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봐라잉. 귀신이 되면 진짜 만사가 구찮은거여. 특히 인간사에는 신경도 쓰기가 싫다고. 근데 어쩌겄어. 지은 업은 있고, 구찮아도 까라면 깔 수 밖에. 어이 똑똑이. 잘 지냈어라?”
“... 아저씨... 저 등불은 왜 깜빡이는 거에요? 아저씨가 저런거 아녜요?”
윤조는 더이상 주정뱅이영의 등장도 놀랍지 않다.
“아녀. 저건 예나 지금이나 공무원들이 농땡이를 쳐서 그런겨. 시력에 상당히 안 좋겠구마이. 확 꺼뿌까?”
“근데 아저씨는 나랑 연관도 없는데 왜 자꾸 나타나는거에요?”
“섭하네잉. 뭔 대접이 그렇소. 내가 아가씨랑은 관련이 없지만서도 한주놈이랑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제. 그놈아는 뭔지 모르겠지만 아가씨랑 또 연관이 있고... 그래서 요로코롬 엮인거시여. 쓰레기 하나 치우는거 좀 도와주라 하던디. 뭔일이랑가?”
“아녜요. 귀신들이 할 수 있는게 뭐가 있겠어요. 사람들 간이나 떨어지게 만들줄 알았지... 굿이니 푸닥거리니 이런거 진짜 쓸데 없다니까... “
윤조는 체념한 듯 성의 없이 대답을 하다 마침 버스가 오자 얼른 올랐다.
“어허 그건 아녀. 굿이나 푸닥거리 자체가 효과가 없는건 아녀. 다만 사람들이 정확한 의미를 몰라서 그려.”
“아저씨.
사람들이 굿이나 치성 이런거에 얼마나 돈을 쓰는지 몰라요? 간절하게 바라다 못해 사리판단을 잃고 이 세상을 등진 귀신들한테까지 비는거라구요. “
“어허이. 들어봐.
굿이나 치성은 그냥 매개여. 보통 인간들이 귀신이랑 대화를 못하니께 무당이 일단 불러만 주는거여. 소원을 들어주고 말고는 귀신이 정하는 것이지 무당 맘이 아녀. 그란디 인간들이 이상한 걸 많이도 바라지.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던가, 죽어가는 아들을 살려달라던가, 바람난 남편을 정신차리게 해달라던가... 인간들이 어찌나 띨띨한지 말도 못해. 아니 생각을 좀 해보드라고.
무당이 불러내는 귀신이란 것은 아직 다른 세상으로 못 넘어간 구천을 떠도는 것들이 대부분이여. 장군뿌리니 영험한 할매니... 그런 신급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뭔가 결격사유 있어서 더 좋은데로 못 넘어가고 인간들 사는데 껴가지고설라므네 신노릇 하는 것들이라니까.
제대로 된 인간들이 믿는 신이 뭐랄까 대기업이라면 ... 그니께 믿고 볼 수 있는 품질이라칸다면 무당들이 모신다는 그런 신급들은 무허가 가내 수공업 정도라고 보면 되는거여. 봐봐. 예수나 부처 같은 대기업은 믿고 따르면 아푸타 싸비스도 해준당께. 헌금 꼬박 꼬박 내고 잘 빌면 천국이니 극락이니 멤버쉽에 껴주잖여. 그런데 이런 사이비들은 그런거 없어. 음청 변덕스럽당께. .. 아... 나 이래뵈도 배타기전에 대기업 테레비 만드는 공장에 있었어야. 기술자랑께.
그란데 그 잡신중에 뿌리 좀 되는 것들이 뵈는 것은 많으니께 네가 다음주에 쓰레기차에 받혀서 운명할 것인지, 석 달 후에 재수 대박 나서 돈벼락 맞을지 요 정도는 말해줘도 뭘 해달라는건 어려워. 어찌 하면 될지, 어디로 가면 있을지 이 정도면 몰러도... 아니 죽기 직전인 아들을 무슨 수로 귀신들이 살려낼 수 있당가. 돈을 아주 많이 벌게 해달라고? 구천에 떠도는 자살령중 반이 돈없어서 죽은 것들인데... 누가 누구더러 돈을 벌게 해달란거여? 그란께 답답하단거여.”
“알았어요. 뭐 별 쓸모없는 존재들이네요.”
윤조는 관심없다는 듯 창밖의 풍경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그런데...
우리는 말야...
뭘 망치거나 죽이거나 이런건 또 할 수 있지…”
윤조는 갑자기 섬뜩해진 주정뱅이영의 목소리에 다시 그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것도 맞아야제.
한주 같은 자살령은 인간을 지랑 똑같이 자살로 죽일순 있어도 다른 방법은 못 쓰제. 수연이 애비 덕수 같은 인간은 자살 같은건 할 생각도 없어. 그런 인간이 제일 골치 아픈게 뭔지 아는가? 주위 인간 모두를 자살하게 만들어도 지는 절대 지 목숨 안 끊는다. 또 다른 인간들을 괴롭히며 악착같이 사는겨. “
“그럼... 한주는 못해도 아저씨는 된다는거에요?”
“그래...
내가 어쩌다 이꼬라지가 되었는지 아는가? 내가 .... 아니오. 별 쓰잘데기 없는 말을 다 할라고 했네.
내가 죽은 방법으로 죽게 할 순 있지. 아주 간단혀. 그렇지만 네가 해달라고 하는건 소용이 없어. 그 인간한테 아주 오지게 당한 인간이 내한테 밥을 제대로 한 번 먹여주면서 간절히 부탁을 해야해. “
“... 근데 그게... 걔가 아저씨하고 어떻게 얘기를…”
“그런건 문제가 아니다만 걔가 나한테 부탁을 해서 내가 그 쓰레기를 치우면... 그래도 너도 연관이 되는 것인디.. 괜찮겄냐?”
“.... 쓰레기 치우는건데... 미안해야 하는건가요?”
“.... 뭐..그렇게 말한다면야...
한주만큼 냉정하구만…”
주정뱅이 영은 약간 놀란 듯 눈의 초점을 모아 윤조를 빤히 쳐다보다 느릿느릿 대답했다.
할 말을 마쳤지만 주정뱅이 영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윤조의 옆에 앉아 있었다. 윤조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내일 대국에서 쓸 기술을 구상하며 바둑책을 꺼내 들었다.
“안 내리냐?”
어느 새 한주도 나타나 윤조의 앞자리에 걸터 앉아 윤조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윤조는 깜짝 놀라 후다닥 버스에서 내리고서야 정류장을 하나 먼저 내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야! 여기가 아니잖아. 피곤해 죽겠는데 걷게 만들고 있어…”
“성질하고는... 밤에 걸으니까 좋은데 뭐.. 게다가 든든한 귀신이 둘이나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걷기 싫으면야 뭐... “
한주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윤조는 갑자기 아침에 담장을 넘을 때 처럼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만약에 어떤 인간이 지금 나를 보면 난 지금 어떻게 보이는거야?”
“굉장히 이상한 폼으로 천천히 나는 것처럼 보이겠지.”
“엄마가 밖에 나와 있을지도 모르는데.. 내려놔.”
“재밌지 않아? “
“재밌긴 해 흐흐.”
윤조는 어느 새 소리내어 웃고 있었다.
“어이... 저기 온다.”
비틀거리면서도 속도는 쳐지지 않고 잘 따라오던 주정뱅이 영이 속삭였다. 한주는 미소가 사라진 무서운 표정으로 변하더니 윤조를 내려놓았다.
“누가 온다는 거야?”
“너한테 보여줄게 있어.”
“뭐?”
“아까 네가 한 말... 진심인지 좀 알아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