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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바다 Jun 01. 2024

가난 그리고 약속

in Sapa

넉넉지 않은 집안의 4남매의 첫째.

아빠는 택시드라이버 엄마는 전업주부.

대대로 넉넉했다면 모를까 우리 부모님도 스스로 자립해야 했으니 참 힘들었다.

화장실이 외부에 있고 연탄 떼는 집에서 살았다. 딱 1988에서 보던 집!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남의 집 옆 작은 집, 단칸방 등에 거주하며 5번의 이사. 그렇게 가난했다.

하지만 나는 무슨 똥머리가 들었는지 고등학생이 된 후 늦둥이를 둘러업은 엄마를 동반하여 그 당시 신상 청바지를 구입했다. 15만원 정도 했던 것 같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 가격의 바지는 사지 않는데 참 미련하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달라고 많이 졸랐다.

성장판이 거의 닫힌 30인치의 나이였지만 엄마는 4인치나 큰 바지를 사주셨다. 앞으로 커서도 입으라는 뜻이었을까. 눈물이 앞을 가린다. 기죽지 말라고 학교 가서 열심히 공부하며 놀 땐 놀라고 사주셨던 것 같다. 그때 엄마의 바지는 얼마였을까. 신발까지 포함해서 걸친 옷들이 다해도 그 청바지 가격보다 비쌌을까? 눈물이 쏟아진다.


그만큼 나는 철없고 막무가내 아이였다. 여느 4남매의 막내들도 그렇게 철부지는 없을 짓들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누가 보면 첫째가 아닌 막내로 생각할 것 같다..

없는 살림에 학원도 꾸준히 보내주셨고 놀러 갈 용돈도 꼬박꼬박 손에 쥐어주셨다. 나의 욕심에 좋지 않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지방국립대를 뿌리치고 서울로 올라가 학비뿐만 아니라 생활비, 학원비까지 내주셨다. 외벌이 택시드라이버인 집에서 가능했던 것일까.


결론, 부모님의 물심양면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용돈은커녕 내 입 풀칠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기회를 찾는 중이라 생각하고 다짐한다.


막노동이라도 해야 할까. 내 과거를 돌아보니 경제적으로, 자본이라는 분야에서 나는 크게 실패했다. 어찌 이리 무지하며 준비가 없었을까.

지금이라도 조금씩 천천히 알아가며 돈을 몹자. 우선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본금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 보답할 때다. 매달 보내는 기부금을 낼 때가 아니라 부모님께 드릴 용돈 통장을 만들어 드려야 할 때란 것을 자각하며.


지금의 아이러니한 여유가 큰 가치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책 읽으며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그릇을 키우자.

그리고 보답해 드릴 것이다.

약속한다. 나 키워주신 헌신과 노력에 1%라도 보답해 드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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