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어떤 말?”
“쓰레기 치우는데 죄책감이 왜 드느냐고 했잖아.”
“…그런데?”
한주는 대답은 않고 텅 빈 골목길을 응시했다. 윤조도 입을 다물고 한주가 바라보는 방향을 함께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마스크에 버버리 코트를 목까지 채운 사내가 골목 앞 켠에 나타났다. 윤조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몇 년 째 이 골목에 이른 새벽이나 밤 늦게 등장하는 변태였다. 저 거시기가 자랑스러워 죽는 인간 때문에 심장마비에 걸릴뻔한 동네 여학생들이 꼽을수도 없을 정도다. 아침부터 미친 달리기를 하게 만들고 동네 엄마들을 야밤에도 딸을 데리러 동구밖 외출을 하게 만드는 인간. 어찌나 신출귀몰인지 당한 이 중 그 누구도 신고조차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 윤조의 엄마가 신고를 했었지만 경찰은 시큰둥했다. 그런 것 까지 단속할 수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잘난 변명이었다.
“아 진짜 욕나와. 또 기어나왔네 저 화상. 아씨... 돌아서 갈까? 그럼 너무 먼데…”
저 인간은 윤조가 옆을 지나려 할 때 저 펄럭이는 버버리 코트를 들추고 흉물스러운 자신의 거기를 내놓을 것이다. 대체 본인의 거시기를 보고 무서워 뛰는 여학생을 보면서 무슨 쾌감을 얻는 것일까...
윤조는 아드레날린이 극도로 분비되는 것을 느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래도 오늘은 옆에 귀신이라도 둘이나 있다며 애써 침착하게 변태의 옆을 지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윤조와 변태는 좁은 골목길에서 약 30미터 간격을 두고 대치중이었다. 큰 마음을 먹고 윤조가 한 발짝을 뗐을 때 변태가 코트자락을 여며 잡는 것이 보였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윤조는 변태가 흥분해 웃고 있을것을 생각하니 역겨워서 속이 뒤집혔다.
그때였다.
한주가 눈짓을 하자 주정뱅이 영이 순식간에 변태의 뒤로 가서 섰다. 그는 흥분으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윤조를 바라보았다.
“어이!
이 자식한테 오래 당했제?”
윤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네 입으로 똑똑히 말해야지 돼.
이 쓰레기.. 어떻게 내가 청소해? 말어?”
윤조는 순간 얼어붙어 움직이려던 발을 멈추고 섰다.
“네가 정해야 돼. 저 인간은 나랑도, 저 영이랑도 상관이 없으니까... 대답해.”
한주는 얼음같이 차가운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윤조 옆에 서 있었다. 꼭 처음 한주가 귀신이 된 후 스쳤을 때 처럼 소스라치게 차가운 기운이 전해져 와 윤조는 무의식중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만약... 아니라고 하면?”
“뭐 상관없어.
바로 다음에 일어날 일... 알려줘?
저 인간은 네가 오늘 꽤 늦었다는 걸 알고 있어. 문제는 오늘 저 인간이 거시기만 보여주는걸로 끝나진 않을거란 거지. 무슨 짓을 하려 할테지만 당연히 내가 그꼴은 안 보겠지. 그런데 우리가 사라지고 나면 너네 옆집 첼로하는 이 나윤이 이 골목에 등장한다. 걔 다음주에 콩쿨 있어서 이번 주 내내 늦게 귀가하고 있어. 그 아이가 나쁜 일을 당할거야…”
“.... 나윤이도 저 인간을 알고 있으니까 보이면 안 보려고 노력하면서 뛸거야.”
“ 오늘은 그걸로 끝나지 않을걸. 저 인간이 제대로 미친 날이라서.... 어때? 이제 대답해.”
한주는 소름끼치는 미소를 띄고 윤조를 시험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 죽을만큼.... 나쁜 인간인걸까?”
“어느정도여야 죽을만한지 그런건 없어.
이건 어때. 저 인간이 단죄하기 애매한 고통을 아주 많은 여학생들에게 줬잖아. 그걸 모아 보면? 이젠 치워줄만한가?”
한주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모질었다.
윤조는 결심한듯 발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변태를 똑바로 바라보며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서자 까만 뿔테 안경속 작은 눈이 옆으로 번지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옷깃을 여며 잡은 손이 단단해지는 것을 보자 윤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윤조의 입을 뒤에서 막은 채 골목 옆에 난 샛길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윤조는 한주에게 마음속으로 소리를 치고 있었다.
‘치워줘!!!!’
어둠속에서 눈을 뜬 윤조는 한참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디지…’
“어디긴 어디냐. 집이지.”
“왜 기억이 안나는거지?”
“보통 사람이 알고 겪는건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는데 말야... 네가 얼마나 나를 안 믿고 있는지 오늘 알았네.”
한주는 잠에서 깬 윤조 옆에 걸터 앉아 있었다.
“체온은 정상으로 돌아왔군.”
이마에 손을 대본 후 중얼거리며 그는 창가로 다가가 커텐을 살짝 젖혔다. 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스며들어 한주의 옆모습을 음산하게 비추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윤조가 묻고 있었다.
“뭐가?... 아... 그 변태새끼? 치워달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