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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yden Feb 22. 2018

'그 날'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

- 소설 '소년이 온다', 그리고 영화 '택시 운전사'

※ 책과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 출처 :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지금으로부터 약 38년 전, 대한민국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80년 5월 광주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함성과 무고한 시민들이 흘린 피로 온통 붉게 물들었다. 독재군부를 등에 업은 군인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때리고 죽였다. 이들이 광주에서 흘린 피가 도화선이 되어 결국 우리나라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한 발 내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제는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이 몸소 체험한 사실이 아닌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세대를 거듭할 수록 그 의미는 점차 흐릿해져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정보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우리가 자유롭게 투표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있기까지 광주의 시민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는 사실이다.


 무뎌지는 광주의 그 날을 잊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듯 그 날을 묘사한 수많은 작품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작품들은 동일한 역사적 사실을 묘사하고 있지만, 지루함 없이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 중에서도 다른 작품과 차별화되는 표현으로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한 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그리고 최근에 등장한 영화 '택시운전사'다.

소년이 온다 / 한 강 / 창비

 '소년이 온다'는 중학생 소년 '동호'를 중심으로 80년대 광주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전남도청에 끝까지 남아 시민군과 함께하다 결국 최후를 맞은 동호, 그보다 앞선 시위 때 죽은 그의 친구와 누나. 그리고 도청에 가지 않아, 가지 못해 살아남은 이들이 있다. 사실, 이 작품은 주인공으로 나선 동호보다 이를 애도하는 주변인들의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마치, 동호가 죽었다고 해서 그 날의 아픈 기억이 없어지지 않듯 말이다. 오히려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자와 다를 바 없는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당당했던 시민군 청년 진수는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나와 우울증에 걸려 자결을 한다.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는 은숙은 고문을 담당했던 형사에게 뺨 일곱 대를 맞아 볼이 터진 곳을 기억하며, 그가 다루는 출판물은 항상 정부의 검열삭제를 당하는 것이 일상이다.


 소설이 다른 작품과 차별되는 점이 있다면, 사건을 기록하는 표현이 매우 강렬하다는 점이다. 고름, 구더기, 썩은 물, 피 흘리는 고깃덩어리 등 사람들이 꺼려하며 언급을 기피하는 단어들로 사건을 담담하게 직시한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을 확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자유를 갈망하던 이들을 피 흘리는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린 이들에 대한 고발이다. 이 소설은 적나라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충격적인 사건으로 각인되도록 한다.

영화 택시운전사(장 훈 감독)

 반면, 영화 '택시운전사'는 민주화 운동 가운데 있던 시민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선량한 소시민들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광주역에 모여 시위를 하는 사람은 일종의 축제를 하는 것처럼 웃고 떠들며 시위를 즐긴다. 독일인 기자를 태우고 가는 주인공 김 씨에게 주먹밥을 나눠주기도 한다. 얼마 전 있었던 광화문 촛불 시위를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김 씨 역시 그저 빡빡한 생활을 걱정하는 평범한 택시 운전사다. 넉 달치 밀린 사글세 10만원을 택시비로 준다는 말에 독일인 손님을 서울에서 광주까지 모셔왔을 뿐, 민주화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5월 광주의 비극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는지를 역설한다. 김 씨는 순식간에 '돈 몇 푼에 나라를 팔아먹은 빨갱이'로 둔갑하여 사복경찰들에게 죽임을 당할 처지로 몰린다. 작중에서 자주 등장하는 병원과 가두시위 장면에서는 노인들이 눈에 띈다. 자식을 잃고 오열하는 할머니, 그저 길거리에 나와 있다가 무참하게 두들겨맞는 할아버지까지 사연은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힘 없이 당하기만 한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인물들의 상처가 더욱 깊게 다가온다. 이렇게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독재군부에 대한 분노가 스민다.

관객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검문소 장면 / 영화 '택시운전사'

 그런데 두 작품 모두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거센 폭압에도 끊임없이 저항하며 민주화를 이루려는 노력, 그리고 꺾일 줄 모르는 양심을 조명한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광주 사태를 묘사하여 모조리 검열삭제를 당한 희곡을 기어이 발표하고, 소리 낼 수 없는 입으로 뻥끗거리며 연극을 진행한 극단주가 있었다. '택시운전사'에서는 하나뿐인 딸을 위해 서울로 혼자 돌아가던 중 거짓을 선동하는 뉴스에 양심이 찔려 다시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 김사복'이 있었다. 트렁크에 숨긴 서울 택시 번호판을 보고도 못 본 척 검문소를 통과시킨 군인이 있었다. 이들의 작은 노력이 있었기에, "몸부림친다 한들, 뭐가 달라져?"를 외치는 세상을 깨부수고 민주국가를 이룩할 수 있었다. 이 두 작품이 갖는 진정한 가치가 여기에 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본다. 겉보기엔 완전한 민주 국가를 이룬 것 처럼 보이지만, 권력을 휘두르고자 하는 세력은 훨씬 더 교묘한 수법으로 시민들을 갉아먹으려 하고 있다. 80년대 비극을 주도했던 세력은 시간이라는 그림자 뒤에 숨어 우리가 이 사건들을 망각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이는 국정 농단 사건을 주도하여 기업들의 뒤에서 정책을 조종하며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에 맞서는 건 여전히 시민이다. 끊임없이 국가를 노리는 세력에 대항하여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이 싸움이 결국은 시민들의 승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항상 '광주의 숭고한 피'를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 날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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