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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넛 Jun 19. 2024

100% 능력제 월급 받는 강사로 살아남기 (2)

단과 학원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다

오늘 할 이야기는 약간은 번외편 같은 느낌이다.

내가 현 근무 중인 학원에 지원한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었지만, 그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스쳐가듯 한 마디 한 것이 나에게 무척 큰 힘이 되었던 경험을 꺼내보려 한다.



강사로서의 내 현재 위치가 타 대강사분들께는 별 것도 아닌 것일 수 있지만, 사실 브랜드 단과 학원에 고등 강사로 입성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에게는 엄청난 도약이었다.

도전하는 것조차 망설여졌던, 도전하면서도 합격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그런 곳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런 마음으로도 이 학원에 도전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찮은 계기 때문이었다.


전에 일하던 학원에서 다양한 이유로 점차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강의 영상을 촬영해 준다는 업체를 발견했다.

그래, 제대로 만든 강의 영상 하나 있으면, 홍보에도 써먹고 언젠가 내 포트폴리오로도 활용할 수 있겠지.

그런 마음에 별생각 없이 영상 촬영 서비스를 신청했던 것 같다. 모 학원에 자동으로 지원된다는 내용도 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합격할 일은 없으니까.


이 서비스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으로도 미리 영상을 촬영해 첨부해야 했는데, 따로 시간을 내어 촬영한 것은 아니고 그냥 당시 일하던 학원에서의 수업을 한 시간 정도 녹화해 첨부했다.

자기소개서는 옛날 옛적에 써두었던 것을 약간씩만 손봐서 첨부했다.

서류에 아주 공을 들이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물론 이후에 ‘최종면접을 위해 본사로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사력을 다해 시범강의를 연습하고 면접을 준비했지만, 뭐… 그전까지는 아무런 기대도 없었으니까.



사실 당시 내가 일하던 곳은 수도권도 아닌 지방의 작고 작은 ’읍‘이었다.

따라서 영상 촬영 장소로 가기 위해서는 내 소중한 휴일에 읍 내의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탄 다음, 근처 광역시에 도착해 기차역으로 가서 다시 KTX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 시내버스를 두어 번 갈아타야만 했다.

멀고 험한 여정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는 그다음 날이 곧바로 근무일이었기 때문에 당일치기를 해야만 했는데, 읍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는 막차가 5시 40분이었다.

다시 말해서 꼭두새벽에 일어나 몇 시간을 이동한 다음 강의 영상만 찍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곧바로 다시 몇 시간 동안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는 이야기다.


지금 생각하면…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타 학원으로 이직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지 않았었는데 어떻게 그걸 해냈나 싶기도 하다.

’나는 언젠가 잘 될 것이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그 초석이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무의식에 깔려있었던 걸까.



그리하여 도착한 촬영장에는 직원 두 분과 촬영감독님, 그리고 내 앞 타임에 촬영하시는 다른 강사님이 계셨다.

아직 앞 타임이 끝나지 않았기에, 나는 직원 한 분과 함께 1층에 있는 카페에서 10분 정도를 때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직원분은 나에게 커피를 사주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셨다. 내 긴장과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려 하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조금은 풀이 죽어있었다. 내 앞타임 강사님의 수업을 언뜻 보았을 때, 자료며 강의며 모든 것이 너무나 준수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때, 그 직원분이 말씀하셨다.


서류에 첨부해 주신 강의 영상 봤는데, 되게 잘하세요. 긴장만 안 하시면 될 것 같아요.


뭐, 진심이었는지 그저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하신 말씀인지는 모른다. 정말 스쳐 지나가듯 한 마디 해주셨을 뿐이다.

하지만 그 말씀을 듣자 긴장이 풀리고 묘한 자신감이 내 안에서 보글보글 올라오는 것은 틀림없었다.

내 앞타임의 엄청나신 강사님을 보시고도 저런 말씀을 해 주시다니, 나 잘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슬그머니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직원분들이 촬영 리허설 중에도 이런저런 피드백을 많이 주신 덕에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퀄리티의 강의 영상이 나왔고, 이 영상으로 나는 모 학원 (현재 근무 중인 학원) 에 자동 지원하게 되었다.

물론, 영상이 나쁘지 않은 퀄리티라곤 해도 실제 최종 면접까지 가게 될 줄은 전혀 몰랐지만.



이것은 추후의 일이지만, 본사에서 직접 시범 강의를 하고 면접을 본 뒤 최종 합격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그 직원분은 축하 문자를 보내주셨다.


개인적으로 선생님께서 강의하시는 모습을 보며, 당연히 합격하실 줄은 알았습니다.


당연히 합격하실 줄 알았다…?

아… 이보다 힘이 되는 말이 있을까?

그 말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당연히 내가 합격할 줄을 아셨다니…


그 말씀들과 기억들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에 남아 문득문득 힘을 주고 있다.

단과에 처음 입성할 때는 진바닥에서 사정없이 굴러야 한다고 들었던,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 자신의 강사로서 자질에 대한 의구심과 걱정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가만히 다독여주었다.



그 직원분이 이 글을 읽게 되실 리는 없지만, 그리고 혹시라도 읽으신다면 나는 부끄러움에 전혀 모른 척을 하고 싶겠지만,

그럼에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기대 반 불안 반이었던 그 당시의 나에게 너무나 큰 힘이 되어주셨으니까.


그리고 나 또한 학생들에게, 그리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따뜻한 말을 건네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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