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이 May 25. 2023

[관계] 고마워할 줄 모르는 나

가스라이팅 화법 알아차리기

대화 예시

 

가스라이터: “아, 오늘 OO이 생일이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나: "... (눈치보다가 조심스러운 말투로) 솔직히 조금 서운해. 한 달 전부터 기대하라고 해서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잊고 있다가 이제서야 물어보는게.. ”
가스라이터: “(발끈하며) 
서운하다고? 내가 요즘 얼마나 바쁜데, 서운하다고? 너랑 시간 보낸다고 바빠서 뭘 못한 거잖아. 요즘 나는 너 때문에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너는 진짜 고마워할 줄 모른다. 나 뭐 한다고 이러고 있냐."
나: “(격양된 말투) 내가 항상 고맙다고 얘기하잖아! 그리고 내가 매번 집에서 쉬라고 하잖아. 제발 나랑 시간 보낸다고 무리하지 마."



누군가가 당신에게 충분히 고마워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한 경험이 있나요? 

갈등이 있을 때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했는데>를 무기 삼는 사람이 있는지, 

원하는 게 있을 때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를 들먹이는 사람이 있는지도 생각해 봅시다.  


물론 누군가에게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았을 때 그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또 반대로 도움이 되어 주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하지만 가스라이팅 상황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분명 상대방이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해준 것은 맞는데, 충분히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왜 이렇게 내키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상한 게 아닙니다. 

고마운 마음보다 찝찝하고 불쾌한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상대가 <부당한 채무감>을 강요하기 때문이에요. 

이번 글에서는 가스라이팅 화법 중 부당한 채무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글을 읽고 나면 건강한 채무감과 부당한 채무감을 구분할 수 있게 될거에요.


오늘도 힘내서 내언니 찾아와 주신 여러분들 감사해요. 저도 더 힘내볼게요.

대화 분석하기


가스라이터: “아, 오늘 OO이 생일이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나: "... (눈치보다가 조심스러운 말투로) 솔직히 조금 서운해. 한 달 전부터 기대하라고 해서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잊고 있다가 이제서야 물어보는게.. ”
가스라이터: “(발끈하며) 
서운하다고? 내가 요즘 얼마나 바쁜데, 서운하다고? 너랑 시간 보낸다고 바빠서 뭘 못한 거잖아. 요즘 나는 너 때문에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너는 진짜 고마워할 줄 모른다. 나 뭐 한다고 이러고 있냐."
나: “(격양된 말투) 내가 항상 고맙다고 얘기하잖아! 그리고 내가 매번 집에서 쉬라고 하잖아. 제발 나랑 시간 보낸다고 무리하지 마."



어떤 감정이 느껴지나요? 


대화의 패턴이나, 대화를 읽으며 느껴지는 감정이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면 이미 가스라이팅 화법에 휘둘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위의 예시 대화에는 <경시>, <부당한 채무감>, <죄책감 조장>, <습관적 거짓말>, <논점 흐리기>, <투사>, <단어에 가두기>, <벽 세우기>, <자기애적 격노>, <특권의식> , <그릇된 우월감>등 가스라이팅 화법과 가스라이터의 특징들이 많이 녹아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부당한 채무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부당한 채무감>

 

채무감이란 <상대에게 빚을 졌다는 느낌>입니다.

가스라이터는 상대가 채무감을 가지도록 유도합니다.

상대가 가스라이터에게 채무감을 가지면 상대에 대한 가스라이터의 통제력이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가스라이터가 집착하는 통제력이란 “나도 내 마음대로 할거고 너도 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어야해“라는 것입니다.


<채무감을 이용하여 상대를 통제>하는 것의 흔한 예시는 부모자식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 정도도 못해줘?" 

부모는 자식에게 양육을 위한 자신의 희생과 노력을 상기시킵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빚을 졌다는 느낌> 즉, 채무감 때문에 부모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조금 헷갈립니다.

누군가가 나한테 뭔가를 해줬을 때 내가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잘 해주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맞습니다. 채무감이 다 부당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스라이팅 상황에서의 채무감은 부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스라이팅에서의 채무감이 부당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 채무감의 원인이 되는 <가스라이터의 희생>이 사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스라이터 본인의 이득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채무감이 일방향으로 강요되기 때문입니다.


2번은 
가스라이터의 <특권의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상대에게 해주는 것은 커다랗게, 상대가 자신에게 해주는 것은 미미하게 인식합니다.

이 <특권의식>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유 1번에 대해 자세히 살펴봅시다.

가스라이터가 관계를 위해 희생해서 얻는 이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을 말하는 걸까요? 

많은 경우 가스라이터가 상대를 통제하는 데에 집착하는 이유는 쉽게 말해 마음이 건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가스라이터의 마음에는 미처 충족되지 못한 다양한 결핍이 있습니다.

이러한 결핍의 예시로는: 자아 존중의 결핍, 안전과 보호의 결핍, 사회적 수용의 결핍, 정서적인 결핍, 자기 효능감의 결핍, 자기 인식의 결핍 등이 있습니다.  

가스라이터는 자신의 내면에 결핍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결핍을 채우려고 하죠.

문제는 바로 이 때 발생합니다. 가스라이터가 내면의 결핍을 부정하면서도, 채우려 할 때. 


가스라이터는 상대를 통해 내면의 결핍을 채우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 노력이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노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을 <상대를 위한 희생>이라고 착각합니다.


예시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가스라이터: “너랑 시간 보낸다고 바빠서 뭘 못한 거잖아. 요즘 나는 너 때문에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너는 진짜 고마워할 줄 모른다."


가스라이터의 말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매번 집에서 쉬라고 하잖아. 제발 나랑 시간 보낸다고 무리하지 마.”

‘나’는 가스라이터가 삶의 다른 부분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과 시간을 보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실 가스라이터가 ‘나’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진짜 이유는:

가스라이터가 ‘나’와 함께 있으면 가스라이터의 결핍 중 ‘정서적인 결핍’이 해소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스스로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부정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노력을 상대를 위한 희생이라고 착각합니다.


이렇듯 <가스라이터의 희생>은 상대가 그것을 정말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가스라이터의 이득이 반영되어 있어요.

우리는 이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에 가스라이터가 요구하는 채무감이 억울하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당한 채무감을 어떻게 구분해낼 수 있을까요?

<부당한 채무감> 알아채기


상대가 평소에 <자신의 노력을 부각시키는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떠올려 봅시다.

"내가 너한테 이렇게나 잘해준다.", "나만한 연인이 없다.", "나한테 고맙지 않니?", “나 너한테 올인하잖아” 등 많은 형태로 표현될 수 있어요.


그럴 때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찬찬히 생각해 봅시다.

상대의 “희생”이 나의 어떤 필요를 충족시켜주고 있나요?

나아가 상대는 나의 필요를 잘 이해하고 있나요?

상대는 평소에 나의 필요를 궁금해하고 존중하나요?

상대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나요?

상대의 “희생”에는 <나의 필요 충족>과 <상대의 결핍 충족> 중 어떤 것이 더 많이 반영되어 있나요?

자, 이제 판단해봅시다. 내가 느끼고 있는 채무감은 합당한가요?


부당한 채무감을 알아채고 채무감에서 오는 죄책감을 덜어내면 나에 대한 가스라이터의 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내언니의 경험담

 

저 역시 <부당한 채무감>에 많이 휘둘렸습니다.

가스라이터는 자주 저에게 제가 본인의 인생을 망쳐버렸다고 얘기했습니다.

저에게 노력을 쏟느라 인간관계도, 일도, 건강도 망가졌다고요.

사실은 그 노력들이 저의 필요를 위한 노력이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스스로 해로운 존재가 된 것만 같은 느낌과 싸워야 했습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의 인생을 내가 망쳤구나.'

비합리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반복적으로 주입되니 어쩌면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럴리가요.

 
여러분은 누군가에게는 샘솟는 행복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꼭 기억하세요!

내언니와 함께


지독한 가스라이팅에도 불구하고 저(내언니)는 가스라이터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어요.
가스라이팅은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서서히 우리를 가스라이터에게 의존하게 만들어요.
때문에 가스라이터에게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생각만 해도 굉장히 두렵고 막막합니다.
저는 제 브런치 “너를 위한 언니” 와 저 “내언니”가 여러분들에게 가스라이터를 대체할 피난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언제든 찾아와 위로받을 수 있는 믿음직한 피난처가 되기 위해 저 내언니가 많이 노력할게요.

이어지는 글들에서는 <가스라이팅 화법> 중 <경시>, <특권 의>, <습관적 거짓말>, <단어에 가두기>, <논점 흐리기>, <책임 회피> 등에 대해 다뤄볼 거에요.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댓글 달아주세요:)


가스라이팅 화법 첫 번째: 

https://brunch.co.kr/@hayun2e/30

좀 더 제너럴한 독자들을 위한 글: 

https://brunch.co.kr/@hayun2e/21

https://brunch.co.kr/@hayun2e/26


작가의 이전글 [관계] 묘하게 기분 나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