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등학생이 된 첫째, 유치원생이 된 둘째 덕분에 나는 새로운 '○○맘'을 여럿 알게 되었고 그중 몇 명과는 서로의 집을 오가기도 했다. 학교 다니는 게 즐겁다는 첫째는 엄마의 의사는 확인하지도 않은 채 약속을 잡아 온다.
"엄마, ○○랑 몇 시에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어."
"엄마, △요일에 ○○랑 우리 집에서 놀기로 했어.
학교 중앙현관을 나서며 나를 발견하고는 대뜸 그들만의 약속을 통보하는데 당황스럽기 이를 데 없지만 최대한 태연한 척하며 약속은 지켜주려고 노력하는 1학기를 보내고 있다. 조금 피곤한 건 사실이지만.
새롭게 사람을 사귀는 것에 대해 20대까지는 거침이 없었다. 해보고 싶었던 봉사활동을 했고, 해보고 싶었던 도보여행을 했고, 워킹홀리데이라는 제도를 알고는 훌쩍 호주로 떠났고, 취미가 같은 사람들이 모인 카페에 가입해 모임에 나갔다. 거침없는 활동을 통해 사귄 사람들과 신촌, 홍대에서 종로에서 강남에서 참 자주도 만났다. 휴대폰 연락처 목록은 늘어갔고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주말마다 약속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스물아홉이 되고 결혼 소식을 알릴 사람들을 정하려고 휴대폰 연락처를 들여다보는데 화면을 터치하는 손가락은 멈추질 못하고 자꾸 움직이기만 했다. '이 사람은 꼭 와줬으면 좋겠다'보다 '내 연락을 받고 불편해 하진 않을까' 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맥은 가지치기가 되었고 거침없이 사람을 사귀던 20대와 달리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잘 챙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해'라는 생각을 가진 30대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잘 맞지 않는 사람과 만나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고 이제는 그런 시간에 내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특히 내가 이야기할 틈은 주지 않고 주야장천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을 만나고 나면 거의 탈진 상태가 되어 다음 만남이 두려울 정도였다.
첫째의 학급단톡방이 생겼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인사하고 지내는 같은 반 엄마가 나를 초대해 주었고 새로운 사람이 초대될 때마다 '안녕하세요. ○○엄마 ○○○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려요.'와 같은 인사를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부모회 회장으로 활동 중인 엄마가 개인톡을 보내왔다. 평일 하루와 주말 하루의 시간을 정해서는 괜찮은 날에 엄마들끼리 한 번 모이자는 내용이었다. 카톡을 보자마자 머리가 아파왔다. 5인 이상 집합 금지인데 모이자고? 주말엔 아이 동반도 가능하다고? 엄마 세명만 모여도 최소 6인인데 왜 모이자는 거지? 굳이? 이 시국에? 고민 끝에 이렇게 보냈다.
'저도 인사 나누고 얼굴 익히면 좋겠지만 5인 이상 집합 금지인데 무리해서 모일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혹시 단순히 인사 나누는 것 외에 다른 이유도 있으신가요?'
다른 이유가 없단다. 얼굴 보며 잠깐이라도 인사 나누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서(그런 의견은 단톡방에 없었는데 어디서 나온 걸까?)이 시국에 조심스럽지만 앞장서서 여쭤보는 거라 하셨다. 부담 갖지 말라길래 이렇게 보냈다.
'네~ 그런 의견이 있었군요. 저는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면 뵙는 것에 의견 보탤게요. 늘 4반 일에 앞장서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보낸 답장이었지만 아차 싶었다. 그냥 시간이 안된다고 하면 될 것을 괜히 말을 길게 했나 싶었다. 재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지만 엎질러진 물이라 담을 수가 없었다. 그 후 몇 명의 엄마들이 모인 듯했다. 며칠 뒤 첫째의 하교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를 단톡방에 초대해준 엄마가 학부모회 회장 엄마에게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누군지 모른다고 하셔서요."
아, 엄마들 모인 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한 건가? 순간 기분이 나빴지만 소신대로 행동했기에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 아이 앞에서 부끄러운 행동은 하지 않았으니 '기분 나빠하지 말자!'하고 털어 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도 다른 곳에서는 험담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늘 친구 때문에 기쁘다가도 상처 받는 일이 생긴다. 모든 사람과 다 잘 지내면 좋겠지만 그건 내 시간과 체력, 마음이 가는 방향 이 세 가지가 모두 허락했을 경우이다. 살아보니 그런 경우와 맞아떨어지는 친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를 깨닫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해본 엄마를 든든한 백 삼아 첫째가 크게 상처 받는 일 없이 친구들을 사귀어 갔으면 좋겠다. 물론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기본으로 깔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