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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이 May 24. 2023

[관계] 묘하게 기분 나쁠 때

가스라이팅 화법 알아차리기

가스라이터와의 대화  


(둘이 같이 차를 타고 출근하는 상황)

“오늘 집에 늦게 들어가.”
“그래? 어제는 오늘 일찍 퇴근할 수 있다고 했잖아. 같이 쉬기로 했는데, 일정이 바뀐 거야? (실망한 기색이나 중립적인 말투)”
“우리가 정확한 시간을 정한 것도 아니고, 언제 퇴근할지는 모르지. 직장생활 하는 것도 힘든데 너는 왜 이렇게 협조를 안해? (성가시다는 말투)”
“아니 나는 너가 어제 얘기한 거랑 다르게 늦는다고 하길래 일정이 바뀐 거냐고 물어본 건데, 왜 협조를 안 한다고 해? 화내는 말투로 말한 것도 아니잖아. 그냥 설명을 해주면 될텐데..”
“그렇게 말꼬리 하나하나 붙잡고 늘어지지 마. 진짜 유치하다. (경멸하는 표정)”
“유치하다고? .. (자신 없는 목소리)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생각해 보면 나는 이전 연애에서는 별로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은데.. ”
“나를 너의 전 연인들과 비교하는거야? 너 제정신이니? 차에서 내려. (강압적인 말투)“
“앗, 미안해. 너가 비교하는거 싫어하는데 내가 또 실수했네. 상처줘서 미안해. (애원하는 말투)조심할테니까 얘기 조금만 더 해보자.”


가스라이팅 화법은 불편합니다. 참 찝찝한데, 콕 집어서 뭐가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때문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가스라이팅 화법은 위험합니다.
그냥 놔두면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져 나중에는 상대를 옴짝달싹 못하게 집어삼킵니다.
뭐가 잘못됐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아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가스라이팅 화법을 정확하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이후에는 이런 화법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힘내서 내언니 찾아와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도 더 힘내 보겠습니다. 

대화 분석하기


(둘이 같이 차를 타고 출근하는 상황)

“오늘 집에 늦게 들어가.”
“그래? 어제는 오늘 일찍 퇴근할 수 있다고 했잖아. 같이 쉬기로 했는데, 일정이 바뀐 거야? (실망한 기색이나 중립적인 말투)”
“우리가 정확한 시간을 정한 것도 아니고, 언제 퇴근할지는 모르지. 직장생활 하는 것도 힘든데 너는 왜 이렇게 협조를 안해? (성가시다는 말투)”
“아니 나는 너가 어제 얘기한 거랑 다르게 늦는다고 하길래 일정이 바뀐 거냐고 물어본 건데, 왜 협조를 안 한다고 해? 화내는 말투로 말한 것도 아니잖아. 그냥 설명을 해주면 될텐데..”
“그렇게 말꼬리 하나하나 붙잡고 늘어지지 마. 진짜 유치하다. (경멸하는 표정)”
“유치하다고? .. (자신 없는 목소리)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생각해 보면 나는 이전 연애에서는 별로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은데.. ”
“나를 너의 전 연인들과 비교하는거야? 너 제정신이니? 차에서 내려. (강압적인 말투)“
“앗, 미안해. 너가 비교하는거 싫어하는데 내가 또 실수했네. 상처줘서 미안해. (애원하는 말투)조심할테니까 얘기 조금만 더 해보자.”


어떤 감정이 느껴지나요?


대화의 패턴이나, 대화를 읽으며 느껴지는 감정이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면 이미 가스라이팅 화법에 휘둘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스라이터와 대화를 하면 숨이 턱턱 막히고 억울한데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콕 집어내긴 어렵고 혼란스럽습니다.
가스라이터들은 바로 우리가 혼란스러워하는 이 틈을 노립니다.
선명한 사고를 하지 못하도록 논점을 흐리고 우리의 감정을 뒤흔듭니다.
결국 우리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끝내 알 수 없게 됩니다.

다만 대화의 영향력은 고스란히 남아 우리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그 결과 가스라이터에게 더더욱 의존하게 됩니다.
의존성이 높아지면 더 자주, 더 깊게 혼란에 빠져 스스로에 대해서는 무엇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일단은 잘 알아야 합니다.


<가스라이팅 화법>을 잘 알기 위해, 대화를 하나 하나 분석해 봅시다.
첫 번째는 <의무 회피> 입니다.

의무 회피


“그래? 어제는 오늘 일찍 퇴근할 수 있다고 했잖아. 같이 쉬기로 했는데, 일정이 바뀐 거야?”
“정확한 시간을 정한 것도 아니고, 언제 퇴근할지 모르지. 직장생활 하는 것도 힘든데 너는 왜 이렇게 협조를 안해?”


이 문장 하나에서도 이야기할 거리가 한가득이지만 차근차근 뜯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정확한 시간을 정한 것도 아니고, 언제 퇴근할지 모르지."라는 부분에 집중해 봅시다.


가스라이터들은 절대 의무를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의무를 지는 순간 통제력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의무를 지고, 그 의무를 수행하는 이유는 상대를 배려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기숙사에 같이 사는 사람들은 부엌을 쓰고 나면 깔끔하게 뒷정리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기숙사생들은 다른 기숙사생들을 배려하기 때문에 부엌 뒷정리를 할 의무를 지킵니다.
우리는 적절한 의무를 통해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관계를 지속, 발전시키기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가스라이터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스라이터들에게 상대를 배려해 의무를 지킨다는 것은 곧 상대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얘기해보겠습니다.

가스라이터는 기본적으로 상대를 통제하고 싶어합니다.  
이들은 상대에 대한 통제력을 잃으면 극도로 불안해집니다.


가스라이터가 죽어도 잃지 않으려 하는 이 '상대에 대한 통제력'이라는 건 뭘까요?
쉽게 말해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나도 내 마음대로 할 거고, 너도 내 맘대로 휘두를 수 있어야 내가 편안해."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의무' 생기면 어떻게 될까요?
가스라이터가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봅시다.



“그래? 어제는 오늘 일찍 퇴근할 수 있다고 했잖아. 같이 쉬기로 했는데, 일정이 바뀐 거야?”

“정확한 시간을 정한 것도 아니고, 언제 퇴근할지 모르지. 직장생활 하는 것도 힘든데 너는 왜 이렇게 협조를 안해?”


위 상황에서 가스라이터가 상대와 <저녁 때 같이 쉬기로 약속>을 하면 가스라이터에게는 <약속을 지킬 의무>가 생깁니다.
이 <약속을 지킬 의무> 때문에 가스라이터는 퇴근시간을 마음대로 늦출 수 없게 됩니다.
다시 말해, <저녁 약속을 지킬 의무>때문에 <퇴근시간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는 상황이 생기는 거죠.  

가스라이터는 통제력이 약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확실한 이득이 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의무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묘하게 의무를 회피하곤 합니다.
"같이 쉬기로 하긴 했지만, 정확한 시간을 정한 건 아니다." 라는 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되면 가스라이터는 저녁 약속의 의무에도 불구하고 퇴근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지킬 수 있습니다.
가스라이터가 언제 퇴근해도 상대는 할 말이 없게 됩니다.
결국 가스라이터는 시간을 본인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스라이터와의 약속을 위해 시간을 애써 비워 놓은 우리는 가스라이터의 시간 분배에 완전히 휘둘리게 됩니다.


그렇게 가스라이터는 의무를 회피해 자신이 쥐고 있는 통제력을 지켜냅니다.
자신의 시간과, 심지어는 상대의 시간마저도 통제합니다.

의무 회피 알아채기


의무 회피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일단 가스라이터의 자극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스라이터의 자극에 말려들면 평정심이 무너지고 사고회로가 꼬여 혼란에 빠집니다.
그러면 가스라이터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거머쥡니다.
다시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됩니다.


<가스라이터의 자극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저 역시 매번 속으로 평정심을 되뇌였지만 한 번 감정이 무너지고 생각이 엉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었죠.
가스라이터의 자극에 말려들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스라이터의 자극에도 어느 정도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면,
가스라이터와의 대화에서 한 발짝 떨어져 <대화에 대한 나의 느낌>을 관찰해 보세요.
가스라이터와의 대화가 주는 느낌들을 잘 관찰하다 보면,
<묘하게 배려 받지 못하는 느낌>이 감지될 때가 있을 거에요. 
바로 그 때 대화의 양상을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그가 교묘하게 어떤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왜냐구요?
앞서 사람들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기숙사생들이 서로를 배려해 부엌 뒷정리 의무를 지키는 것처럼 말이지요.
반대로 가스라이터가 의무를 회피할 때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가스라이터가 나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느낄 때,
그가 의무 회피 화법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내언니의 경험담


저 역시 상대의 <의무 회피 화법>에 많이 휘둘렸습니다.
시간 약속을 예시로 든 건 실제 저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대는 유독 저와의 약속에서 시간을 정확히 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매번 기다리는 것에 지쳐 만날 시간을 정확히 정하자고 제안했을 때에 돌아온 대답은 이랬습니다.
“내가 만약 너와 정확한 시간 약속을 잡는다면 나는 너와의 관계를 비즈니스 관계처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한테 그건 연인관계가 아니다. 너도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 않느냐. 나는 연인 외에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는 편이다.” 

내언니와 함께


지독한 가스라이팅에도 불구하고 저(내언니)는 가스라이터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가스라이팅은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서서히 우리를 가스라이터에게 의존하게 만듭니다.
때문에 가스라이터에게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생각만 해도 굉장히 두렵고 막막합니다.
브런치 “너를 위한 언니” 와 저 “내언니”가 여러분들에게 가스라이터를 대체할 피난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언제든 찾아와 위로받을 수 있는 믿음직한 피난처가 되기 위해 저 내언니가 많이 노력할게요.


이어지는 글들에서는 <가스라이팅 화법> 중 <죄책감 심기>, <습관적 거짓말>, <단어에 가두기>, <논점 흐리기>, <책임 회피> 등에 대해 다뤄볼 겁니다.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너무 많고 이 이야기들을 양질의 글에 담고 싶은 욕심도 산더미인데 몸은 한 개라 아쉬운 요즘입니다.


가스라이팅에 대한 다른 글: 

https://brunch.co.kr/@hayun2e/31

좀 더 제너럴한 독자들을 위한 글: 

https://brunch.co.kr/@hayun2e/21

https://brunch.co.kr/@hayun2e/26

저자는 어떤 사람인지: 

https://brunch.co.kr/@hayun2e/33

https://brunch.co.kr/@hayun2e/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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