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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Jan 30. 2021

생애 첫 위내시경

기억하기 위한 기록

가까운 내과에서 건강검진을 했다. 짝수 연도 출생이라 작년에 했어야 했지만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미처 내 몸을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지난 11월부터 소화불량이 생기고 아침 공복 상태마다 울렁거리는 것이 이상하던 차에 위내시경도 추가했다.

작년에 시어머니도 그 내과에 혼자 가셔서 위내시경을 하셨다길래 나 역시 당연히 혼자 갔는데 보호자는 안 오셨냐고 묻는다.(예약하러 방문했을 때 보호자 동행 여부를 묻지 않기도 했다.) 작성하라는 서류를 보니 보호자 서명란이 있다. 내 이름과 함께 환자와의 관계에 본인이라고 적었다.




병원, 주사 등의 이미지에 겁먹는 편이 아니지만 길고 긴 물체가 내 입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조금 긴장은 되었다. 내 이름이 불렸고 보호자 여부를 또 확인한다. 옆으로 누운 채 코에 산소 줄이 끼워지고 입에 마우스피스가 물렸다. 11시 55분, 의사가 들어오고 왼쪽 팔에 채혈을 하며 미리 잡아놓은 혈관을 통해 수면유도제가 주입된다. '잠드는 걸 확인해야 하니 눈을 뜨고 있으라'기에 벽시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머리가 팽창하는 듯한 두통이 느껴졌고 눈을 뜨니 12시 5분. 모든 게 끝나 있었다. 약간 몽롱한 기분을 느끼며 비틀거린 기억이 난다. 누군가의 부축에 따듯한 전기장판이 깔린 침대로 옮겨졌고 잠시 누워 있었을까 또 누군가 들어와서 '어지럽지 않으면 나오라'길래 괜찮아진 것 같아 복도로 나와 앉았다.


마지막 순서로 자궁경부암 검사를 위해 굴욕 의자에 앉았다 내려왔고 바로 결과가 나오는 몇몇 검사들 결과를 듣기 위해 진료실로 들어갔다.

"엑스레이 결과 이상 없고 심전도도 정상입니다."

"네."

"내시경 하는데 크게 소리 지르고 엄청 움직이셔서 몇 사람이 와서 붙잡았어요."

"네? 제가요?"

"제 아들이었으면 볼기짝 때리면서 검사했을 거예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민폐를 끼쳤네요."

"처음이라고 하셨죠? 처음 하시는 분들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좀 심하셨어요. 다음엔 이보다는 덜 하실 거예요."

"네."

 

말로만 들어봤지, 내가 그럴 줄이야. 난 언제 눈을 감았는지도 모른 채 잠이 들었을 뿐인데 그 난리를 쳤구나. 내시경 결과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증상과는 연관이 없어 보인다며 위에 도움이 될만한 약을 처방해 주셨다. 병원을 나오며 받은 주의사항에는 커피를 피하라고 했지만 밀려오는 잠을 이겨보려 차가운 커피를 마셨고 불량 환자가 약을 복용한 지 이틀 째. 좋아하는 떡볶이도 줄여보고 육퇴 후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먹던 생라면도 줄여보고 소화를 돕는다는 효소를 먹어봐도 별다른 효과를 느끼지 못했던 불편한 증상들이 확실히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다섯 번 먹고 나니 한결 편해짐을 느낀다.


아직 확인해야 할 건강검진 결과가 남아있고 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대장내시경도 해야 한다 생각하니 뒷골이 서늘해진다. 그때까지 숨차게 유산소 운동, 땀나게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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