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야 이 년들아!! 내가 없는 사이 몰래 이사를 해??
너무 오래 안 맞았지, 그치? 야! 수연이, 소주 하나 갖고 와봐!”
삼삼오오 즐겁게 만두며 떡볶이를 먹고 있던 고등학생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한순간에 소리가 난 곳으로 이목이 집중되었다.
“ 먹던것들이나 얼른 처먹고 나가! 곧 문 닫을거니까.”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는 행색이 초라하고 더러웠다. 오래동안 씻지 않은 듯 걸레 썩은 냄새를 풍기는 것은 차치하고 연신 바닥에 누런 가래침을 뱉어대는 통에 사내가 나타난 후 대부분의 손님이 숟가락을 놓은 채 수연과 사내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애들 오는 분식집에 소주가 있을리 없잖아요. 장사해야 하니까 좀 있다가 오세요…”
짝!
소리가 어찌나 크고 날카로운지 정수는 저도 모르게 나지막한 비명을 질렀다. 정작 뺨을 맞은 윤조는 흔들림도 없이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넌 뭐야! 건방지게... 내가 이 분식집 주인이라고! 다 썩 나가!! 당장!! 돈들은 내고 나가라. “
순식간에 얼어붙은 분식집 안을 사내는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서둘러 먹던 음식을 두고 허겁지겁 식탁 위에 돈을 놓고 뛰다시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정수와 승진이 이미 문밖에서 윤조를 부르고 있었지만 윤조는 여전히 자리에 서서 사내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 진짜 오지랖 병이다... 얼른 나가. 저 인간 ... 짐승이야. 얼른 나가….”
평소의 독기오른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파랗게 질려 떨고 있는 수연이 윤조를 밀다시피 몰아내려 하고 있었다.
“우리 가면... 저 짐승한테 마음껏 당하게? “
윤조는 쌀쌀맞게 대답한 후 밖에 서 있는 둘에게 손짓으로 경찰에 연락하라고 신호를 했다. 승진이 잽싸게 정수의 손을 잡고 뛰는 것이 보였다.
“제발... 그냥 가줘. 이래봤자 도움이 안된다고…”
수연은 공포에 가득 질린 눈빛으로 애원하고 있었다.
“아니 이년은 뭔데 아까부터 간섭질이야! 한 대 더 맞고 꺼질래?”
마지막 테이블의 남학생이 돈을 내고 사라지자 사내가 번뜩이는 눈으로 윤조를 노려보며 다가오려하다 마치 다리가 꺽인 것 처럼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 어어... 이거.. 이거 왜이래... 아이고 나 죽네... 빨리 ...119...119... 얼른 전화 안 하고 뭐해! 망할년이 구경만 하고 있네. 전화하라고!!”
수연의 엄마는 겁에 질려 전화기를 손에 든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줌마, 119 전화하지 마세요. 인간 쓰레기 도와주라고 있는 119 아니니까... 경찰 올 때까지 그대로 계세요.”
“으하하하. 꼬마야. 너도 이것들이랑 같이 죽고 싶냐? 내가 이것들 때문에 감방에서 3년을 썩었어! 내가 이것들을 그냥 둘것 같애? 경찰? 내가 무슨 짓을 했어! 난 아직 법 위반한 것 없다고!”
남자는 바닥에 쓰러진채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서슬이 퍼렇게 협박을 하고 있다.
“이 새끼 입도 닥치게 할까?”
사내의 등을 타고 앉아 팔짱을 낀채 이죽이고 있는 한주가 보인다.
“그래, 시끄러워 죽겠네. 그 입 좀 닥치게 해줄래?”
윤조는 일부러 크게 소리를 내어 말했다.
“뭐…윽...”
사내는 눈이 튀어나올 듯 사납게 반응하려 했지만 이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앉은뱅이 상태로 답답한 듯 가슴을 쥐어 뜯고 있었다.
수연과 수연의 엄마는 갑자기 일어난 이상한 일들에 정신이 없는 듯 사내와 윤조를 동시에 바라보고 있었다.
“수고하십니다. 신고가 들어와 왔습니다만... 저 분이 무슨 짓을 했나요?”
승진과 정수의 신고를 받고 달려온 지구대 순경들이 도착했다.
분탕질 중인 남자를 제압하러 달려온 순경들은 바닥에서 가슴을 뜯고 있는 남자와 그 앞에 교복을 입고 차가운 표정으로 내려다 보고 있는 윤조, 그리고 카운터 뒷쪽 코너에 나란히 붙어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는 모녀를 차례로 돌아보며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아저씨. 저 사람이 이 모녀를 괴롭혀 감옥에 갔다가 나온 모양인데 법적으로 그런 사람은 피해자에게 다시 접근 못하게 되어 있는 것 아닌가요? 아님 감옥에서 평생 살게 하던가요! “
“자자... 차근 차근 얘기를 들어봅시다. 뭐가 어떻게 된겁니까.”
“... 아후! 후! 후! 아아! 아! 나온다 !!! 나온다 목소리!! 으하하. 들어보쇼 경찰 나으리. 내가 이 여자의 남편이고 저 학생의 애비요.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나온 애비가 딸내미랑 마누라가 보고싶어 찾아왔는데 그게 죄요??”
한주가 윤조쪽으로 다가오자 사내는 겨우 말문이 트였다.
“일단 신고가 들어왔으니 서로 좀 같이 갑시다. 아주머니랑 학생도...그리고 학생..응? 어디갔지?”
경찰들이 바로 옆에 있던 윤조를 돌아보자 윤조는 이미 자리를 뜨고 거기에 없었다.
“넌 왜이리 겁대가리가 없냐! 왜 끼어 들어서 멀쩡한 뺨은 맞고 난리야. 딱 보면 견적 안 나오냐? 저런 아저씨 정말 싫어…”
승진은 정수와 함께 밖에 숨어 기다리고 있다 윤조의 팔짱을 낚아채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 진짜 저런 인간들은 왜 사니? 왜 ! 왜! 왜!!!
왜! 아까운 청춘은 목숨을 버리게 되고 저런 쓰레기는 꾸역꾸역 죽지도 않고 살고 있는거냐고. 정말 열받지 않아? “
“난 네가 수연이를 굉장히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누가 걔가 좋대?
저런 인간 쓰레기가 내 눈에 띈게 불쾌하다고.”
윤조는 들은 얘기가 생각났지만 입을 다물었다.
윤조가 수연을 처음 본 것은 중학교 1학년때의 일이었다. 반장이었던 윤조는 기초생활수급자인 수연네 형편을 고려해 매 번 학급비나 급식비등을 걷을 때 아이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배려했지만 그때도 수연은 윤조의 호의를 결코 달가와하지 않았다. 유난히 마르고 우울한 수연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수연의 이름을 딱히 기억하는 아이는 없었다.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혼자 공부를 하던 수연이 중3때 어쩐 일인지 이 주나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갔다고 했을 때 그 누구도 궁금해 하거나 연락을 했다는 아이가 없었다.
윤조가 수연의 사정을 알게된 건 고등학교에 갓 입학하고 우연히 수연과 다시 같은 반이 되었을 때였다. 그러고 보면 윤조와 수연은 같은 반만 네 번을 하게 되었지만 아는 사이보다 못한 관계다. 윤조는 수연의 일방적인 미움을 받는 것에 넌더리가 날 지경이었다.
“얘들아, 담임이 환경미화 해야하니까 학급비 천원씩 내래. 내일까지 갖고 와라. 아침 자율학습 전에만 받는다. 늦게 낼 애들은 담임한테 직접 내. 쉬는 시간마다 찾아와서 내면 나 공부 못하니까. “
대부분 임시반장은 성적순으로 맨 꼭대기에 있는 아이를 선생이 지명하게 마련이다.
“여기.”
“잠깐. 됐어. 넌 내가 이미 체크해놨어.”
수연이 다음날 아침 처음으로 학급비를 내러 왔을 때 윤조는 낮게 속삭였다.
“너 진짜 재수 없는거 알지? 내 학급비를 왜 네가 내주냐! “
수연은 독이 잔뜩 오른 목소리로 날카롭게 쏘아붙이더니 윤조의 책상위에 천원 지폐를 던지고 돌아섰다. 그래서 윤조는 그 날 수연과 전교에 소문이 날 만치 심하게 싸웠다.
몇 주 후 윤조는 공교롭게도 수연과 주번이 되었지만 사이가 극도로 나쁜 둘은 해야할 일을 분담할때 빼곤 전혀 말을 섞지 않게 되었다.
“쟤는 많이 곪아서... 그냥 두는게 나을거야.”
“이제 관심도 없어. 원래도 없었지만…”
“큰 형이 사건을 맡았었는데... 쟤네 아버지였어. 가정폭력범. 닥치는대로 부수고 때리고... 신고를 한 것도 쟤네 이모야. 하도 연락이 안 되어서 찾아가보니 집안이 난장판으로 되어 있는데다 두 모녀가 골병이 들어서 누워 있더래. 쓰레기 같은 아빠 밑에서 저 정도 독하게 공부할 정도니 쟤도 안쓰럽지 뭐. 우리 형이 구형은 6년을 했지만 형은 3년으로 떨어졌었어.”
일주일 내내 하는 주번 조회에서도 뚝 떨어져 서 있는 같은 반 여학생 둘을 살피던 수호가 따로 윤조에게 해 준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수연이 갑자기 괜찮아 보였거나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윤조는 수연을 죽일만큼 싫어했던 것은 그만두기로 했었다.
여자 이과반이 하나 뿐이라 둘은 2학년 때 또 같은 반이 되었지만 서로를 무시하며 지냈다. 그런데 오늘 직접 수연의 상황을 눈으로 보고 나자 윤조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쓰레기가 물에 있으면 그 물 전체가 썩는게 맞구나... 저 인간이 또 활보하게 되었으니까 쟤 인생은 더 끔찍해지겠군.”
윤조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진짜... 아우.. 쟤 어쩌면 좋냐. 공부나 하겠냐 이제?”
정수는 아직도 놀란 가슴이 진정이 안된양 상기된 붉은 얼굴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너 무슨 고교 일지매나 신 홍길동... 이런거 되고 싶은거냐 지금? 미나 돕느라 기원 들락거리는 것도 모자라서 …”
일행의 뒤에 바짝 붙어 흐느적거리며 따라오던 한주가 비웃는다.
‘저런 인간은 답이 없으니... 사라져 줘야 나머지 사람들이 발을 뻗고 살지 않겠어?’
윤조는 마음이 착잡했다.
“그래서?”
‘술 처먹고 비틀거릴 때 그냥 좀 밀거나 하면 안돼?’
“제일 쉬우면서 복잡한게 인간 목숨인거 모르지? 넌 내가 쉽게 죽었다고 생각하니? 분명 내가 택한 길인데도 난 아직도 내가 어쩌다 죽었는지 모르겠거든... 아... 죽는게 이렇게 따분한 건줄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한주는 아리쏭한 말들만 늘어놓더니 앞장을 서서 휘적휘적 순식간에 사라져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다시 나타나 윤조의 눈 바로 앞에 마주 섰다. 윤조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할 말 있음 한꺼번에 하고 좀 사라질래? 내 간 기능 테스트 하는 것도 아니고 왜 자꾸 이래?”
너무 슬퍼 시릴정도인 한주의 눈을 마주볼때마다 윤조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그거 아니? 난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어. 절대 잠들수가 없다구.... 난 죽으면 정말 실컷 자고 싶었거든. 제길. 제대로 망했지? 흐흐흐”
한주는 웃고 있었지만 여전히 슬퍼 보였다.
“그래... 바로 네가 내 오지랖병의 원인인거... 알고는 있겠지?”
“대충은 그럴거라 생각했지. 더 이상 네가 아는 이름들이 사라지는게 무서운거지? .... 그리고... 너도 ... 나 같은 결심을 하게 될까봐도 두렵지?”
등수 한 계단만 내려도 당장 자살을 생각해보는 윤조를 한주가 모를리 없다. 똑같은 삶을 살다 의미를 잃어버린 그가 윤조를 아파하듯, 상상만 하던 그 끔찍한 일을 저질러 버린 한주를 윤조가 슬퍼하듯 어느 새 차디 찬 늦가을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집 방향이 비슷한 정수와 승진이 타고 갈 버스가 먼저 도착했다. 셋은 각자 다른 생각에 잠겨 입을 닫고 있었다.
“윤조야. 우리는 둘이니까 너 먼저 보내고 갈까?”
승진이 잠긴 목소리로 겨우 입을 뗐다.
“아냐. 여긴 큰 길가라 괜찮아. 먼저 가. 놓치면 또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머뭇거리는 아이들을 윤조는 떠밀다시피 버스에 밀어넣었다.
둘은 마지못해 버스에 오르면서도 짐짓 윤조가 걱정되어 내내 돌아보았다. 정류장 옆의 가로등은 뭐가 문제인지 깜빡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