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사람의 시간

너는 내가 더 좋은 주인이 되고 싶게 해 - 03

by 하진

말 안 통하는 우리 사이


생명은 유한하다. 우리의 삶에서 반려동물이 그토록 짧고도 짙은 족적을 남길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우리를 사랑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욕구하는 애정을 개들은 (비교적) 조건 없이 제공하고, 결핍된 관심을 (필요 이상으로) 채워준다.


나의 강아지 하쿠는 다른 개들에 비해서 주인 바라기가 아닌 편이다. 그럼에도 아침에 눈을 뜨면 반갑다며 주둥이를 연신 들이대고 어디 나가기라도 할라치면 자기를 잊고 가지 말라며 문간까지 뛰어나와 존재감을 어필한다.


외로운 가장이 자기를 반겨주는 강아지를 가족들보다도 애지중지하게 된다는 클리셰가 이런 것일까? 말도 통하지 않는 동물과의 분명한 교감은 때로는 연인과의 애정보다도, 혈연과의 유대보다도 진한 충족감을 준다.


KakaoTalk_20260324_152007110.jpg 내가 돌아오는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내민 하쿠


내가 없는 시간, 강아지는


강아지는 공동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날 때부터 커다란 귀를 쫑긋거리기 시작한다. 우리 층에서 엘리베이터 소리가 멈추면 벌떡 일어나 현관문 앞을 서성인다. 긴장과 기대에 가득찬 강아지 앞에 삐비빅 도어락이 열리고 사람이 나타난다.


그의 꼬리는, 단지 꼬리가 아니라 꼬리가 이어진 둔부 뼈 전체가 떨어질 듯 흔들리며 360도 회전한다. 얼른 사람을 원껏 반기고 싶어 안절부절 움직이는 다리는 바닥에 붙어있을 줄을 모른다. 귀는 기쁨에 젖어 잔뜩 뒤쪽으로 젖혀져 있다.


그리던 사람의 손길을 받은 뒤에는 안도감과 행복감에 여러 번 쭉쭉이를 한다. 50cm에 육박하는 긴 다리를 앞으로 주욱 뻗어 뒷다리를 늘렸다가 다시 무게중심을 바꾸어 앞다리만 바닥에 붙인 ‘플레이 바우’ 자세를 반복한다.


KakaoTalk_20260325_112406841.jpg 강아지 하쿠의 플레이 바우


그런 뒤에야 사람이 없는 동안 멈춰 있던 강아지의 시간이 흐른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을 마시고, 때로 화장실을 가고, 종내 사람을 찾아와 주위를 빙빙 맴돈다. 이쯤 되면 그의 뜻을 모를래야 모를 수 없다. 그래, 너는 네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쿠야, 오늘은 뭐 하고 싶어?


그러니까 개 같다, 라는 말은 개를 길러 본 사람에게는 딱히 모욕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온전히 호감을 표현할 줄 알고,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개의치 않고 사랑을 퍼부을 줄 알고, 오롯이 한 존재만을 향해 직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기에 사람에게 할 수 없는 일을 이종(異種)인 강아지는 해낸다. 그렇기에 나도 보답할 수밖에 없다. 밖에 나가기를 통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그가 좋아하는 산책을 꼬박꼬박 나가고, 손이 침으로 축축이 젖고 옷이 엉망이 되어도 그가 사랑하는 공놀이를 해준다.


받은 사랑에 주는 사랑으로 답한다. 그럼에도 그의 순수한 감정에는 한참 모자란 기분이다. 그가 세상에 머물다 가는 짧은 시간에 주고받는 애정을 차곡차곡 쌓아 최대한 행복으로 채워주고 싶다. 말없는 강아지에게 이런 나의 감정이 전해질 때까지.


KakaoTalk_20260325_112247992.jpg 놀이터에서 행복한 하쿠의 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