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진작 할걸"에 대하여
오직 초록만이 살아남는다
진작 할걸. 그때라도 할걸.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른 법이랬는데. 내 이럴 줄 알았지. 역시, 진작 할걸.
인간이 아무리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동물이라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어쩜 이렇게 구제불능으로 나아지지 못할까 싶어지는 때가 있다.
신청 기한이 넉넉하게 남아 "내일 하지" "모레 하지" "아직도 멀었네" 유유자적하다 결국 마감날엔 잊어버려 기회 자체를 놓치게 됐을 때. 불과 며칠 전까지 맛있게 먹었던 냉장고 속 소중한 식량이 오늘이 되니 더 이상 섭취할 수 없는 무언가로 변해,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그리고 그 손대기도 께름칙한 것을 들고나가 버려야 하는 수고로움적으로도 막대한 멍청비용을 치러야 했을 때. 입안에 상처가 나 약 한번 바르면 나을 것을 별로 아프지 않다며 두고보다 이내 침만 닿아도 쓰라려 무엇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됐을 때. 관계가 정립되는 만남의 초반, 호칭을 편하게 하거나 말을 놓길 머뭇거려 끝끝내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사이로 굳어져 버렸을 때. 그리고, 지난겨울 통풍 문제로 식물들을 차례로 초록별 언저리까지 보냈던 뼈아픈 경험이 있었음에도 서큘레이터를 구비하지 않아 또 한번 갖은 곰팡이와 버섯, 해충들을 키워낸 이번 여름까지도.
몰라서 못했다면 변명할 거리라도 있지, 알고 있었음에도 "진작" 하지 않아 후회하는 이 "진작 할걸"의 다른 말은 "내 게으름과 안이함 때문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말은 "해야 하는데"고.
진작 했다면. 나는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엥겔지수를 조금쯤 낮출 수 있었을 테고 지구와 환경에도 조금쯤 피해를 덜 끼쳤을 테며, 끔찍하리만치 싫은 "음쓰"를 버리는 횟수와 양도 적어졌을 테다. 입안의 상처 같은 작지만 잦은 고통을 비롯한 질병을 키우지 않아 괴로움의 총합 자체를 줄였을 것이다. 내 협소한 인간관계 또한 한층 풍성하고 다채로워졌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식물들이 그 모든 불청객들로 고생할 필요가 없었겠지. 나 또한 매일 새로운 불법점거생물들로 경악할 필요가 없었을 테고 말이다.
"진작 할걸"의 리스트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끝나지 않고 불어나기만 한다. 당장 이 글 자체도 "진작 쓸걸" 후회하고 있으니까. 진작 일어나 앉아, 진작 생각을 정리하고, 진작 한 글자라도 더 썼다면, 내 삶도 내 식물들도 보다 파릇하고 건강하지 않았을까. 하지 않은 지금에야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떠한 결실을 향해 꽃 피우지 않았을까.
그 어떤 미지의 꽃망울을 향해 오늘은 "해야 하는데"를 세 번만 중얼거리고 일어나 앉기로 한다. 서큘레이터 구매까지는 또 열 번의 검색과 열다섯 번의 "사야 하는데"가 있었다는 건 후일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