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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Oct 29. 2023

(57) 식물과 동물의 동행

은행나무와 고추에 담긴 공진화의 역사

삶에는 장엄함이 있다. (…) 중력의 법칙을 따라 지구가 도는 동안, 생명체는 아주 간단한 시작으로부터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경이로운 무한한 꼴들로 진화했고 진화하고 있다.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중


* 커버 사진: 성균관대학교 명륜당 앞의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긴 수명을 가져 많은 역사 깊은 장소들에서 찾어볼 수 있다. 이 은행나무도 500년이 넘은, 조선 시대부터 살아 온 나무다. 출처 이미디어.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에게 유독 (코에) 와 닿는 신호 중 하나는 은행이다. 가끔 걷거나 운동하는 집 근처 산책로에 은행이 떨어지고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가을이 왔음을 문득 깨닫곤 하는 것이다. 워낙 흔한 식물이라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겠지만, 도대체 은행은 왜 향긋한 다른 식물의 열매와는 다르게 이런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것일까? 별 큰 관심 없이 인상을 찌푸리며 지나갔을 지 모르지만(미주 1), 여기엔 아주 긴 진화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은행나무로 알아보는 열매와 동물 이야기


은행나무(영어로는 ginkgo, 징코 또는 깅코라고 읽는다; 외국 학자가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일본어로 적힌 은행銀杏 을 그대로 잘못 읽어 붙여진 이름이며, 은행은 은빛을 띠는銀 살구杏 라는 뜻이다. 은행의 겉 ‘과육’ 을 벗겨내고 속을 보면 흰빛을 띠는데, 이것이 마치 살구 씨앗과도 같이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는 우리 주변에서 매우 흔히 보이지만, 사실은 멸종 위기 종 중 하나로 국가 자연 보전 연맹(IUCN) 기준 절멸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된 위기 단계의 식물이다. 이렇게 많이, 그리고 흔히 보임에도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자연적으로 자생하는 은행나무 종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중국의 저장이라는 지역에서만 자연적 군락이 유일하게 확인되었다). 즉,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은행나무는 인간이 돌보아 주지 못하면 자연적으로 번식하고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그림 1).


그림 1. 창경궁 앞의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면 그제서야 가을임이 느껴진다.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듯, 은행나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딱 한 종, 징코 빌로바(Ginkgo biloba; Gingko 속의 biloba 종으로, biloba 는 두 개의bi 엽을 가진loba 종이라는 뜻이다) 뿐이며 그 연관종은 모조리 멸종해 생물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은행나무속ginkgo에 속하는 식물들은 약 2억 년 전 처음 화석 기록에서 등장하여 백악기에는 5-6 종까지 나타났지만(그림 2), 신생대의 시작인 팔레오세 무렵 우리가 아는 한 종만 남기고 사라졌으며 이후 근근이 살아남아 현재까지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은행나무문 안에 속하는 근연종들이 전부 사라져서, 지금은 하나의 문 안에 속하는 유일한 종으로 남아 있다(미주 2). 현재도 2억 년 전과 거의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실러캔스와 함께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종 중 하나기도 하다.


그림 2. 은행나무의 진화 과정의 간략한 도표. 미주 3과도 같이 보라. P는 페름기, T는 트라이아스기, J는 쥐라기, K는 백악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새롭게 생겨난 식물계의 패자인 속씨식물들이 번성함에 따라 생태적인 지위가 밀려나서일 수도 있으며(은행나무는 석송이나 소나무와 같이 겉씨식물에 속한다. 따라서 사실 은행나무의 ‘열매’ 는 열매가 아니라 부풀어 오른 솔방울(가종피) 다(그림 3). 우리가 잘 아는 다른 가종피는 주목이 만드는 빨간 열매가 있다(미주 3)), 다른 흔한 설명은 매개동물의 멸종이다. 식물들은 동물과는 다르게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운동성이 없기에, 자손을 퍼트릴 필요성이 있다(그렇지 않다면, 자손 나무는 엄마 나무 바로 밑에 피어나 충분한 태양과 영양분을 얻을 수 없고 자손들끼리 경쟁하게 될 것이다).


그림 3. 주목의 빨간 "열매". 그러나 발달 과정을 잘 살펴보면 이 열매는 속씨식물에서 관찰되는 열매와는 다르다. 참고로 여기서 항암제인 탁솔을 얻어 낸다.


식물들은 따라서 자손을 멀리 보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는데, 가장 흔한 것은 자연에서 나타나는 운동성, 즉 물의 흐름이나 바람의 흐름을 이용하는 것이다(민들레를 생각해 보라). 이보다 조금 더 교묘한 녀석들은 다른 움직일 수 있는 생명체, 즉 동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갈고리와 같은 모양새를 이용해 동물의 털에 달라붙어 움직이는 식물들도 있지만(그림 4), 가장 흔한 방법은 자손을 동물에게 먹이는 것이다. 먹혀 내장 속에 들어간 씨앗은 동물이 이동하다 배설하면 그대로 풍부한 영양분과 함께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미주 4).


그림 4. 도둑놈의갈고리라고 하는 재밌는 이름의 풀인데, 열매가 익으면 갈고리처럼 생긴 구조가 지나가는 동물의 털에 엉겨붙어 같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예시가 바로 속씨식물의 과일이다. 우리가 이미 살펴 본 처럼 많은 속씨식물들은 곤충과의 협업을 통해 꽃가루를 암술에 전달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씨앗을 퍼트릴 때에도 다른 동물들의 도움을 받는다. 충분히 씨앗이 발달하여 이제 퍼질disperse 때가 되면, 씨앗을 담고 있는 열매는 당도가 높아지고, 색이 화려하게 변화하며 향긋한 향을 풍긴다(그림 5). 그러면 과일을 먹는 과식동물들은 열매를 섭취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씨앗은 동물의 내장으로 들어가 발아할 준비를 마친다(그래서 많은 씨앗은 동물의 소화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단단한 벽과 같은 방어장치를 갖추고 있으며, 심지어 동물의 위에 들어가서 위산에 노출되거나 조류의 모래주머니Gizzard 에서 기계적으로 뭉개져야지만 발아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이후에 멀리 이동한 동물이 씨앗을 배설하게 되면, 씨앗은 그제서야 싹을 틔워 어머니 나무에게서 멀리 떨어질 수 있게 된다. 또 한 번의 기막힌 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림 5. 빨갛게 익은 크랜베리 열매. 동물이 보기에는 잘 익은 열매이고, 식물의 입장에서는 번식할 준비가 끝난 것이다.


따라서, 은행나무가 멸종 위기 종이 된 이유 중 하나는, 본디 은행의 씨앗을 옮겨 주던 동물들이 쇠퇴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몇몇 학자들은 2억 년 전부터 존재해 온 은행은 공룡이나 다른 조류 등이 섭취하며 옮겨 주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 동물들의 소화계 구조를 지적하며 중생대-신생대에 살았던 설치류 비스무레한 원시 포유류인 다구치목(multituberculata)에 속한 동물들이 그러한 씨앗 옮김의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림 6; P. Tredici, 1989, Biosystems). 특히나 이 포유류들은 밤에 행동하는 야행성이었으며, 냄새에 많이 의존해 왔으므로 강렬한 냄새를 내는 은행나무의 냄새는 이 고대 포유류들을 끌어들이는 데 사용되던 냄새라는 주장이다(미주 5). 그러나 이런 다구치목의 동물은 신생대 초기에 쇠퇴와 멸종을 겪었으므로, 이에 따라 이 동물들이 번식에 도움을 주던 은행나무도 쇠퇴를 겪어 왔으리라는 주장이다.


그림 6. 다구치목 동물의 복원 상상도. 마치 우리가 잘 아는 시궁쥐처럼 생겼다. 이름은 이들의 이 구조를 따서 붙여졌다.


이와 같이 밝은 면도 있지만, 반대로 보면 식물들은 충분히 씨앗이 익기 전에는 동물들이 먹게 두어서는 안 될 테다(소중한 씨앗이 아직 발아한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단순한 동물의 한 끼 식사로 쓰여서는 안 될 일이다). 따라서, 식물들은 아직 익지 않은 과일은 굳이 맛있게 만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맛없게 만들어 먹을 유인을 없앤다(덜 익은 과일이 떫고, 쓰고, 시큼한 이유이다; 그러나 영악한 인간들은 식물의 호르몬 체계를 파악하여 인위적으로 식물 호르몬을 가해 과일의 성숙 과정을 촉발시키곤 한다(미주 6)). 이러한 보호 체계의 일부로, 식물들은 아직 덜 익은 과일에는 독성 물질을 축적시키거나 혹은 방어용 화학 물질을 채워 넣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추다(그림 7).


그림 7.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식재료인 고추.


고추의 열매에는 우리가 잘 아는 물질, 캡사이신이 들어 있다(그 농도는 차등적으로 분포하는데, 붉은 과육에는 거의 없고, 씨앗에는 더 많이 들어 있으며, 태좌라고 하는 씨앗이 붙은 흰색 스펀지와 같은 막에 가장 높은 농도가 분포한다; 분석 결과는 글 제일 하단을 참고하라). 이 물질은 이전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시피 TRPV1 이라는 뜨거움과 통증에 연관된 막 수용체를 활성화시키는데, 따라서 캡사이신이 우리의 피부에 닿게 되면 뜨겁게 불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이러한 통증은 동물들이 고추를 먹는 것을 단념하게 만듦으로써 종자를 지키게 해 준다(당연히도 쥐 같은 동물에게 고추를 주면 꺼린다!). 그렇다면 고추는 어떻게 자신의 씨앗을 퍼트리는가?


그림 8. 여러 동물들의 TRPV1 구조. S. He et al., 2022


재미있게도 조류를 통해서 그렇게 하는데, 조류의 TRPV1 은 그 구조가 미세하게 달라서(그림 8; 정확히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중 578번째에 있는 알라닌alanine 때문에; Y. Chu et al., 2020, Sci. rep) 캡사이신이 채널을 활성화시키지 못하게 된다. 즉, 새들은 고추의 매운맛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포유류는 매워서 먹지 못하는 고추를 새들은 아무 문제 없이 꿀떡 삼킬 수 있고, 고추는 새의 배설물을 통해 포유류를 통해서는 도달하지 못할 만큼 먼 곳까지 편안히 비행할 수 있게 된다(미주 7). 아마도 포유류는 단단한 어금니를 통해 씨앗을 분쇄해 버리겠지만 조류는 이가 없어 그저 꿀꺽 삼키고(대신 앞서 말한 근위를 이용하여 물리적으로 분쇄하기는 하지만, 치아만큼 강하진 않다) 말 뿐이기 때문에 연약한 씨앗을 더 멀리 옮기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그러나, 고추의 캡사이신은 원래는 동물 포식자보다는 미생물과 곰팡이를 저해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캡사이신 그 자체가 곰팡이와 균에 대한 저항 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며, 감염에 취약한 환경에서 키워진 고추는 더 많은 캡사이신을 만들어 낸다).




이와 같은 일상에서 쉽게 보이는 사례들은 복잡하게 얽힌 자연 생태계의 상호작용을 여실히 보여 준다. 우리 인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실은 너무 특출난 방식으로 예외여서), 자연에 엄청난 선택압을 가하고 있다. 인간이 선호한다는 이유만으로 멸종 위기종임에도 아주 편안히 살아가는 종이 있는 반면, 그 선호 때문에 남획당해 멸종한 종도 수없이 많다. 우리는 늘 생태계의 사슬을 잊지 말아야만 할 것이다.



미주 Endnote


미주 1. 우리는 역겨움을 느끼면 반사적으로 얼굴을 찌푸린다(역겨움의 표정 facial expression of disgust). 왜 그러한 것일까? 역겨움을 느끼게 하는 것들은 대개 몸 또는 건강에 해로운 것들이다(부패한 음식, 감염이나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분변이나 배설물 따위가 그렇다). 따라서 이러한 물질을 접하게 되면, 생명은 이런 유해한 물질에의 노출을 최소화시켜야 할 것이다. 역겨움의 얼굴 표정은 눈을 감게 만들고, 비강을 통한 외부 공기 흐름을 급격하게 줄임으로써 그러한 노출을 줄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공포의 표정은 그 반대다 (J. Susskind et al., 2008, Nature Neurosci).


미주 2. 문이라는 생물 구분 범주가 얼마나 큰 규모이냐면, 우리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는 진핵생물역-동물계-척삭동물문-포유강-영장목-사람과-사람속-사람족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우리가 포함되는 척삭동물문 안에는 활유어와 멍게부터 시작해 어류부터 모든 포유류가 포함되는 등 8만 여 종 이상이 속한다. 이 중 단 한 종만 남아 있다고 생각해 보면, 처참한 수준의 절멸을 거쳐온 것이다. 즉 우리 인간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지구상에 모든 어류와 파충류와 양서류와 조류와 인간을 제외한 모든 포유류 (그리고 조금 더) 가 사라진 셈이다.


미주 3. 은행나무는 이 비슷한 ‘열매’ 를 만든다는 특성 때문에 한때는 주목과 같이 분류되어 왔으나, 은행나무는 운동성이 있는 정자를 만든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과로 분류됐다. 정자를 만든다고? 그렇다. 유튜브 등에 ginkgo sperm 을 쳐 보면 꿈틀꿈툴 헤엄치는 은행나무의 정자를 볼 수 있다. 식물이 정자를 만든다는 것이 아주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식물의 초기 형태인 양치식물이나 이끼, 그리고 조류(algae)에서는 아주 흔한 것이다. 오히려 속씨식물이 운동성 없는 꽃가루pollen 을 만드는 것이 예외적이다.

여담: 은행나무는 대부분 침엽수가 속하는 겉씨식물에 속하는데도 넓은 활엽을 가진다. 어째서일까? 진화 과정에서 은행나무의 조상이었던 Trichopitys 종은 소나무와 더 비슷하게 얇은 침과 같은 잎이 모여 있는 형태였다. 그러나 점차 이 침엽들이 달라붙고 사이가 채워지면서 넓은 잎 모양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은행잎을 집어들어 보면, 마치 부채의 부채살처럼 얇은 띠가 펼쳐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 과정을 보여주는 흔적들이다.

여담의 여담: 왜 식물은 초기에는 침 모양의 얇은 잎을 가지다가 넓은 잎으로 변화했을까? 한 연구는 식물이 처음 진화한 데본기 기후에서는 넓은 잎은 지나치게 과다한 열을 발생시켜서 식물을 죽일 수 있어서 침 모양의 잎을 만들었다가,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가 감소하며 효율적인 광합성이 가능한 넓은 잎이 생겨났다는 주장을 펼친다(D. Beerling et al., 2001, Nature).


미주 4. 동물의 소화 과정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대변에는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 또는 소화 과정에서 생겨난 풍부한 영양분이 여전히 남아 있다(채소에 들어 있는 우리가 분해하지 못하는 식이섬유 따위들이 그러하며, 우리가 ‘공급한’ 영양분을 먹고 자란 박테리아들도 있다). 이것이 많은 농경 사회에서 삭힌 배설물이 비료로 사용된 이유이며 많은 동물들이 자신의 배설물을 다시 먹는 식분 행위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뿐 아니라 동물의 배설물은 연료가 되기도 하는데, 이집트에서는 소나 버펄로, 낙타 등의 배설물을 말린 ‘겔라’ 라는 것을 이용해 난방을 했다(1980년대 시골 지역에서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3/4를 충당했다고).


미주 5. 은행나무의 ‘열매’ 에서는 형용하기 힘든 묘한 악취가 나는데, 구토나 분변 냄새, 무언가 썩는 냄새로 설명되는 만큼 향기보다는 악취에 가깝다. 은행나무의 가종피가 떨어지고 이것이 분해되기 시작하면 여러 지방산들이 형성되는데, 카프로산(caproic acid) 와 뷰테르산(butyric acid) 등이 그것이다. 이 중 뷰테르산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버터에서 왔는데, 산패한 버터에서 처음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그 구조상 이 성분들은 기름과 같은 탄소사슬 구조가 산패할(상할) 때 생겨나는데, 대장에서 일어나는 발효나 우리의 위장에서 일어나는 과정들, 또는 피지가 분해되며 나는 체취 따위에 관여되어 있다. 따라서 이 요소들의 냄새가 분변, 구토물, 썩은내 따위와 연관되는 것은 쉽게 이해될 것이다 (실험 과정에서 순수한 뷰테르산 수용액의 냄새를 맡을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대충 우유를 먹고 구토하거나 설사한 갓난아이 냄새가 난다).


미주 6. 대표적인 것이 에틸렌 가스인데, 이것은 1901년 러시아의 식물학자 드미트리 넬류보프가 우연한 계기로 처음 발견했다. 당시 완두콩을 키우던 중, 가스등 근처의 완두가 희한하게 등 근처로 휘어져 자라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 가스등이 원료로 사용하던 석탄 가스에 들어 있는 에틸렌이 식물 성장과 성숙을 촉발시키는 원인 물질이었던 것이다.


미주 7. 이러한 ‘맛’의 차이(당연히, 매운맛은 맛이 아니지만 같은 맥락에서) 는 여러 동물군에서 보인다. 대표적인 예시들로, 고양이는 단맛을 느끼는 수용체에 결핍이 있어서 단맛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X Li et al., 2005, Plos genetics). 당연히 당분이나 녹말 따위에 이끌리지도 않는데, 이들은 육식 동물이기 때문에 단맛을 찾을 유인이 없기에 그렇다(대신 고기에 든 아미노산과 같은 감칠맛에 적극적으로 이끌린다). 또한 육식 동물들은 대개 초식/잡식 동물들보다 쓴맛 수용체가 적어 쓴맛에 덜 민감한데, 방어용 독성 물질을 잔뜩 만드는 식물과는 달리 고기에는 독소가 있는 일이 적기 때문이다. 반면, 풀만 먹는 판다는 감칠맛을 느끼는 수용체가 망가져서 고기에서 별 감흥을 받지 못한다(H. Zhao et al., 2010, Mol Biol Evol). 심지어 바다사자, 돌고래, 고래와 같은 수상 포유류들은 짠맛을 제외하고는 맛을 느끼지 못한다(P Feng et al., 2014, Genome biology and evolution). 어차피 음식을 씹지도 않고 꿀떡 넘기기 때문에 굳이 맛을 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놀랄 것도 없는 것이, 세상의 수많은 생명의 꼴들이 세상을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느낄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외선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 크로마토그래피를 이용한 캡사이신 함량 분석 실험은 여기서 볼 수 있다: https://www.jeolusa.com/RESOURCES/Analytical-Instruments/Documents-Downloads/distribution-of-capsaicin-in-chili-pep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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