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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넛 May 29. 2024

100% 능력제 월급 받는 강사로 살아남기 (1)

내 상태는 비빔밥

최근의 내 상태는 비빔밥이었다. 이런 감정, 저런 감정 모두 뒤섞여, 내가 요즘 행복한지 불안한지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뜻.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2주에서 3주 정도가 흘렀고, 그간 나 요즘 참 행복하다, 싶다가도 불안감에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비율제(개인 매출에 비례하는 월급을 받는 제도)를 적용하는 단과학원의 경우, 처음 몇 달간은 학생 수가 적은 것이 당연하므로 초기 보장급여를 지급하기도 한다.

학생이 1명이든 10명이든 일정 금액 이상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앞으로의 두세 달은 수업을 늘리기보다 공부와 연구에 집중해도 마음이 편할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이다.

나는 현재 기껏해야 두어 명, 많아봤자 대여섯 명 정도 있는 반을 세 개 받아 시작했다.

내가 받는 보장 급여 금액을 따져보면, 월급 루팡이 따로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즈음 남는 것이 시간이다. 주 6일제라는 말에 겁먹었던 사실이 무색하게도, 수업 3일에 클리닉(보강) 1일로 주 4일만 근무하고 있다.

물론 수업 준비에 여념이 없다 보니 수업이 없는 날에 출근하기도 하지만, 그조차 자율이라… 근무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공짜 독서실에서 내 할 일 하는 느낌이다.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주린 배를 붙잡으며 6-7시간, 심지어는 9시간까지도 연강하던 작년에 비하면…,

그리고 나를 믿지 못해 하나부터 열까지 이래라저래라 하던 작년의 원장선생님을 떠올려보면… 행복이란 이런 거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불안도도 저 끝까지 치솟았다.

학원은 프리랜서 강사인 내 매출을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고, 나는 물론 학원의 도움을 받기도 하겠지만 거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알아서 해 나가야 한다.

강사로서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고, 수업이나 보강 시스템을 만들고, 자체 교재 제작은 물론, 내 시간과 돈을 써서 홍보도 직접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하루 20시간씩 주 7일 근무를 했다 하더라도, 홍보비로 백만 원을 썼더라도… 학생 수가 적으면 '두 자릿수' 월급을 받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보장 급여가 아니었다면, 이번 달도 정말 두 자릿수였겠지.)


게다가 퇴근을 해도 머릿속은 여전히 학원 생각만 가득하고, 그 좋아하던 유튜브를 봐도 온통 강사일과 홍보에 관한 영상만 틀어놓게 된다.

보통의 직장인들처럼, 퇴근한다고 해서 직장에 관한 생각을 리모컨으로 on, off 하듯이 분리해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집에서 쉬다가도 번뜩 일어나 수업 시스템에 대해 떠오른 생각을 메모하고, 자려고 누워도 온종일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런 내가 기특하고 뿌듯하지만, 정신적으로 쉬지 못하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굳이 따지자면 행복한 쪽이기는 한 것 같다.

혼자서 유명한 강사분들의 세미나를 찾아가고, 사설 인강을 들으며 수업을 연구하고, 직접 나 자신을 홍보하는 일도… 시간과 돈이 아깝지는 않다.

내 앞길이 창창하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일까?

왜인지 나는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학원에서 일타 강사를 하고, 전반 마감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


최근에 학원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본사 면접 이후로는 처음 온 연락이다.

현 학원에서 어떻게 하고 계시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잘 적응 중이며, 처음 받은 학생들 수가 좀 적어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대답했다.

친절하신 본사 직원분께서는 "선생님은 너무 잘하시는 분이라, 그건 정말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라고 내게 이야기해 주셨다.

이제 겨우 한 달도 안 되시지 않았냐, 학생 수는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이라며.

그 말씀이 참으로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앞으로도 두세 달에 한 번씩 연락을 드릴 테니, 요청사항이나 어려운 점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말씀하셨다.

원래 이렇게 모든 강사분께 연락을 드리냐고 여쭤보니 그렇다고 하셨다.

이 또한 내게는 힘이 되었다. 혹여나 그것이 단지 형식적인 연락일지라도, 꾸준히 강사 한 명 한 명의 고충을 들어주신다는 느낌이 늘어서.



나는, 경력이 부족한 새내기 강사에게 이렇게 좋은 기회를 준 현 회사에 감사하다.

갑자기 이렇게 말하면 가식적인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게 나의 진심이다.


나는 아직 어리고 길은 열려있다.

무얼 해도 지금보다 점점 좋아질 것이다.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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