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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이 Sep 14. 2021

생과 사의 경계에 선 대학병원 응급실 인턴 이야기.

생과 사의 경계에서.

< 세 번째 대학병원 인턴 이야기 >


응급의학과에서 인턴을 했을 때의 일이다.

응급실에 오는 환자는 워낙 다양하다.

매일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 슬프다가, 웃기다가, 화가 났다가, 뭉클해진다.


응급실의 여러 파트 중 외상구역에 배정되었는데 돌이켜 보면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다.

내 역할은 환자가 들어오면 빠르게 초진(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 처음 문진, 신체검진 하는  것)을 봐서 환자를 파악하고 초기 오더(약, 처치, 검사 등을 지시하는 것)를 낸 후 필요한 술기를 하는 것이었다.

외상구역을 담당하던 레지던트 선생님과 친분이 쌓인 후에는 선생님을 졸라서 종종 봉합도 직접 했다.



피부 모형에 상처 봉합을 연습하는 모습.


응급실 인턴의 역할 중에는 사망한 환자에 대한 사후처리도 있다.

환자에게 꽂혀 있던 여러 종류의 관을 빼고 열려 있는 상처들을 봉합하는 것이 주된 사후처리 업무다.  

생전 오래 질병을 앓았던 경우 신장, 담낭, 흉곽 등 몸의 여러 장기에 관들이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여 이 관들을 빼고 구멍을 잘 봉합해 줘야 한다.

교통사고나 추락 등 외상으로 인해 환자가 사망하면 몸 여기저기에 생긴 벌어진 상처들을 봉합해 줘야 한다.

당시 같이 응급의학과에서 근무했던 4명의 인턴 중 봉합 경험이 있는 인턴은 내가 유일했다.

이에 다른 인턴들이 나에게 봉합을 부탁하면서 자연스럽게 환자 사후처리는 내가 맡게 되었다.


사망한 환자 침대 옆에 가까이 앉아서 열려 있는 상처들을 봉합하고 있노라면 환자의 생과 사를 끊임없이 곱씹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환자와 단둘이 조용한 방에 남겨지면 자꾸만 환자를 향해 혼잣말을 하게 된다.

에휴,

어쩌다 그랬대요.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이고,  

너무 마음 아프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최선을 다할게요.


스물셋 남자 환자가 교통사고로 실려온 날이었다.

환자를 실어 온 구급대원들이 병원에 미리 알려준 정보에 비추어 보았을 때 환자가 무사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응급실에 환자가 도착하였고 내부 장기의 손상을 가늠하기 위해 CT를 찍으러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CT를 찍던 중 환자의 맥박이 사라졌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CT실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방으로 환자가 재빠르게 옮겨졌다.

CT실에서 심폐소생실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외상구역을 통하는 것이다.

당시 나는 외상구역에서 다른 환자의 초진을 보던 중이었다.


환자가 있는 베드 하나에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베드를 따라가면서 온 몸의 무게를 손바닥에 실어 환자의 가슴을 주기적으로 압박하는 응급구조사가 절박해 보였다.  

급하고 단호한 목소리들과 환자의 상태를 알리는 날카로운 알림음들이 뒤섞여 주변의 다른 모든 소리들을 잡아먹었다.

슬쩍 보인 환자의 얼굴이 너무 앳되고 예뻐서 베드가 다 지나가고도 한동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후... 아.. 어, 어디까지 얘기했죠? 어떻게 다치셨다구요?"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심폐소생술이 지속되었다.

보통 심폐소생술을 시작하고 30분이 경과하면 환자가 살아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아직 보호자가 도착하지 않았다.

환자의 부모님은 강원도에서 내려오는 중이었다.


바쁘게 다른 환자들을 보다가 잠깐 여유가 생겨 다른 구역으로 물을 마시러 갔다.

가던 중 마주친 광경에 발걸음을 멈췄다.

응급실 복도에 막 도착한 교통사고 환자의 보호자가 있었다.  

환자의 어머니로 보였다.

아직 별다른 설명을 듣지는 못했지만 빨리 병원에 오라는 다급한 의료진의 음성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던 건지 두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레지던트가 환자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순간 도망갈까, 생각했다. 그 장면을 눈에 담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직면해야 할 상황일 수 있다는 생각에 금방 마음을 고쳐먹었다.

모든 장면을 똑바로 대면하기로 했다.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지금 심폐소생술 중인데, 너무 오래 지났습니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이제는 거의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만약 돌아온다고 해도 뇌에 상당한 손상이 있을 거라 아마 뇌사 상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레지던트가 현재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들을 찬찬히 읊었다.

"심폐소생술을 지속할지 중단할지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

어머니는 주저앉았다.

차가운 응급실 복도에 주저앉아서,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편하게 숨쉬지 못하고 아이고, 하면서 짧은 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들이마셨다가, 다시 아이고, 했다.  


보안요원이 어머니를 부축하여 휠체어에 앉혔다.

곧이어 아버지가 도착했다.

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망연자실한 아내를 다독였다.

애써 침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인지하는 하얀 벽에 빨갛고 노란 구역 표시가 되어 있는, 시끌시끌한 응급실을 환자의 아버지도 똑같이 인지하고 있었을까.

분명히 환자의 아버지는 응급실의 다른 모든 사람들과는 다른 공간에 있었다.

차갑고 깊고 어두운 어딘가에.  


한 병원의 복도.


보호자가 심폐소생술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보호자가 환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낸 후 심폐소생술을 중단하기로 했다.

보호자는 환자에게 부디 다음 생애에는 오래오래 행복하라는 마지막 인사를 건냈다.

마치 영화처럼, 마지막 인사 직후에 환자의 심장은 박동을 완전히 멈췄다.


인턴선생님, 사후처리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후우..

입술을 꽉 깨물고 들어갔지만 소용없었다.

너무 젊다.

너무 젊어.

몸에 난 상처들을 예쁘게 꼬매줘야 하는데 자꾸 시야가 흐려졌다.

'신'님, 거기 있다면 이 환자 좀 예뻐해주세요.

이 아이 부모님 좀 돌봐주세요.

제발요. 남은 사람들이 너무 힘들지 않게, 이 아이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한 땀 한 땀 상처를 봉합하면서 모든 장면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이상한 날이었다.

그날따라 자살 시도한 환자들이 많이 왔다.

죽고 싶은 사람은 살고, 살고 싶은 사람은 죽었다.


생과 사의 불협화음에 남은 근무시간 내내 마음이 어지러웠다.

생과 사의 불협화음 한가운데에 내 자리를, 내 역할을 잘 찾아나갈 수 있을까.  


제 글을 좀 더 가볍게 웹툰처럼 읽고 싶으신 분들!

인스타에도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이디는 baby_doctor_ha 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baby_doctor_ha/

많이 놀러오세요!

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제 글을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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