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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신곡2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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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le Sep 26. 2024

05. 가라앉기를 기다려라, 무엇이 그토록 탁하였는지

(6)


“…그래서?”


“뭘 그래서야... 주정뱅이 아저씨랑 같이 있겠지.”


“.... 진짜로... 죽었어?”


“...응... 그런데... 웃기더라... 하하하하”


갑자기 한주는 뭐가 그리 웃긴지 허리를 꺽어가며 폭소를 터뜨렸다.


“..... 누군가가 죽은 것이 그렇게 웃길것 까지야... 너 원래 이리 잔인했니?”


“같지도 않은 착한 척은 그만둬. 

치워달라고 한 건 너야.”


갑자기 한주가 매섭게 노려보자 윤조는 섬뜩해졌다.


“관심도 없는 인간들이 조금 더 평화로와졌는데 우리한테 고맙다고 해야하는것 아니냐?


그나저나 주정뱅이 영은 죽은 지가 십 년도 훨씬 넘었었는데 자기가 어떻게 죽은지도 모르고 있었거든? 그런데 오늘 알게 되었지 뭐야. 본인이 늘 술취해서 동사했다고 말했는데 아까 그 변태 죽는 것 보니까 벽에 머리를 박아서 죽었더라구. 그래서 그 아저씨가 이마에 혹을 달고 다니는거였어. 하하하.”


“그래.. 참 웃기기도 하겠다....아.. 나 속이 안 좋아.. 토하고 싶어…”


윤조는 갑자기 어쩌면 자기가 변태를 죽인걸지도 모른다 생각하자 속이 메쓱거렸다.


“들어봐.

그 자식은 죽어서도 아랫도리를 보여주고 싶어 할거야. 그렇지만 아무도 더 이상 그 흉물스런 것을 보지 않아도 되지. 대부분의 사람은 그 자식을 볼 수 없으니까... 잘 된거야. 갑자기 왜 그러는거지? 

쓰레기의 문제는 냄새가 아니라 깨끗한 것마저 오염시킨다는 거야.“


그래.

그럴지도...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것은...

하 윤조로써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그것이기도 했다.



“학생, 며칠동안 나한테서 수거해 간 돈은 다 갖고 나타난거겠지?”


아직 미나의 빚에 못 미치는 돈이 모였지만 윤조는 침착했다. 약속 시간 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이 사장 패거리는 이미 윤조네를 기다리고 있었다.


“ 흠... 자기 실력으로 안 되니 대타를 데리고 왔군... 저 대타는 흠... 네가 얼마나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힘들겠어. 아주 가끔 나타나는데 말 한마디 없이 대국 몇 번하고 돈을 쓸어 간다구. 한 때 프로기사였다던가... 하여간 온갖 도박은 다 좋아하는지 번 돈을 포커판에서 잃곤 한다지...저런 뇌가 내 머리로 들어왔으면 전국 1등은 나 박 규원 차진데말야…”


기원에서 일하는 규원은 이사장이 데리고 온 사내를 아는 눈치였다. 사내는 말 없이 등을 돌리고 서서 더러운 기원 창가에 기대어 밖을 보고 있었다. 중키에 머리가 덥수룩한 사내는 왠지 느낌이 익었다. 


“하 기사! 이리 와서 앉지. 학생이 왔으니 말야…”


이 사장이 부르자 사내는 그제사 천천히 돌아섰다. 뿌연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등지고 선 사내의 모습은 거무스름해 금방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윤조는 단번에 삼촌 하 중섭인 것을 알았다.


“어…”


윤조는 당황하여 저도 모르게 작은 비명을 흘렸다.


“바둑을 좀 하긴 하나보군. 한 물 간 프로기사를 알아보는 걸 보면…”


하 중섭은 윤조의 입을 얼른 막았다. 


‘훗. 쉽겠군. 

설마 삼촌이 나를 코너로 몰진 않겠지. 오늘 좀 걱정되었었는데 말야... 이 사장이 대타를 데리고 올줄이야 이미 예상했지만 그게 삼촌일줄이야... 나한테는 정말 잘되었지 뭐야. 이 한주. 네가 굳이 필요하진 않겠어.’


“그건 아닐걸.

지금 네 삼촌은 저 이사장한테 빚이 한보따리야. 잘 들어. 도박에 미친 인간은 거의 빙의된거나 마찬가지라구. 이성도 감정도 마비되어 있지. 조카따위 신경 쓸 여유란 도박쟁이 삼촌에겐 없다. 내가 없음 너는 오늘 네 삼촌 빚을 좀 갚아줄 순 있겠어. 하지만 미나는 그렇게 되면 물 건너 가는거야.”


윤조는 한주의 말에 흠칫 놀라 대국을 준비하고 앉아 있는 중섭을 쳐다보았다. 중섭의 동공은 텅 비어 있었고 손톱은 하나 같이 물어뜯어 뭉그러져 있었다. 천재로 태어났지만 심약해 도태된 중섭을 윤조의 아빠 만섭은 경멸했다. 그래도 예전에는 간혹 중섭이 집에 들르곤 했었는데 윤조를 기원에 데리고 다닌 이후 중섭은  몇 년 째 소식이 두절되었었다. 윤조는 시니컬하지만 똑똑한 중섭을 잘 따랐었다. 그는 무엇이든 한 번만 보면 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어디서건 한 번 본 이야기나 지식을 기억하는 중섭은 윤조에게 처음으로 별자리들을 가르치고 피타고라스의 공식을 증명해서 기억할 수 있게 하고 어떤 인수분해도 해 낼 수 있는 본인만의 비법을 알려주었으며 유럽의 지배역사나 노예제도의 기원 등 시험과는 별 상관없는 유익한 지식들을 조곤조곤 알려주곤 했었다.


“그렇지...

이 인간도 등에 업고 있는 영이 하나 있군. 도박쟁이들 중엔 악령이 붙은 인간들이 꽤 있지. 그래서 도박이 무서운거야. 죽어서도 계속 그짓을 해야해. 그러니 그 그릇된 욕망을 풀어줄 인간 숙주가 필요한거야. 그래서 이 세상에 도박이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거지. ..

야...

기대 않는게 좋겠어. 저 인간은 꼭 너를 이기려 하고 있어 지금. 그리고 내가 보는 삼십 분 후 상황은 내가 관여 안 한다면 넌 꼼짝없이 일주일간 고생한 돈을 다 삼촌 도박 빚 갚는데 내 놓아야 할거야.”


‘ 아... 어쩌지...

일단 삼촌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해야겠어. 어차피 이 돈을 다 잃어준다 해도 빚을 다 갚을 수 있는것도 아닐테니…’


“새발의 피도 안되는 수준이지... 그래도 그만큼 급박한거야. 저 인간은... 그리고... 오늘 밤에 또 이 사장에게 빚을 지고 포커 하우스를 들를 예정이지.”


윤조는 한주의 말에 조금 흔들리던 마음을 굳게 먹었다.


‘도와줘. 이겨야 돼.’


“좋아. 그 태도. 드디어 너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군. 으하하”


한주는 윤조가 급하게 부탁을 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대국이 시작되었다.

윤조는 분명 꽤 실력이 뛰어난 편이었지만 여전히 중섭을 대적하기엔 역부족이다. 


“너 지금 장난하냐? 내 말 듣기로 해놓고 왜 네 마음대로 놓고 있는거야? 중앙에 대마 뺏긴거 안 보이냐? 너 이제 변두리 짜투리 땅이나 모아야 한다고 지금. 너 한 번 더 내 말 안 들으면 나 간다!”


‘아우... 삼촌이 너무 헤깔리게 하니까…’


“그걸 실력차이라고 한다. 이 애송아.”


‘어쩌라고!’


“너의 문제는 네가 최고가 아닌 곳에서도 최고인척을 한다는거야. 그냥 나한테 맡기라고. 미나 죽이기 싫으면…”


“... 죽는다니?? 무슨…?”


윤조는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을 쏟고야 말았다.


“학생... 바둑 두다 말고 잡념에 싸이면 안되지. 대마는 죽었다고 봐야지. 얼른 다음 수나 두게.”


중섭은 잔뜩 때가 낀 손으로 바둑판이 놓인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봐라. 여기도 나름 리그다. 

너희 아빠는 내가 프로기사로 승승장구할 때 참 자랑스러워했지. 그런데 바둑을 예술이라고, 스포츠라고 부르는건 그건 지들 맘이고... 모든 행위나 현상이나... 그 자체로 값어치나 의미를 가지는건 없어. 그런 이미지따위 다 허상이라고. 어차피 프로도 큰 도박판에서 움직이는 경기마일 뿐이고 기원도 하나의 게임장이야. 잔혹한 세상이 축소판으로 들어 있는 곳이야. 배웠으면 써먹어야지. 가장 빨리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온갖 추잡하고 어두운 기술이 난무하니까...

원래 마술도 흑마술이 최고인 법.”


중학교에 갓 입학한 윤조를 기원에 처음 데리고 온 날 하중섭이 한 말이었다.


몇 년 만에 다시 마주한 삼촌은 예전보다 더 폐쇄적이고 더 무기력해 보였다. 그의 텅 빈 눈에 그나마 살아 있는 것이라곤 승부에 대한 집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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