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돌아온 월요일 아침이다. 더군다나 하늘은 어두컴컴하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으슬으슬 몸으로 한기가 스미는.... 이건 확실하게 '이불 밖은 위험하니 나가지 말라'는 하늘의 메시지다. 그런 생각을 하며 무겁게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한다. 출근시간 여덟 시를 맞추려면 조금 더 일찍 아침을 열어내야만 한다.
학교 정문에 들어서자 초소의 지킴이 아저씨가 인사를 건네신다. 미소 장착 완료. 오늘의 사회적 얼굴이 자기 업무를 시작한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아직 불이 다 켜지지 않은 공간에 온기를 더하듯 급식실 쪽에서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마치 시골의 새벽을 알리는 아궁이의 연기처럼.... 그 따뜻함을 뱃심삼아 본격적인 하루를 시작해본다. 밤새 까무룩 잠들어있던 책들을 깨우며 불을 켜고, 대출반납기와 컴퓨터 스위치를 누른다. 이 곳은 나의 소행성, 아니 초등학교 도서관이다.
텀블러 가득 차를 내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익숙한 첫번째 이용자가 들어온다. 여덟 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학교에 오려면 이 아이는 집에서 몇 시에 나왔으려나, 맞벌이 일까? 출근하는 부모님을 따라 일찌감치 집을 나선 것일까? 아이는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있다. 그 뒤로 하나, 둘 도서관을 채우는 아이들의 부름에 책을 찾고, 정리하고, 오늘의 일정이 파악하다 보니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수업 종이 치기 5분 전에 맞춰놓은 알람이다. 이 알람이 없으면 아이들은 수업이 시작된지도 모르고 도서관에 앉아 있다 뒤늦게 교실로 뛰어가기 일쑤다. 바닥과 의자, 여기저기에 앉아 책 속을 유영하던 아이들을 하나, 둘 끄집어 내 각자의 행성으로 돌려보낸다. 아쉬운 듯 끝까지 읽던 페이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을 달랜다.
"중간 놀이 시간에 와서 또 읽자."
초등학교 도서관은 전쟁터다
라는 말은 이미 사서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경구다. 그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 나의 아름다운 소행성을 시시각각 전쟁터로 만들어내는 능력은 가히 천부적이다.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기 버거운 중, 고등학생에 비해 초등학생들에게 책은 여전히 좋은 놀잇감이다. 그림책은 십 분도 안돼 뚝딱 읽을 수 있고, 그런 책을 빌리고 또 빌리고, 1교시 마치고 오고, 2교시 마치고 오고.... 그렇게 시간마다 눈 도장을 찍으러 오는 아이들이 여럿이다. 거기다 수시로 도서실에서 수업을 하기 때문에 북트럭엔 눈덩이 불어나듯 책이 쌓인다. 차라리 북트럭에 놓아두면 제대로 정리라도 하련만.... 책 꽂이마다 급하게 뒤집히거나, 책 날개가 젖혀진 채 꽂혀진 책들이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선생님, 이 책 어디 있어요?" (네가 찾아보면 안되겠니?)
"재미있는 책 추천해주세요~" (그걸 꼭 지금?)
"저 연체 됐어요 선생님?" (네가 알지 내가 아니?)
"선생님 이거 반납이 안돼요." (내가 하면 됨)
"선생님 이거 대출이 안돼요." (반납 안 한 책 있음)
나는 아이들의 동네 북이 되어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실은 집에서도(또 다른 아이들과 동거중) 이런 상황이 종종 있어 왔던지라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여기가 집인지 직장인지 분간 못하고 이런 말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
"엄마가 이따 해줄게! 잠깐만."
이런.... 엄마와 선생님의 이 어중간한 크로스에서 정신없이 하루가 굴러간다. 일과를 마치고 퇴근할 때가 되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곤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정적'. 쥐 죽은듯한 고요 (그래서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만....)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
나의 작고 소란스러운 이용자들에게 하루종일 시달리다보면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귀엽긴 뭐가 귀엽냐!"
소리가 터져나오곤 하는 것이다. 누런 콧물을 입술까지 달고 와서 굳이! 나에게 보여주며 휴지를 찾는 아이들과 의자에 거꾸로 앉아 까딱까딱 발을 흔들다 기어코 넘어지는 아이들(하지 말라고 몇 번 말했니?), 수업시간에 갑자기 엉덩이를 하늘로 머리를 바닥으로 취하고 세상을 거꾸로 보고 싶어하는 아이들 속에서 깊은 한숨을 여러번 내쉬고 나서야 도서실의 하루가 끝나는 것이다.
해도해도 티가 나지 않지만, 하루만 안해도 바로 티가 나는 것이 살림이라 했던가. 그런 도서관 살림을 오늘도 아무도 모르게 해내고는 불을 끄고 돌아서 나오는 길, 늘봄교실에 남아있던 일학년 아이들 몇몇이 나를 발견하고 저 멀리서 (굳이) 달려온다.
"사서선생님~~"
나는 온화한 미소의 스위치를 다시 한 번 올리고 인사한다. 그 중 한 남자아이가 달려와 불시에 허리춤을 꼭 껴안으며 폭 안긴다.
아.... 나는 그만 무장해제.
아기새처럼 폭 안겨 눈을 감고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짓는 아이를 보며 그만, '그' 생각을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 너무 귀엽잖아....'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나오니 아침부터 내리던 봄비가 아직도 내리고 있다. 우산을 쓰고 내리막길을 걷는데 맞은 편에서 아이 하나가 가방을 맨 채 비를 맞으며 거꾸로 올라오고 있다. 도대체 왜 비를 맞는거냐, 우산은 어디 있는거냐,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냐 그런 생각들로 가득차서 한마디 해주려 다가가는데,
"주완아, 노올자~~"
오는 비를 다 맞으며 아무렇지 않게, 천진한 얼굴로 다시 한 번.
"친구야, 노올자~!"
그 목소리와 표정이 너무 맑아, 그만 허탈해지고 만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다. 좋은 것을 보면 기분이 좋은 것처럼 그냥 그렇게.... 기분이 좋아지고 만다. 어쩔 수 없는 나의 어린왕자, 공주들이 그렇게 나를 길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