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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Jan 23. 2021

브런치, 시작하다.

최고의 생일선물

생일이면 설레고 들뜨던 때가 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 기능은 퇴화가 된 건지 30대 후반에 맞이하는 생일 아침, 내 감정은 고요하다. 생일 축하한다며 친구들, 학교 및 전 직장 선후배들, 육아 동지들이 카톡을 보내온다. 신경 쓰고 챙겨준 마음 만으로도 고마운데 함께 온 기프티콘을 잊지 않고 쓰기 위해 휴대폰 갤러리에 잘 모아둔다. 하루 종일 나와 붙어 있는 딸이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는 "나는 생일 때 선물 7개 받았는데 엄마는 나 보다 더 많이 받네." 라며 새초롬 해진다.


나는 오늘 딸을 새초롬 해지게 만든 선물들보다 더욱 값진 선물을 받았다.

기프티콘 중 하나를 쓰기 위해 셀프 생일 케이크를 구입하려고 빵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잠시 휴대폰을 꺼냈는데 브런치 알림이 떠 있다. 확인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그저께 작가 신청을 했고 5일 정도 걸린다기에 다음 주나 되어야 결과를 알 수 있겠거니 싶었다.

'아무나 작가 타이틀 안 붙여주겠지.'

'브런치 보면 글 잘 쓰는 사람들 정말 많던데......'  

'그래도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데 브런치 알림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그 자리에서 (방방 뛰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발을 동동거리며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지만)와~ 하는 소리를 냈다.


케이크를 사고 집에 왔는데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나 왜 이렇게 좋아하지? 나는 왜 작가가 되고 싶은거야?




사실 나의 꿈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방송PD란 직업을 알고 쭉 그것이었다. 목표하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고 우연찮게 4학년 2학기 때 누구나 다 아는 방송국에서 파견직 조연출로 일을 시작했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서너 분의 PD를 도우며 나는 내 꿈에 대해 처음으로 자신감을 잃었다.

'와, 저 PD님은 정말 대단하시다.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흠, 저 PD님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편집 구성이 똑같네. 별로야.'

'아, 내가 PD가 된다고 해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맡을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대학에서 광고 관련 수업을 들을 때는 창의력, 창조성 뭐 그런 것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적성검사를 해보면 늘 교사, 공무원 등의 직업군이 나와 혼란스러웠다. PD 말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현실에서 수많은 벽을 마주하고 보니 도저히 그 벽을 깨고 PD가 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방송국을 그만두고 1년을 호주에서 살았다. 영어 공부를 하겠다는 핑계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 수십 군데 취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됐으면 하는 곳들은 다 떨어지고 결국 생각지 못했던 일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 외근을 나가고 혼자 여러 가지 업무를 봐야 했는데 내가 참 띄어쓰기, 맞춤법에 예민했다. 퇴근 후엔 '우리말 겨루기'를 참 열심히 시청했던 기억이 난다. '한 번 나가볼까?'라는 생각만 했을 뿐 그 어떤 실행도 하지 않은 채 흐지부지 시간이 흘렀다.

(이 글을 쓰며 '우리말 겨루기'를 검색해보니 아직도 방송 중이다! 아이들이 자는 시간이 아니라 TV 시청이 어렵겠지만 이번엔 정말 도전 의지에 불을 지펴봐야겠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싸이월드를 시작으로 SNS의 영향이 컸지 싶다. 다른 사람들이 올리는 글을 보면 부러웠다. '나도 잘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는데 글쓰기 강좌가 있는 센터를 기웃거리기만 할 뿐 그 이상의 노력은 하지 않았다. 첫째를 낳고 백일상, 돌잔치 등을 검색하는데 다양한 블로그가 눈에 들어온다. 나처럼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멋들어진 블로그를 운영하는 다른 엄마들이 부러웠다. 야심 차게 블로그를 개설했지만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편 글을 올려보고는 안되겠다 싶어 문을 닫았다.


그렇게 살아왔던 내가 작년에 브런치를 알게 되고 발을 들였다. 오늘 작가라는 타이틀을 받고 보니 막연하게 '잘 쓰고 싶다'가 이제는 의지 충만하게 '꾸준히 써보자'로 바뀌었다. 꾸준히 하다 보면 글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며칠 동안 쓰고 고치는 시간이 하루가 되고 반나절이 되겠지. 지금 이 글도 쓰기 시작한 지 세 시간 만에 마무리 짓고 있는 나 자신이 놀랍다. 자정이 지나 어제가 되어 버렸지만 도전을 하고 최고의 생일선물을 받은 나 자신에게 '셀프 쓰담쓰담'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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