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된 순간, 바로 여기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어요. 아주 본능적인 무언가가.
-캐롤 구지, 퓰리처 상 수상자
찰칵!
군침 도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 앞에서, 결혼식이나 돌잔치 같은 경사스러운 자리에서,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 만났을 때,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꼭 기억해 두고 싶은 글귀를 발견했을 때, 연인과 함께하는 순간을 남기고자 할 때... 우리가 이 때 하는 공통적인 행위는 무엇인가? 언뜻 보면 공통점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이 자극들에 대해 인간이 하는 것은 사진을 찍는 것이다(그림 1). 찰칵이는 소리와 함께!(미주 1)
그림 1. 최근 들어 급속히 성장한 즉석 사진방. '네 컷에 담은 특별한 하루' 를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있다.
현대 사회의 우리는 수많은 영상과 사진과 함께 살아간다. 앞서 말한 일상의 기록뿐 아니라, 사진과 영상은 인간의 주요한 문화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작동하기도 하며, 저널리스트들에게는 폭로와 전달의 수단으로 이용되어 사회를 바꾸는 놀라운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커버 사진).
인간의 데이터스피어
최근, 놀라운 디지털 매체의 보급과 고해상도 카메라가 달린 휴대폰 덕분에, 우리의 영상 생산량은 폭등했다. 우리는 '매일' 2.5 엑사바이트의 정보를 생산해내고 있는데(미주 2), 대부분은 영상과 사진을 통해 만들어지는 데이터들이다. 40만 권의 장서를 가져 전 세계의 지식이 망라되었다고 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정보가 고작 12기가바이트였으며, 인간이 파피루스와 점토 판에 무언가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 종이와 인쇄술, 타자기와 전신, 아날로그 컴퓨터와 투박한 플로피 디스크와 같은 정보 매체로 진보하며 수천 년간, 2000년대까지 쌓아 온 정보의 양이20엑사바이트라고 혹자는 추정하고 있는데, 우리는 육천 년간 인간이 만들어 온 모든 정보의 양을 일주일만에 쏟아내고 있는 셈이다(그림 2). 가히 빅 데이터의 시대, 정보의 홍수에 잠겨 사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무려, 2023년에는 대략 1아보가드로 수 만큼의 비트가 축적될 예정이다(이 아보가드로 수, 대략 6.02*10^23 인 이 수가 얼마나 큰 수이냐 하면, 야구공을 1 아보가드로수만큼 모으면 지구 정도 크기가 된다).
그림 2. 기원전 모든 인간 지식의 집합체였던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 이곳의 장서는 엄청난 크기이지만, 현대 우리는 영화 두어 편으로 비슷한 양의 바이트를 쓰고 있다.
사진의 역사, 그리고 예술
각설하고, 우리에게 이렇게나 친숙한 사진은 고대 그림으로부터 내려왔을 것이다. 르네상스 이래 화가들은 세상에 대한 정교한 복제의 도구로써 미술을 이용해 왔고, 복잡한 원근법과 명암법, 유화와 같은 기법의 개선과 개발을 통해 현실을 극사실적 화풍으로 캔버스 위에 재현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다. 이전의 글에서도 다루었듯, 이 시대의 권력자는 사진을 찍듯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역사에 그 모습을 남기곤 했었다.
그림 3. '현대 미술의 계보'. 이러한 변혁의 촉발은 사진의 도입과, 전쟁과 같은 사회적 변화였다.
이러한 추세가 급격히 뒤바뀐 것은 1800년대 들어 카메라라고 하는 물건이 등장하면서였다. 1800년대 중후반 카메라가 등장하고 개선됨에 따라 현실에 대한 충실한 재현만으로는 화가들이 사진을 따라갈 수 없게 되었고, 이에 따라 '예술의 본질' 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사진에 담을 수 없는 미적인 요소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이루어지며 인상주의, 야수주의, 표현주의, 큐비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으로 이어지는 소위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린 셈이다(그림 3). 그러나, 바로 1800년대로 넘어가기 이전 우리는 역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리스 시대로. 곧 다시 이 시대로 돌아올 것이니까, 잘 기억해 두고 가자.
카메라의 전신, '카메라 옵스큐라'
그리스 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주 자그마한 구멍을 지나간 빛이, 그 뒤에 선명한 상을 맺는 것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때 배우는 바늘구멍 사진기의 원리를 관찰했던 것이다. 이것은 간단한 광학 원리 때문인데, 한 점에서 나온 빛이 다른 점에서 모이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관찰 가능한 상을 형성하게 되기 때문이다(그림 4). 즉, 외부 풍경을 마치 픽셀처럼 정확히 나누고, 그 각 픽셀에서 출발한 광선이 아주 자그마한 구멍을 통과하면 180도 뒤집어진 곳에 정확히 다시 정렬하게 되므로 상을 맺게 되는 것이다(구멍이 커지게 되면, 여러 곳에서 들어온 빛이 큰 구멍을 통과하여 한 군데에 모이므로 매우 흐릿한 상을 맺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눈을 찌푸리면 상이 약간이나마 선명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 년도 더 지난 후, 화가들은 이 원리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위시한 학자들이 이러한 빛의 성질을 이해하고, 이해를 통해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카메라 옵스큐라'다.
그림 4. 바늘구멍 사진기의 원리. 오른쪽의 '어두운 방' 을 충분히 크게 만든다면 그게 바로 카메라 옵스큐라가 된다.
카메라 옵스큐라(라틴어로, '어두운 방'. 카메라는 방이라는 뜻이다! 도대체 카메라가 무슨 뜻일까? 라는 궁금증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카메라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늘 말하듯이, 단어는 역사를 내포한다)는 어두운 방 안에 화가가 들어가고, 아주 좁은 구멍을 뚫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구멍을 통해 피사체를 겨냥하면, 바늘구멍 사진기의 원리에 따라 화가 앞에 위치한 캔버스에 외부의 풍경이 그대로 비친다. 마치 현대에 사용하는 기름종이를 쓰는 트레이싱 기법과도 비슷하다. 종이 대신 캔버스가, 밑에 받치는 그림 대신 바늘 구멍을 통과한 빛의 상이 맺힌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그림 5).
그림 5. 카메라 옵스큐라가 이용되는 방식. 화가가 들어가야 했던 거대한 '방' 에서 간략하게 개량되었다.
이러한 기계는 조금 더 개선되어 점점 작아지고, 사용하기 편리하게 개량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의 작가 요하네스 베르메르 또한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을 보면, 반짝이는 금속성 표면에 카메라 옵스큐라의 모습이 흐릿하게 나타나 있다-마치 카메라로 거울을 찍은 것처럼(그림 6)! 그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구도나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할 때 나타나는 왜곡적 특징을 통해 그가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잘 알려졌다(http://www.essentialvermeer.com/camera_obscura/co_two.html 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자세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은 참고하라).
그림 6.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물주전자를 든 여인>. 반짝이는 물주전자 표면에 카메라 옵스큐라의 형상이 비친다.
이제 우리는 카메라를 만들기 위한 구성요소 한 가지를 맞이했다. 다음 글에서는, 다시 1800년대로 돌아가 남은 하나의 요소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그 두 가지가 어떻게 합쳐져 현대의 카메라를 만들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미주 Endnote
1. 이 찰칵거리는 소리는 본디 빛 노출량을 조절하기 위한 기계적 셔터의 작동음이지만, 핸드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에서는 그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녹음되어 재생되는 소리일 뿐이다. 우리가 한때 저장을 의미하기 위한 아이콘으로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했지만 신세대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먼 훗날에는 찰칵이는 소리도 잊혀진 과거의 유산이 될 지 모른다.
2. 우리에게 이제 기가바이트를 넘은 테라바이트까지는 익숙할 텐데, 1000테라바이트가 모이면 1페타바이트가 되며, 1000페타바이트가 모이면 1엑사바이트가 된다. 즉 1엑사바이트는 1,000,000,000 기가바이트다. 이렇게 모든 데이터를 모은 것을 글로벌 데이터스피어global datasphere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지수적 성장을 보이고 있다. 2025년에는 인류가 모은 정보 총량이 175 제타바이트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보이는데, 1제타바이트는 1000엑사바이트로 175뒤에 0이 21개 붙은 만큼의 바이트를 의미한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류가 정보를 기록한 이래 2022년까지 생산한 정보의 양만큼이 2023년부터 2025년 사이에 만들어질 예정이다. 이미 데이터 보관과 전송은 산업에 너무나 중요한 일환이 되어, 인류 총 에너지의 1% 이상이 정보의 보관에 들어가고 있다. 막대한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