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대형견 견주로 살아남기 - 03
개를 기르면서의 매일은 인간이 얼마나 문명화되었는지, 또 개라고 하는 야생을 인간과 함께할 수 있도록 얼마나 길들여야 했는지 느끼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집동물이라는 형태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을지언정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동물이라는 뜻이다.
현대 인간이 자랑하는 청결이 귀엽고 충성스러운 이 친구들의 발 아래 어찌나 덧없이 망가지는지. 침구와 옷가지는 빨아도 빨아도 털투성이에 모랫발에 짓밟히기 일쑤고, 물 한 번 드시고 나면 온 바닥은 침 섞인 물로 범벅이 되고, 쉬야는 아무리 잘 조준하더라도 사방에 파편을 남기고 만다.
어쩌면 내 강아지가 크기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지만, 아마 그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모든 강아지가 가지고 있는 이슈일 것이다. 왜 강아지는 더럽고, 또 깨끗하게 만들려는 인간의 노력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들은 더러운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럽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싶어도 그들은 깨끗하지 않다. 그들에게 왜 이런 더러운 것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강아지는 오히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을 것이다.
더럽다는 건 좋은 일인걸요?
인간이 불결한 것으로 간주하는 수많은 것들, 그러니까 배설물, 악취, 진흙, 버려진 음식물… 이런 것들은 강렬한 냄새를 품고 있다. 그리고 냄새란 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들은 냄새를 찾고, 냄새를 원하고, 냄새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만다. 때로는 코를 박아서, 때로는 몸에 묻혀서, 때로는 먹어치워서까지!
한숨을 충분히 내쉬고 집에 복귀했는가? 또다른 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더러운 것을 좋아할 뿐 아니라, 깨끗해지기를 거부한다. 산책을 다녀온 뒤 흙이 잔뜩 묻은 발, 먼지가 앉은 털, 무엇 하나 곱게 닦도록 내놓지 않는다. 그리고 당연히 개를 매일 씻길 수는 없으니 아무리 나름의 방법으로 광을 내어도 그들이 가진 더러움은 그들 속에 잔존한다.
결국 개를 집 안에 들인다는 것은 내 집을 야생에게 내어놓는다는 말과 같다. 나는 개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그들은 결국 사람의 사회적인 풍습을 이해할 수 없는 야생의 존재, 동물이다. 인간이 정의한 더러움이 싫다는 건 인간의 이야기지, 그들에게는 칭송과도 같다는 사실을 견주는 무력하게 깨달을 뿐이다.
가끔 우리 강아지의 촉촉이 젖은 코를 보며 이 작은 코가 세상에서 제일 더럽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만 강아지의 쉬야 자국을 닿다시피 (아마 개중 몇은 실제로 닿을 것이라는 끔찍한 사실을 외면하고 있지만) 킁킁대고, 들풀과 낙엽 사이를 뒤적이고, 남의 개 ○꼬에까지 들이민다. 그래놓고 행복한 표정으로 그 코를 나에게 콕 박을때면, 그저 눈을 꾹 감고 잠시 인간으로서 존엄성의 셔터를 내린다.
발은 또 어떤가? 수십 수백명의 신발 바닥이 밟고 지나간 곳을 맨발로 터벅터벅 밟고 다닌 녀석이 발을 닦기 싫다며 요리조리 몸을 피하고 난리를 피운다. 그 생떼에 물티슈로 겨우 발이나 닦으면 다행. 붙들고 비누로 빡빡 씻겨봤자 몇 시간 뒤면 산책을 나가서 또 더러워질 걸 생각하면 나는 깊은 고민 끝에 집안으로 걸어들어오는 아스팔트를 두 팔 벌려 맞이하고 만다.
인간이 이룩한 결벽과도 같은 청결 상태, 먼지 한 톨 없이 빛나는 집안과 잘 정비된 거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진 더러움들은 이 강아지라는 대자연 앞에서 처참하게 박살난다. 누구에게 개를 기르라 마라 해본 적 없지만, 깨끗함을 더없이 중시하는 지인이 이 때문에 강아지를 기르지 않을 것 같다고 했을 때 그렇다면 탁월한 선택이라고 맞장구 쳤다.
외국에서는 강아지를 발도 씻기지 않고 침대 위에 덥썩 덥썩 올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대단히 위생에 집착하는 편이 아니니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감당 가능할 거라고 자만했다. 일 년 하고도 반이 지난 지금, 인간인 나의 청결도 장벽은 하루하루 무너지고 있다. 더 남은 게 있을까 생각하면 또 무너지고, 정말 바닥이리라 생각했는데 또다시 스러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쓸고, 닦고, 털이 붙지 않는다는 알러지 프리 제품으로 방을 채우고, 초강력 돌돌이를 하루에 한 통 비우고, 그런 다음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선택인 강아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쏟아지는 장벽의 부스러기를 고스란히 맞으며, 제 쉬야 입자가 덕지덕지 묻어 있을 털짐승을 품에 껴안고 오늘도 외쳐본다. 귀여우니까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