의 표시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혹자는 끈질김과 인내와 생명력 등을 말하기도 하겠지만 (가끔 나 또한 "이랬는데도 안 죽는다고...?" 놀라기도 한다는 걸 인정한다. 물론 긍정적 감탄이다) 그럼에도 먼저 꼽고 싶은 건 다정함이다.
그 다정한 초록이들과 오늘도 곡소리 나는 한때를 보냈지만, 이렇게 안정을 찾고 나니 또 새삼 웃음이 비식 새어 나온다. 멀리서 보면 다정하다. 가까이서 보면, 가끔 격해지지만, 그래도 더 다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