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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신곡 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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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le Sep 05. 2024

04. 네가 내게 왔다…

(20)

“드디어 왔구나... 왔구나! 왔구나!! 왔어!!!! 

당장 내 앞으로 와 무릎을 꿇으렸다!! “


성숙과 양 보살이 계곡에 치성판을 차린 것이 약 20분 가량 흘렀을 때였다.  내림 굿을 받기 전에 잡신에게 시달린 적은 있지만 요 한 달간 양 보살은 서해바다에 익사한 산모령이 들러붙어 제대로 고생중이다. 원래는 아직 머리를 안 올린 성숙에게 들어야 하는 잡귀인데 모성애가 극으로 찬 산모령이라 그런지 엄마인 양보살에게 옮겨 붙었다.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은 답답해 가슴이 퍼렇게 멍들어 죽던 그 순간을 숙주에게 옮겨 놓아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을 못 쉬고 괴로와 하는 양보살을 보다 못 한 성숙이 서두른 것이었다.


산모령이 어째서 윤조에게 붙어 있는 한주를 찾아대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다. 무당은 전달하는 역할 밖에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을 중간쯤의 청산은 오히려 한겨울보다 더 시리게 스산하다. 계곡 근처에 쌀을 담아놓은 항아리를 놓고 초를 켠 뒤 모녀는 끝도 없는 주문을 외며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대체 저 시꺼먼 남자는 뭐래냐.”


드디어 나타난 한주와 주정뱅이 영을 발견한 양 보살이 나즈막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목소리는 천길만길 찢어진 고통스러운 그것으로 바뀌었다.


“음흐흐흐흐흐.... 내 새끼를 저 놈이 데리고 있을 줄 알았지. 이 놈아! 설마 나를 잊은 건 아니겠지!!”


말은 양 보살의 입을 빌어 하고 있었지만 성숙의 옆에 얼굴이 썩어 문드러진채 머리에 시꺼멓게 말라 비틀어진 해초더미 범벅을 한 산모 령이 섬뜩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물에 불어 문드러진 얼굴은 그녀가 웃자 더욱 일그러져 한주는 같은 귀신인데도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래 돈 몇 푼 벌려고 새끼를 방금 낳은 나를 그 컴컴한 밤바다 한복판에 밀어넣고 네 놈은 왜 구천을 떠돌고 있느냐!!! 왜 벌써 죽었냐 이 말이다!! 내가 네 놈을 두고 두고 괴롭혀주었어야 했거늘... 아이고... 아이고... 억울하고 분통하다. 아이고…”


양 보살은 차가운 돌 위에 털썩 주저 앉아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 이 산모령 때문에 우리 엄마가 죽게 생겼다구요! 

당장 그녀를 어디다 던졌는지 말해요. 얼른 고사를 지내주지 않으면 우리 엄마 몸을 다 망쳐놓을거에요. 엉엉”


성숙은 눈물이 범벅된 얼굴을 하고 주정뱅이 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아니지, 아니야!!! 아니라고!!!

그 전에 내 새끼를 훔쳐가고 나를 죽이고, 내 인생을 훔친 년한테 갚아줘야지!! “


쉰 목소리로 꺽꺽대며 울분을 터뜨리고 있던 양 보살이 시뻘겋게 핏발이 선 눈을 들며 독기를 뿜었다.


“지금 저 산모령 자식을 뺏고 죽게 만든게 아저씨란 얘기 맞죠? 우와... 진짜 저질 중에서도 상 저질이었네!! 어떻게 살인을…”


한주는 놀라서 주정뱅이 영을 쳐다보았다. 그 역시 충격을 받은 눈으로 한주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너...

너.... 

그랬군... 그래서 나와 엮였던 거였어... 나는 대체 자살령 따위가 나처럼 중업 령한테 왜 붙은건가 했네... 그런거였군.

정말 미안하게 되었군...

이것 참…”


주정뱅이 영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양 보살쪽으로 몸을 돌렸다.


“난 이미 죽었으니 어쩔 수가 없겠수다. 늦었지만 진심으로 미안하오. 그 때는 내가 미쳤지... 인생 허망할 줄 알았으면 내 감히 다른 인생을 앗을 생각조차 했겠나... 

그 때는 내 새끼 살릴라고...아니 금쪽같은 내 새끼가 백혈병이라 안 하요. 돈은 없고 당장 수술은 해야긋고... 압니다. 알아요. 무슨 변명이 통하겄소. 사람 목숨을 둘이나 앗아놓고...

으흑.... 

내 새끼 살릴라고 남의 새끼 망쳤구만. 연수씨 미안합니다. 아이고... 한주야...미안하다...

아이고... 이 죄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말만 하시오.

그 년을 죽여 달라하면 그리 할 것이고 미치게 해 달라 하면 아주 볼만하게 만들어 줄터이니... 나는 이미 이 어두운 곳에서 끝도 없이 썩어야 할테니까.. 으흑흑... 

아이고 민수야....

아부지는 영영 니는 다시 못 보겠다... “


“미치게 만들거나 그냥 죽일 것 같음 내가 이미 그 년 몸 안에 들어갔지. 제대로 다 밝혀야 돼. 내 아들이 내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산모령은 갑자기 사라지는가 싶더니 한주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헉!

이렇게 망가진 영은.... 처음... 봐요... 

설마... 당신이 내 엄마라는 얘기를 하는 건 ... 아니죠?”


한주의 목소리는 새끼 양의 그것처럼 하염없이 떨리고 있었다. 산모 령은 흰자위만 누렇게 돌아가 있는 눈을 치켜뜨고 한주를 바라보고 서 있다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당신이.... 엄마라구요?

그럼... 그 여자는...?

그랬구나...

그래서 나를 단 한번도 다정하게 안아준 적 없었구나... 그러면 대체 왜 나를 엄마에게서 뺏은거죠?”


한주는 분노와 놀라움으로 터져버린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너를 원하진 않았어. 다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뺏는데 네가 필요했을 뿐... 

내 아기.... 그 동안 얼마나 서러웠니. 얼마나 고생했니... 아이고.. 불쌍한 내 아기... 이 어리디 어린 나이에... 흑흑…”


양 보살은 가슴을 쥐어 뜯으며 서러워 울다 옆으로 쓰러졌고 산모령은 여전히 피눈물을 흘리며 한주 앞에 서 있었다.


“부디 꼭 밝혀야 해. 

난 정말 여기서 벗어나고 싶구나. 지긋지긋해. 살아서도 죽어서도 편안한 적이 없으니... 

아가야... 너와 나는 가는 곳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분명한건 이 구천은 벗어나야 한다는거야. 계속 있을수록 시꺼먼 찌꺼기로 끝도 없는 어둠속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걸 알게 될거야. 네 고리를 끊을 방법을 네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넌 자살령이라 나 같은 수구령과는 달라. 넌 정말 큰 죄를 지은거란다. 아가야... 네가 고리를 끊어낼 방법은 내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테지. 불쌍한 내새끼…”


산모령은 앙상하게 뼈만 남은 손을 들어 가슴을 쥐어뜯다 사라져갔다.


“엄..마?

어디 간거죠? 갑자기??”


“ 수구령은 수시로 있던 바다 밑으로 꺼졌다가 다시 오곤 해. 그들의 운명이야. 그러니 얼른 제사 잘 지내줘서 보내드려야지. 육신을 거두어야 하는 게 우선인데… 혼을 불러오긴 해도 같은 귀신끼린데도 소통이 안 되는건 육신이 실종이라 그런거야. 대체 뭔 복잡한 사연인가는 모르겠지만 얼른 해결들 보드라고... 진짜 이리 지내다간 내가 자네들 세상에 합류할 기세니.. 숨이 막혀 당최 살 수 가 있어야지. 에고에고…”


어느 새 목소리가 돌아온 양 보살이 성숙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대체 이 구천을 떠나면 어디로 갈 수 있는거죠?”


“그건 아무도 몰라. 거기로 간 영들은 다시는 우리랑 얘기도 할 수 없고 볼 수도 없으니... 우리 부처님 말씀대로 하면 극락이 있겠고, 연옥이 있겠고... 지옥이 있제. 너희가 지금 떠돌고 있는 이 곳은 구천이고... 구천은 인간들이 사는 세상속에 숨어 있는 어두운 골방 같은 곳이라 이렇게 우리 같은 무당하고는 소통이 되기도 하제. 


그란데, 이 구천을 떠도는 것들은 대부분 다음 세상을 가기 전에 잠깐 머무르는 영들이지만 조기, 조 아자씨 같은 경우는 이 건 해결되면 연옥으로 떨어질거라. 하도 지은 업이 많아서... 어허이. 영끼리 멱살잡이 해 봤자제.  아픈 것도 모르는 것들끼리 싸우지마야. 우리만 더 추워 죽응께.


어쨌든, 조 아자씨는 아주 겁나게 오래 연옥에 짱박을거란 말이시. 그란데... 제일 골치 아픈게 자네같은 자살령들이란 말이시. 왜냐믄 니는 진짜로 건방을 떤 것인께.  인간이 신이 내린 목숨을 앗아가기도 전에 싹뚝 스스로 잘라냈단 말이지... 이런 경우는 아주 풀기가 복잡해. 죽은 후 백 번째 밤이 돌아오기 전에 해결을 봐야혀.  거 해결 못 보면 니는 지옥으로 바로 급행열차 타야혀. 살인귀 보다 우째서 자살귀가 더 모진 벌을 받는가는 나한테 묻지 말드라고. 나도 몰러. 나도 이 험한 무당팔자 싫어서리 을매나 목심을 끊어볼라고 애썼는지 몰러. 근데 우리 같은 자들은 죽는것도 제 맘대로 못한께... 에효.”


결국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던 양 보살은 성숙이 치성판을 정리하자 징과 북이 든 보따리를 챙겨 들고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래서.... 그래서 대체 이 구천을 뜰려면 어째야 한다는 거요?”


“.... 나도 몰러. 그건 따로 작정하고 물어봐야제. 일이 다 순서가 있는 법인께, 우선은 네 어미 한 부터 풀어주드라고. 엄마부터 보내드려야제. 너무 오래 추운데서 고생했어. 불쌍한 것. 몸도 못 풀었는데 그 추운 바다속에... 에이그.. 하도 울어싸니까 힘들어 죽겄네.”


양 보살은 맨 손으로 코를 팽 풀더니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대가리가 안 좋아서 어째야 하는지 잘 모르겠으니까, 자네가 지휘를 하드라고.”


“필요하게 되면 부를께요. 당분간은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꺼지세요!!”


“...아.. 그래그래. 이해해. 이해하고 말고... 내 용서하란 말은 못하제. 무조건적으로다가 나한테 시켜. 내가 아주 그냥 수족처럼 열심히 할랑게.”


한주는 노여움에 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한주의 눈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서야 주정뱅이 영은 허둥지둥 사라져갔다.



“아주머니! 여기 소주 한 병 더!”


“아이고, 어지간히 드셨구만 이제 그만하고 댁에 얼른 들어가슈. 덩치도 큰 양반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누구 애를 먹일라고…”


“아 얼른 내 놓으라고! 손님이 달라는데 웬 말이 그리 많아요!”


이 정구는 동네 초입 포장마차에서 초저녁부터 혼자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예의가 바르지만 인사 이외 다른 말을 먼저 하는 적도 없고 항상 반듯한 정장차림에 바쁜 걸음인 그를 주민들은 차가운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그런 그가 종종 동네 포장마차에서 초저녁부터 소주를 마시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향하는 것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은 역시 외아들을 잃은 슬픔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수군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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