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친.견.과의 우당탕탕 임보 시작!

스트릿 출신 보더콜리, 그 험난한 동거생활 - 03

by 하진

강아지야, 안 피곤하니?


도통 잠을 못 드는 하쿠 곁에서 밤을 지새운 나는 뻐근한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하쿠는 아침 일찍부터 어제 애완용품 매장에서의 전리품인 아보카도 봉제인형을 들고 설쳤다. 그대로 자리에 드러누워 버린 나 대신 동거인이 바통을 이어받아 하쿠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약간 얼빵한 표정으로 2일차 산책에 나선 하쿠


천변을 죽 따라 깎아지른 높이의 공원까지 하쿠는 지치지도 않고 올라갔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친 건 인간 뿐이었다. 공원에서 한참 공놀이를 한 뒤 하쿠는 행복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 날의 이슈는 다른 것이 아니라 사전에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었다는 점이다. 어제는 하쿠를 데리고올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 말하지 못했었는데 이제 보니 하쿠를 두고서 친구를 만나러 가기는 어려울 성싶었다.


나의 친구들은 어떤 아이들인가. 길거리에서도 산책하는 개를 보면 한참을 멈추어 서서 바라보고, 개를 만져볼 수 있다고 하면 영혼이라도 팔 기세다. 다행히도 강아지 찬스로 약속장소까지 바꾸어 때마침 오픈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근처 애견카페를 방문하기로 했다.


짜릿한 첫 애견카페의 기억


하쿠는 녹색 인조잔디가 깔린 애견카페에서 친구들과 정말 신나게 놀았다. 나는 전날의 피로와 낯선 동거견을 신경쓰느라 고조된 예민함 탓에 한쪽에 축 늘어져 하늘만 바라보았다. 다만 하쿠가 노는 걸 지켜보면서 확실히 느낀 점은 있었다.


저 녀석은 정말 공에 미친 자식이다. 하쿠를 처음 집에 들이고 어색함을 견디지 못해 임시보호 물품 박스에서 꺼내든 만득이 공에 하쿠는 말 그대로 눈이 뒤집혔었다. 던진 공을 미친 듯이 달려가서 물어오는 하쿠는 꼭 공을 처음 본 강아지 같았다.


던져도 던져도 공을 물어오는 광기의 하쿠


공을 본 적이 없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쿠는 공고상으로 2020년생, 당시 기준 4살이 넘은 성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를 처음 기르는 내가 보기에도 공을 향한 하쿠의 광기는 지나쳤다. 당시 나의 실책이라면 유기견 공고를 철석같이 믿었다는 점, 그리고 유전자에 새겨진 보더콜리의 본능을 간과했다는 것. 이는 훗날 적잖은 화근이 되었지만 그 때는 정말 몰랐었다.


아무튼 친구들은 최선을 다해 달리고 던져 하쿠의 공놀이 욕구를 풀어 주었고 돌아오는 길에는 애완용품 매장에서 하쿠를 위한 순무 인형과 원반까지 안겨 주었다. 하쿠는 혀를 땅에 닿을 듯이 길게 빼고 헉헉거리면서도 행복하게 웃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선물받은 순무 인형을 소중히 안고 있는 하쿠


헤어지기 전까지 진심으로


글을 쓰기 위해 하쿠의 예전 사진들을 돌아보면서 참 여기저기 쏘다녔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 우리는 두 달이라는 제한된 임보 기간 내에 하쿠와 최대한 알찬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해 있었고, 강아지는 기력이 넘치고 지치지 않았기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함께 동네를 걷고 뛰기 바빴다.


셋째 날에도 아침부터 근처 언덕을 올라 공원에서 공놀이를 했다가, 천변을 걸었다가, 어제의 애견카페를 다시 방문했다가, 근처 대학교 공터를 거닐다가 애완용품 매장에서 이갈이용 나무인 커피츄를 사들고 돌아왔다.


당시 반경 2km 내에 하쿠가 발을 디디지 않은 공간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생활을 며칠 이어나가자 하쿠는 드디어 잠들기 시작했다. 아마 그냥 집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서였을 테지만, 우리에게는 곤히 잠든 하쿠의 모습을 보는 것이 큰 기쁨이자 노력의 결과였다.


지쳐서 털썩 쓰러져 잠든 하쿠


오케이! 임보 강아지의 사회화는 나름대로 성공적인 첫 걸음을 디뎠고, 다음 과제는 이 찌든내 나는 털뭉치를 ‘강아지 꼴’ 갖추게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