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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이 Sep 11. 2021

현대의학에 제대로 현타 온 의대생

소아과에서 일어난 이야기

< 첫 번째 의대생 이야기 >


나는 생명을 연장시키는 의사다. 

근데 생명을 연장시키는 거, 그게 뭐. 


학생실습을 하던 의대 본과 3학년의 이야기다. 

날이 점점 포근해져 봄이 왔다고 느낄 즈음 1달 가량 소아과에서 실습을 했다. 

하루는 소아 감염분과 교수님 회진을 따라나섰다. 

대개는 회진을 돌기 전에 먼저 레지던트들이 각자 맡은 환자들의 상태 변화나 중요한 검사 결과 등을 요약해서 교수님께 말해준다. 

교수님은 레지던트들의 말을 들으면서 각 환자에 대해 어떤 신체검진이나 문진이 필요할지를 미리 생각하고 환자들을 만나기 때문에 대부분 회진은 상당히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교수님마다 스타일이 다르긴 하다.)

환자들이 주로 보는 모습은 빠르게 병동을 훑는 교수님과 그런 교수님을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니며 교수님 말씀을 급하게 메모하는 레지던트들일 것이다. 



슬의생 회진 장면.


그날도 교수님은 환자들을 보고, 대화를 나누고, 거침없이 의사결정을 하며 바람처럼 회진을 돌았다. 

잠깐 방심하면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교수님과 레지던트들을 열심히 따라다니며 정신없이 최대한 많은 것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5살 승언(가명)이의 차례가 왔을 때, 교수님은 돌연 우뚝 멈춰버렸다. 걸음도, 말도, 행동도. 


승언이는 폐에 염증이 생긴 아이였다. 

원래는 까만색이어야 했던 폐 X-ray 사진이 처음에는 군데군데 하얗게 얼룩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무서운 속도로 폐 전체가 새하얀 색으로 덮여가고 있었다.

교수님은 가능한 모든 검사를 지시했다. 쓸 수 있는 약을 다 써봤다. 

결과는 모두 꽝이었다. 세균도, 바이러스도, 곰팡이도 모두. 

교수님이 막막해하니 의료진이 길을 잃었다. 


승언이는 작은 체구에 비해 너무 넓은 침대 한가운데에 앉아있었다. 

코에는 산소를 공급하는 콧줄을 끼고, 산소포화도(*2)와 심장 상태를 지속적으로 체크하기 위한 장치들을 몸에 단 채로. 

승언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승언이 부모님이 어떤 심정일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었는데, 

병실에 가서 본 승언이 어머니는 지쳐 있었다. 

"X-ray 좀 나아졌나요?" 

"... 아뇨, 왼쪽 폐는 그대로인데 오른쪽은 좀 나빠졌습니다."

"하.. 아직도 뭔지 모르는거죠?"

"...네.. 저희가 가능한 검사는 다 해봤는데.. 검사를 해서 안 나오는 걸 보면 감염은 아니고 다른 원인에 의한 염증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원인에서든 염증이 약을 써도 잘 안 나아집니다."

승언이 어머니는 매번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듣는 것이 진절머리난다는 듯 꾸역꾸역 목소리를 짜내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지금으로서는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을 더 쓰면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승언이가 칭얼대기 시작했다. 

"나 밑에 내려갈래요. 밑에. 밑에 갈래요. 나갈래요. 아 맞다, 나 뭐 사러 가야돼요. 살 거 있어요."

"승언아, 선생님이 사다줄게. 뭐 사올까? 과자 사올까? 승언이 사고 싶은거 다 말해." 

"몰라요. 내가 가야돼요. 갈래요. 내려갈래요." 승언이는 울고 있었다. 

"승언아 뭐 사다줄까?"

"몰라요. 나갈래요. 제발요."

이미 대답을 알면서도 승언이 어머니가 애 좀 나갔다 오면 안되겠냐고 물었고, 레지던트는 병실을 나가는 것은 위험해서 안된다고 답했다. 


병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파랗고 따뜻해서.

어느날 갑자기 그 작은 병실이 세상의 전부가 된 승언이도 아팠고, 

수없이 뭉게지고 짓밟힌 희망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승언이 부모님도 아팠고, 

푹 젖은 겉옷을 입고 있는 것 마냥 무거운 무력감에 승언이에게 과자라도 사다주고 싶은 교수님도 아팠다. 



한 병원의 어린이병원 건물.


몇일 후 승언이가 ECMO(*3)를 달고 소아중환자실에 입실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소아중환자실은 학생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동안 승언이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드디어 소아중환자실 견학이 있던 날 승언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꽤나 신이 났다.

소아중환자실 문 밖에는 중환자실 안의 침대 배치도가 그려져 있었고, 각 침대에는 배정되어 있는 환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배치도에 따르면, 중환자실 문이 열리자마자 바로 보이는 침대에 승언이가 있었다. 


문이 열리고 바로 맞은편에 보이는 침대에서 승언이를 찾았다. 

어라, 승언이가 아니다. 

아이고 딱해라, 작은 아이가 온 몸 여기저기에 붉고 퍼런 멍이 든 채로 죽은듯 잠들어 있다.

혹시 교통사고가 난 아이일까?  

아이고, 애가 거의 산송장이네. 

많이 힘드니까 약을 써서 재워뒀나보다. 

승언이는 어디있지?

고개를 들어 주변 다른 침대들을 둘러보았다. 

승언이가 없다. 

설마. 

절박하게 눈앞에 있는 아이의 이름표를 찾아 읽었다. 

'차승언 남/5세'


승언이는 겨우 살아있었다. 

살아만 있었다. 

병원은 승언이를 살려만 놨다. 


승언이의 몸이 조절능력을 잃어 여기저기 멍이 들었던 것이다.

"소아 중환자실은 .....한 환자들이 오는 곳이에요. 주로 ...한 처치들을 하고 ... "

선생님이 견학 중인 학생들에게 소아 중환자실에 대한 설명을 꽤 오랫동안 했던 것 같다.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만 기억난다. 


결국 승언이는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다. 

의무기록에 승언이 부모님이 연명의료 중단에 동의했다는 기록이 남겨 있었다. 

승언이가 더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승언이를 보내주기로 결정하기까지 부모님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을까. 


작은 승언이가 따뜻한 봄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풀밭을 뛰어 노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고 또 그렸다. 

상상 속의 승언이와 승언이 부모님은 내가 한 번도 못 본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현대의학만 아니었다면, 병원만 안 왔더라면,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수명은 단축되었을지언정 마지막 순간 행복했을 수도 있었는데. 


나는 생명을 연장시키는 의사다. 

근데 생명을 연장시키는 거, 그게 뭐. 


본교 교육과정에는 '인간, 사회, 의료'라는 과목이 매 학기마다 있다. 

의료인으로서 어떻게 사회나 사람들과 관계맺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과목이 다루는 분야가 워낙 광범위하고 매번 주제가 달라지긴 하지만 "Cure보다는 Care"라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것 같다. 

현대의학이 cure(치료)에 너무 집중되어 있어 care(돌봄)에 소홀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care(돌봄)에 더 힘을 쏟자 라는 것. 

Care할 수 있는 환경, care을 부추기는 제도, care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많은 것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그저 생을 연장시키는 의사는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작은 시작이 되기를. 





(*1) 스테이션: 보통 병동 가운데에 있다. 의료진들이 업무를 보는 공간으로 의무기록을 열람하기 위한 컴퓨터들과 술기를 위한 여러 재료들이 있다. 

(*2) 산소포화도: 피 안에 산소가 얼마나 있는지 알려주는 지표 

(*3) ECMO: 심장이나 폐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기계로 피를 뽑아서 산소를 공급한 후 다시 몸 속으로 펌핑하여 피를 순환시켜준다. 



제 글을 좀 더 가볍게 웹툰처럼 읽고 싶으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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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는 baby_doctor_ha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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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제 글을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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