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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Feb 04. 2021

당신은 며느라기인가요?

결혼 후 첫 명절을 떠올리며

<며느라기>라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인터넷 방송에서 방영 중이다.

최근 명절에 관한 에피소드가 업데이트 되었는데 꽤나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었다. 사린이가 구영이와 결혼하고 며느리가 되어 겪은 첫 명절, 추석. 서로에게 감정이 상했고 카페에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려는 사린에게 구영이가 찾아온다. 사린은 구영에게 속마음을 쏟아낸다.


"나 남자랑 여자랑 다른 상에서 밥 먹는 거 처음 봤어."

"왜 내가 아가씨 남편 밥까지 차려야 돼?"

"명절에 내가 내 엄마 보러 내 집 가는데 허락 받고 가야 되는 거 그게 문제라는 생각이 안들지 너는?"


구영이도 받아친다.

"엄마를 바꿀 순 없잖아!"


"우리 왜 이렇게 됐을까? 연애할 때 우리 둘만 생각하면 됐는데, 그냥 우리 둘 얘기만 하면 됐는데......"

"그냥 딱 나 혼자면 좋겠다."




나도 사린이와 다를 바 없는 경험을 했다.

9월에 결혼하고 맞이한 나의 첫 명절도 추석이었다. 육 남매 중 장남인 시아버지의 남동생은 일 때문에 외국에 계셨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썰렁한 명절을 맞았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이 명절에 모인 전부였다.(남편도 결혼 전에는 경상북도 바닷가에 있는 할머니 댁에 가서 친척들이 모두 모인 북적북적한 명절을 보냈다고 한다.)


전의 종류는 홀수 라야 한단다. 차례상에 올리지 않는 것 까지 아홉 가지 종류의 전을 준비하신 시어머니와 단둘이 마주 앉아 기름 냄새 폴폴 풍기며 바구니에 전을 채워가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해마다 이런 명절이겠구나. 큰집에서 전 부친 경력이 10년이 넘는데 시어머니 전과 겹치는 게 몇 개 없다. 나는 전라도 방식, 어머님은 경상도 방식의 차이였을까? 어리바리하며 보조를 맞추는데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계신 시아버지와 남편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내가 수년간 겪었던 명절의 모습은 이랬다. 명절 첫날 같은 지역에 살고 계신 큰아버지 댁에 가면 아빠의 4남 2녀 중 4남의 식구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사촌들만 7명으로 심심할 틈이 없었고 엄마들의 분업으로 다양한 음식들이 착착 만들어졌다. 나도 어른들 틈에 끼어 전을 부치고 설에는 만두를, 추석에는 송편을 빚었다. 명절 당일 아침이면 작은할아버지 댁 식구들이 오셨고 다 함께 차례를 지내고 식사를 했다.


전을 다 부치고 저녁 식사까지 마쳤는데 집에 가라는 말씀이 없으시다(시댁과 신혼집은 도보 2분 거리). 이렇게 계속 앉아 있어야 하나? 자꾸만 울컥했다. 차 타고 5분만 가면 되는 큰아버지댁에 가고 싶었다. 방마다 무리들이 차지해 좁고 복작거리는 그곳에 끼고 싶었고 내가 정말 예뻐하는 사촌오빠의 아들, 딸이 보고 싶었다. 더 이상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온 힘을 다해 말했던 기억이 난다.


"저 큰집에 다녀올게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다음 날, 차례를 지내고 점심도 먹었다. 큰아버지댁에서 집으로 돌아오셨을 나의 부모님이 보고 싶다. 엉덩이가 들썩거리는데 남편은 누워서 통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연신 시계만 바라보다 또 힘을 내어 입을 열었다.


"저 이만 친정에 가볼게요."




나는 애초부터 며느라기에 진입하지 않은 것 같다. 내 부모님께도 안 하는 것을 며느리라는 이유로 시부모님께 할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없다. 다만, 시어머니도 시댁에서 고생 많으셨음을 알고 여전히 혼자 많은 것을 해내고 계시는 시어머니를 존경함은 사실이다. 그런 시어머니께 무뚝뚝한 며느리가 할 수 있는 건 진심으로 어깨 한 번 주물러 드리는 것이다.


다음 주면 명절이다. 이미 많은 며느리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며느라기를 겪고 있는 며느리들이 며느라기를 졸업하는 명절이 되길 바라고 <며느라기>의 사린이는 어떻게 극복하는지 다음 회차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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