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달리기

by 화인




작년 이맘때쯤,

'맨발 달리기' 모임에 나가보았다.


눈여겨보던 달리기 모임이 있었는데 마침 쉬는 날, 그것도 집에서 5분 거리인 올림픽공원에서 그냥 러닝 모임이 아닌 '맨발 달리기'라니. '달리기' 앞에 '맨발' 하나 붙었을 뿐인데 너무나도 유니크하게 느껴졌다! 아마, 내 내면에 잠자고 있던 어떤 열망이 건드러진 것 같다.


모임을 주도하는 코치의 이력도 특이했는데 스탠퍼드 대학에서 환경공학 석사 졸업 후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케냐로 달리기 유학을 갔다고 한다. 타지에서 혼자 유학하는 동안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술과 담배로 우울감을 지우려 했고 그러다 우연히 맨발로 달린 게 달리기의 시작이었고, 푸른 풀밭 위에서 홀로 뛰는 순간, 처음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코로만 호흡해도 편한 속도로 천천히 뛰는 것을 권한다. 행복을 느끼며 천천히 달리기, 일명 '마인드풀러닝'. 속도와 거리에 집중하는 게 아닌, 내 몸 상태에 몰입하며 쉽고 즐겁게 뛰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맨발'이 주는 장점이 아주 많다며 인류가 신발을 신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랜 역사가 아니며 우리의 DNA 속에는 맨발로 생활한 기록이 저장되어 있어서 금방 적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도 전 세계의 사람들 중 많은 비율이 맨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인지가 생긴 후, 처음으로 맨발로 달려본 것 같다.

신발을 신고 뛰는 것과 맨발로 뛰는 것은 아주 달랐다. 처음에는 아주 낯설고 이상한 느낌이었는데 정말, 조금 지나자 몸이 아주 편해지면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오랜만에 느껴보는 쾌감이다. 1시간 30분 남짓 사람들과 함께 이리저리 자유롭게 뛰고 걸은 후 신발을 신자, 오히려 신발이 너무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의 느낌이 참 좋았어서,

그 후로 가끔

혼자 맨발 달리기를 해본다.


생각보다,

신발을 벗고 양말까지 벗기가 쉽지 않다.


그냥 벗으면 되는데 참 망설여진다.

별거 아닌 이 행동도 이럴진대,

오랫동안 길들여진 습관을 바꾸는 건 오죽할까.

오래 굳어진 마음을 바꾸는 건 또 어떤가.






오랜만에 맨발로 올림픽공원 나 홀로 나무 아래를 걸어본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풀잎들의 보드라운 감촉과 그 아래 흙의 다채로운 질감,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와 내 몸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코로 나가는 더운 숨의 차이를 느껴본다.


자연스레 억지로 더 많이 숨 쉬려 하지 않고 몸이 편안하게 느낄 정도로만 숨을 쉬며 살살 달린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머리, 상체에 집중해 쓰게 되는데 저~ 아래 발바닥의 감각이 깨어나니, 온몸 전체가 활성화되는 느낌과 함께 이 땅 위에 두 발을 디디고 살아있다는 사실이, 육체를 가지고 실존한다는 감각이, 큰 힘이 되어 내 안을 가득 채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가 아주 멀게 느껴지다가, 이내 하나가 된다.






가끔 입고 있는 옷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안의 열망 중,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만든 것이리라. 나의 말과 행동이 진심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닌 상황에 맞추어 꾸며낸 것이라는 걸 느낀 순간, 그 불편함을 모른척하지 못하는 마음들이 쌓이면 그러는 것 같다. 현실에 타협하고 싶지 않은 욕망과 그럼에도 현실을 살아야 하는 것의 선택에서 오는 것들이다.

삶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여러 시련 중 하나는,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순간이다.


이때, 내가 정말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선택한 삶의 가치와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그리고 그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작은 자유를 줄 수 있다면.


맨발로 걷고 뛰는 소소한 자유를 만끽하다,

모든 걸 받아주는 대지에 감사하며 숨을 흘려보낸다.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