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이랑 May 28. 2021

남편이 울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며칠 전 남편이 울었다. 직접 목격한 건 아니지만 휴대폰 너머 그는 분명 울고 있었다.


남편의 눈물을 본 적이 언제더라?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닌 내가 기억해낸 시점은 작년 2월 즈음이다. MBC에서 방영된 <너를 만났다>를 함께 시청하며 남편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고 나는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었다.


남편 회사는 본사가 전라남도에 위치하고 있어 종종 김포에서 광주까지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떠난다. 그날도 1박 2일 일정으로 본사에 간 터였는데 문제의 발단은 전날이었다. 그날따라 나는 아이들에게 유독 날이 서 있었고 하루 종일 그런 나를 지켜보던 남편은 왜 그렇게 짜증을 내냐며 한마디 뱉었다. 아이들을 향해 있던 날은 남편에게로 방향을 전환했고 아이들을 재우고 나오니 함께 시청하던 드라마(텔레비전과 멀어졌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며칠 가지 못해 드라마 한 두 편은 챙겨보게 되었다. 나의 소소한 즐거움, 포기할 수 없쒀!)가 시작되었다. 소파를 차지하고 있던 남편 앞쪽으로 멀찍이 자리를 잡고 드라마를 시청했다. 냉랭하고 불편한 기운이 감도는 거실에서 드라마가 끝날 즈음 남편은 나에게 다가와 이 참기 힘든 기운을 깨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그런 날이 있다. 이 엿같은 기분, 엿같아서 진짜 엿같은데 지금은 풀고 싶지 않은 그런 날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남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지만 남편은 '갔다 올게'라는 말과 함께 현관을 나섰고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있던 나는 마지못해 '잘 갔다 와'라며 영혼은 쏙 빠진 의무적인 인사를 건넸다.

매우 불편했다. '비행기에서 내렸을 시간인데 전화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은 생각으로 끝났다. 학교에 갔던 첫째가 피아노 학원까지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또 다른 빨래들을 세탁기에 넣고 있었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응, 잘 갔어?"

"아까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기가 엄청 흔들렸거든. 자기랑 싸우고 나와서......"

"여보세요? 여보세요? 왜 안 들리지?"

갑자기 먹통이 된 전화를 끊고 다시 걸었다. 남편은 전화를 받았는데 역시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내가 물었다.

"자기, 울어?"

"비행기가 흔들리는데 자기랑 싸우고 나와서...... 내가 만약에......"

"그래서 지금 우는 거야?

"아, 이상하네. 왜 자꾸 눈물이 나지?"

나의 눈물샘도 터지고야 말았다. 미안하다고, 내 성격이 지랄 맞아 미안하다고, 이런 일로 울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했다.




첫째가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엄마, 내가 어른되면 엄마는 할머니야? 내가 육십 살 돼도 엄마 만날 수 있지?"

네가 육십이면 나는 아흔인데 만날 수 있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남편의 외할머니는 아흔인 올해 돌아가셨고 이 달 초에 뵈었던 나의 외할머니는 아흔임에도 아직 10년은 더 정정하게 지내실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백세시대라고는 하지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내가 딸한테 해 줄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이다.

"그럼 엄마는 구십 살인데 만날 수도 있고 못 만날 수도 있어."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당장 내 곁을 떠나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지랄 같은 성격은 좀 다듬어 볼게. 내가 더 잘할게. 우리 있을 때 잘하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