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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양세계 Nov 25. 2022

싱잉볼, 무의식 속으로

tvN에서 방영한 <여름방학>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싱잉볼의 존재를 알게 됐다. 배우 정유미 님이 명상할 때 쓰는 도구라며 싱잉볼을 가져왔는데 그런 물건이 있는지도 몰랐던 터라 굉장히 신기해 보였다. 그렇게 궁금증이 생겼던 찰나, 근처 주민센터에 싱잉볼 명상 수업이 있길래 냉큼 신청해보았다. 


수업 시간이 아침이라 눈을 비비고 갔는데 여러 가지 크기의 놋으로 된 싱잉볼이 늘어서 있었고, 요가 매트가 싱잉볼을 둘러싸고 둥그렇게 놓여있었다. 싱잉볼을 울리기 전에 선생님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고 싫어하는 소리엔 에너지를 쓰지 않는 마인드 트레이닝이 중요하다고 설명하셨다. 간단한 스트레칭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이 바로 드러누우라고 하셔서 나는 약간 당황했다. 드러눕기만 하면 되는 수업이 있다니! 요가와 필라테스 같이 몸을 쓰는 수업엔 익숙했지만 명상 수업은 처음이었던 나는 누워있기만 해도 되는 거면 굉장히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정신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딩~~~~위용위용위용.....딩~~~~~"

기대했던 싱잉볼의 소리는 생각보다 청아하거나 예쁘지는 않았다. 풍경소리나 맑은 새소리 같은 느낌일 거라고 막연하게 상상했는데 놋으로 된 싱잉볼이라 그런지 낮은 울림음으로 들렸다. 마치 우주선에서 나는 소리 혹은 외계인과 교신할 것 같은 소리였다. 소리 끝에 위용위용 거리는 진동이 내 몸에도 전달되어 머리가 빙빙 울리는 느낌이었다. 선생님 말로는 몸에 안 좋은 부분이 있으면 전달된 진동이 그 부분에서 막힌다고 했다. 


대야 같은 싱잉볼은 크기가 다 달랐고 다른 높낮이의 소리가 났다. 재질에 따라서도 다른 소리가 나는데, 놋 싱잉볼과 크리스탈 싱잉볼의 주파수는 다르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일부러 놋 싱잉볼만 사용하는데 예민하고 불안이 많은 사람은 높은 주파수의 크리스탈 싱잉볼의 진동을 들었을 때 불편할 수 있어서라고 하셨다. 수업이 끝날 때쯤 맛보기로 크리스탈 싱잉볼의 소리도 살짝 들려주셨는데 훨씬 청아하긴 하면서 비행장에서 헬기가 지나갈 때처럼 온 고막이 먹먹해지면서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가만히 누워 싱잉볼 소리와 진동을 느끼고 있자니 내 마음의 천장에 기어올라가서 나를 영화 보듯이 제삼자의 눈으로 관찰하는 느낌이었다. 어제 한 말을 계속 곱씹어보는 나, 사랑받고 싶어 하는 나, 성공하고 싶은 나.....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나의 자아들이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여러 감정들처럼 그 방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천장에 숨은 나는 계속해서 누워있는 나를 관찰했다. 그렇게 점점 무의식 속으로 빠져드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나를 다시 현실로 확 낚아챘다.


"드르렁, 드르렁, 퓨우우우우...!!"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리자 나의 정신은 다시 굉장히 또렷해졌다. 아직 초보자라 그분만큼 빠르게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지 못했던 나는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가 너무 자세히 들렸다. 왜 선생님이 수업 이 시작할 때에 마인드 트레이닝에 대해서 말씀하셨는지 알 것만 같았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 코를 골며 푹 자고 일어난 그분의 표정은 너무나 개운해 보였다. 싱잉볼 수업의 회차가 다 끝날 때까지 결국 그분보다 빨리 잠드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팔다리의 긴장이 탁 풀리면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풍선처럼 몸이 엄청 가벼워지는 느낌은 느낄 수 있었다. 온몸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명상을 한다고 해서 아무 생각도 안 드는 건 아니었지만 머릿속에서 볼륨이 큰 스피커로 쏟아져 나오는 여러 가지 생각의 소리가 그래도 좀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잡생각이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지만 온전히 나에게 편안하게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코 고는 소리를 꺼버리는 것은 불가능해도 싱잉볼 소리에 집중하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 마인드 트레이닝을 현실에서도 적용해서 내가 못 바꾸는 안 좋은 일보다는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과 긍정적인 부분에 좀 더 초점을 맞추면서 살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무엇에 집중할지는 내가 선택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싱잉볼 수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지금은 더 이상 수업을 듣고 있지는 않지만 가끔 마음이 시끄러운 날에는 눈을 감고 가만히 호흡에 집중해본다. 머릿속 소음이 잠잠하게 잦아들기를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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