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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이 May 13. 2023

[마음]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돼요?

삶의 나침반 설정하는 방법

심플하자


12월 한국에 들어온 이후 삶에 대한 나의 태도는 간단하다.
"심플하자."
복잡할 게 전혀 없다는 거다.
그게 다다.


복잡스럽게 너무 앞날을 걱정하지 말고,
복잡스럽게 남들이 하는 말을 다 수용하려 하지 말고, 또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에는
복잡스럽게 너무 고민하지도 말자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다음 세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지금 이 순간, 현재 내가 발 붙이고 있는 이 삶이 내 삶이다. 미래를 살지 말자.”
“내 궁극적인 목표와 핵심가치를 마음에 계속 품고 있자.”
“움직이기로 결정하는 기준은: 1번, 내 궁극적인 목표에 가까워지기 위한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며, 2번, 관심이 가는 것. 이 두 가지로 하자.”



"내 궁극적인 목표와 핵심가치를 마음에 계속 품고 있자."


지난 글에서는 미래가 아닌 현재를 온전히 살아내는 삶의 태도에 대해 다뤘다.
이번 글은 삶의 나침반에 대한 이야기다.


삶에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돼요?"에 대해 대략적인 답변을 제시할 수 있는 나침반이 필요하다. 삶의 나침반이 실제 나침반과 다른 점은, 사람마다 가리키는 방향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어느것 하나 틀린 방향은 없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나침반의 방향은 나침반을 쥐고 있는 사람이 현재를 온전히 '나'로 살아냈을 때 또렷해진다. 나침반의 방향이 또렷한 사람들은 단단하다. 쉽게 사회적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남들과 비교해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내 나침반의 방향은 무엇을 기준 삼고 있는가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내가 원하는 삶'을 미래에 귀속시키고 현재를 방치하는 경우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절대 가까워지지 않는다. 현재를 방치하면 내 나침반이 엉뚱한 것들을 기준 삼게 되고, 결과적으로 가리켜야 할 방향을 잃어 우왕좌왕 흔들리기 때문이다.



현재 내 삶의 나침반이 무엇을 기준 삼아 작동하고 있는지 관찰해보자. 내 나침반은 꽤 오랫동안 '사회적 기준에서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 더 근본적으로는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절대지침으로 삼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곧잘 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부모님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제인지 확실치 않지만, 언젠가부터 가정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내가 '공부 잘하는 자랑스러운 딸'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무의식에 심어져 있었다. (누구도 나에게 '너가 좋은 성적을 받아 와야 우리 가정이 화목해.' 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좀 더 커서는 이 지침이 '사회적 기준에서 좋은 직업을 가진 자랑스러운 딸'로 조금 수정되었다. 이 지침은 나를 불행하게 했고, 나는 그걸 알고 있었지만, '미래에 언젠가는' 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현재의 나를 방치했었다. 나중에서야 현재의 순간 순간에 나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도대체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는 상태는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적 기준이 나침반을 지배할 때 일어나는 일


"어떻게 살아야 돼요?"를 스스로 정의내리지 않고 사회적 기준에 끌려다니는 삶은 행복해지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 글에서 설명한 바 있다.
https://brunch.co.kr/@hayun2e/23
오늘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회적 기준에서 자랑스러운 딸'이 삶의 지침이 되었을 때 내가 불행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나'가 지워져서,
둘째는 항상 불안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준이 삶의 절대 지침이 되면 정작 나의 만족감과 행복은 자꾸만 뒷전으로 미뤄진다.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은 종종 할머니께 나를 맡겼다고 한다. 보통의 아이들은 비교적 낯선 공간에 맡겨지면 그 자리를 떠나는 부모님을 보면서 울거나 떼쓰기 마련인데, 나는 어른들의 눈치를 보느라 "엄..." 까지만 말하고 말았다고 한다. 사회의 눈치를 보느라, 또는 사회적 기준에 맞추느라 자신의 필요나 욕구는 무시하는 우리들은 "엄..." 하던 나의 어린시절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


사회적 기준이 삶의 제1의 지침이 되면 늘 불안하다. 내 가치가 사회적 기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성적, 돈, 권력, 직급에서 밀려나면 나의 가치가 퇴색되는 것 같아 큰 좌절감을 느낀다. 언제 누구에게 내 위치를 뺏길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나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마음이 참을 수 없이 불안해진다. 나 또한 내 나침반의 방향이 또렷해지기 전에는 누군가가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어 큰 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래서 그 사람 나이가 몇 살인데?"부터 물어봤었다. 나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나이일 경우에는 마음이 조급해져 나의 현재를 모두 의심하게 되었었다.


나만의 나침반을 가진 사람들


"너 진짜 단단해 보여."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 자아가 단단해서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선망해 왔기 때문이다.



2023년 현재 내 나침반의 방향은 꽤나 또렷해졌다. 또렷한 지침을 가지고 삶의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니 스스로의 결정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원래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자신이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는 알겠다. 또 나는 내 나침반, 이를 기반으로 내가 걸어가는 길, 그리고 '나' 모두 unique(유일무이)하다는 것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타인에 의해 잘 흔들리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며 조급해지지도 않는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유니크한 나침반을 들고 뚜벅뚜벅(때로는 느릿느릿) 걸어나가기 때문에 모든 삶이 예쁘고 빛이 난다. 아직 본인 나침반의 방향이 감도 안 잡힌다고 해도 괜찮다. 나침반의 방향을 찾아나가기 위해 애쓰는 우리의 모습도 너무나도 예쁘고 찬란하니까.


또 같은 얘기 반복인데, 나침반의 방향을 또렷이 하기 위해서 왕도는 없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면, 지금 당장부터, 아주 작은 결정에서부터 '나 들여다보기'를 연습해 보자. 그러다 보면 이리저리 흔들리던 나침반 바늘이 거짓말처럼 고요해질 것이다.


저자의 나침반


혹시라도 저자의 나침반 예시가 도움이 될까 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남겨보겠다.
저자의 궁극적인 목표: 사람들이 마음 편해졌으면 좋겠다
저자의 핵심 가치: 진실성 (본질에 가까이 있는 것), 자유와 존중 (다양성을 귀하게 여기며 겸손한 태도 유지)
이렇게 정리해본 적이 처음인데, 나침반의 방향도 삶의 단계에 따라 계속 바뀔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 글: https://brunch.co.kr/@hayun2e/24 마음 편해지는 삶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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