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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May 11. 2021

그네에 국룰이 시급합니다

평화로운 그네 타기를 위하여

첫째는 주말이면 놀이터에 나가자고 조른다. 주말에 비가 주룩주룩 내려도 우의 입고 나가면 된다고 일단 고집을 부리고 보는 여덟 살 첫째는 놀이터에 있는 기구 중에서도 그네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늘 그네를 탔지만 겁이 많던 꼬꼬마 시절에는 본인이 예상하던 높이보다 높아지면 "그만! 그만!"을 외치던 첫째였다. 그네 타는 법을 알려주어도 도통 혼자 타보려는 의지는 없어 보이고 그네 줄이 휘어지도록 신나게 포물선을 그리며 타는 언니들을 넋 놓고 바라보던 첫째였다. 그랬던 첫째가 스스로 다리를 움직여 타기 시작한 건 여섯 살부터다.

지금은 서서 타기는 물론이고, 서서 타다 앉아 타기, 꽈배기 타기, 2인 타기 등 다양하게 즐긴다. 그네 하나에 두 명이 타는 것(우리 동네 아이들은 바이킹이라고 칭함)을 그렇게 해보고 싶어 하더니 둘째가 다섯 살이 된 후 제법 함께 즐기고 있는 요즘이다.


며칠 전, 첫째가 미술학원에서 꾸며 온 스티로폼 비행기를 날리고 싶다길래 함께 집 앞 공원으로 나갔다. 역시 나의 예상대로 서너 번 날리고는 놀이터에 가잔다. 앞장서 뛰어가던 첫째는 "엄마는 저쪽으로 돌아와."라는 말을 남기고 모래밭을 성큼성큼 가로질러 그네 옆에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초등학교 3~4학년으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그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그네 앞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두 여학생은 그네를 의자 삼아 엄마, 아빠가 많이 싸워서 이혼할 뻔했다는 이야기로 수다를 이어간다. 첫째가 차례를 기다린 지 5분이 지났다. 그 사이 다른 여학생 두 명도 그네 옆으로 줄을 섰다. 첫째는 언니들이 내릴 때까지 아무 말도 못 하고 기다릴 것을 알기에 엄마가 나섰다.


"언니들, 동생이 기다린 지 5분이 지났는데 한 번 만 양보해 주면 안 될까?

나의 질문에 대답은 않고 서로 얼굴만 쳐다본다.

"계속 탈 거야?"

역시나 묵묵부답. 아이들의 태도에 나도 곱지 않은 마음이 일렁인다.

"말을 해줘야지. 우리도 마냥 기다릴 순 없잖아."

그제야 나온 대답은

"우리도 아까 오래 기다렸거든요."


휴, 왜 놀이터마다 그네는 두 개뿐인가. 시무룩해진 첫째 손을 잡고 1분 거리에 있는 다른 놀이터로 향하는데 호주에 갔을 때 샤워실 벽면에서 마주한 모래시계가 생각이 났다(물 부족 국가인 호주는 정부의 절수 시책 동참을 위해 4분짜리 모래시계를 무료 배포했다고 한다. 누가 시킨 건 아니지만 4분 안에 샤워를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한국에서 하던 그것보다 훨씬 재빠른 속도로 비누칠과 헹굼을 반복했었다). 그네를 타기 위해 줄을 서는 기다리는 일은 우리 동네 만의 문제는 아닐 텐데? 누군가 줄을 서면 '곧 내려야겠구나'라는 압박감이 느껴지던데? 그런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네를 기다리는 아이는 1분이 10분처럼 느껴질 텐데? 미끄럼틀은 올라가는 대로 타고 내려오면 그만이지만 '그네는 ○분씩 탑니다'라는 규칙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은 그네 기둥에 모래시계라도 달아놓고 싶은 심정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그네를 타고 싶다던 첫째는 누군가 그네 옆에 줄을 서자 바로 내려왔다. 조금 더 타고 내려오지 그랬냐는 나의 물음에 괜찮다고 답하는 첫째의 속은 괜찮지 않아 보였다. 아까 그네에 계속 앉아 있던 두 여학생이 떠오른다. 나의 대처가 어른으로서 올바른 행동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답답한 이 시국에 잠깐 숨통 트이러 놀이터에 나온 모든 아이들이 마냥 신났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그네'에 있어서 만큼은 암묵적인 국룰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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