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를 위한…

(4)

by Hazelle

면접시간이 임박하자 면접장으로 지정된 회의실 앞 나란히 놓인 대기의자에 앉은 지원자들이 서류를 안고 들어서는 나를 보더니 약간 멈칫하다 어정쩡하게 다들 일어선다.


“아뇨, 앉아 계세요. 면접은 개별로 진행되고, 순서별로 호명하면 들어오시면 됩니다. 개인당 면접은 10분에서 15분 정도 걸릴 거예요. 면접 후에는 별다른 공지 없으면 면접비 수령하셔서 안전히 돌아가시면 되고 합격자 발표는 개별로 연락 갈 거예요.”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젊은 여인 다섯이 다시 우물쭈물 자리에 주저앉는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방만 사 모으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면을 적절하게 구비해 나간다. 그리고 모름지기 면접을 볼 때야 말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좋은 가면을 꺼내 쓴다. 지금 내 앞에는 세상에서 가장 ‘근면하고’ , ‘겸손하며’, ‘가장 경우 바른’ 여성 다섯 명이 가장 곧은 자세를 하고 앉아 있다. 나도 면접을 보러 가거나, 새로운 프로젝트, 새 갑들을 만나는 자리엔 잘 구비해 쓰고 나가는 가면이라 익숙하달까.


면접장의 면접관들도 다섯, 물론 말단부터 착석하기 시작하고 맨 마지막 대빵인 상무가 면접 시간 5분이 지나고서야 서두르는 기색 없이 천천히 들어와 비워 놓은 가운데 상석에 자리를 한다. 뭐 어차피 대빵도 이 회사 주인은 아니고 월급쟁이지만 원래 머슴들 잡는 건 마름이지 주인 나으리가 아니다. 이태리 고급 브랜드 제냐 정장을 좋아하는 기름집 상무는 운동광답게 배만 살짝 나왔을 뿐 그 나이치고 꽤 풍채가 멋진 편이다.

그는 대외적으로 조선 무관만큼이나 호탕하고 배포가 큰 호인이지만 일 년 가까이 옆에 붙어 살펴본 바로는 자잘한 것 뭐 하나 잊지 않는 무서운 기억력을 가졌고 한 번 눈 밖에 나면 철저하게 뽑아내 버리는 독재자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을 두고도 그를 ‘털털한 호인’이라고 유독 따르는 사람들은 그의 알 수 없는 속내는 못 읽고 어째서 자기만 승진이 느린지를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게 상무의 수족을 자처하는 안 부장이 동기에 비해 승진이 느리긴 해도 이 사무실 최초의 비 상대 출신 관리급인 비결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아… 오늘은 왜 이리 배꼽시계가 빨리 울리노. 김 대리야. 지금 몇 시고?”


“지금은 면접 시작하셨어야 할 시간에서 8분쯤 지났습니다.”


“에헤이… 거 늙은이 시간 좀 늦게 왔다고 딱 또 까칠하니 그리 말하고 있재? 알긋다. 밖에 대기들 하고 있더만. 1번부터 찬찬히 들어와 보라케라.”


수첩 하나, 볼펜 하나 없이 홀가분한 차림으로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며 다섯 자리 중 비워 둔 가운데 자리에 최대한으로 다리를 벌리고 앉은 상무를 보며 저 아저씨가 바로 지하철에서 꼭 만나게 되는 ‘쩍벌 아저씨?’라고 혼자 생각하다 이내 접어 버렸다. 같은 머슴이라도 이 정도 재벌 회사의 제일 중요한 광지기 정도가 대중교통을 이용할리 없으니…


“보자, 1번으로 들어올 아가씨 이름이…

잠깐 들어오기 전에 스윽 봤더만 다들 마 인물이 출중한 것이 무슨 연예인 뽑는 오디션장 분위기더라이. 참 요즘 젊은이들 인물이 좋아.”


어차피 대 놓고 인물 보고 뽑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만큼 홀가분하게 구경하듯 면접장에 들어온 상무는 은근히 기분이 좋은 것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무는 비서가 따로 없는데 어차피 이 사무실 경리는 상무 비서도 겸하게 되니 그렇다. 그렇다고 경미 씨가 직속상관인 김 과장을 씹어서 잘릴 때 감싸주는 척이라도 한 것은 아니다. 사람 좋은 척 호탕한 척 대인인 척 … 다 척이니까… 저 정도 사회생활 오래 하고 어느 정도 꼭대기에 이른 천년 먹은 여우급이 되면 직장생활에 몸 담은 그 누구도, 본인마저도 결국은 소모품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그 소모품이 교체되는 것 따위에 마음이 흔들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출신들이 다… 거의 같은 학교들이네? 여기 한 명 빼고…

이 아가씨는 이 학교가 오데고?

이 장중대는 처음 들어보는데 아이가?”


“2년 젠데예, 요새는 전문대라고 안 한다아입니까. 끝이 대학. 이렇게 끝나면 2년제, 대학교 이래야 4년제 이렇습니더.”


“아, 그렇나? 말장난하고 있네. 어쨌거나 가방끈은 이 아가씨가 제일 기네? 4번?”


“뭐 거서 거 아니겠습니꺼. 아무래도 야무지고 싹싹하면서 일 처리 빠릿빠릿한 그런 아가씨를 뽑아야겠지예.”


안 부장은 모범 답지를 꺼내 들었지만 뭐 어차피 저 말도…

아무래도(무엇보담도) 야무지고(예쁘고), 싹싹하고(날씬하고), 일 처리 빠릿빠릿한(눈치, 센스도 좋은)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라재. 우리는 그런 인재를 뽑아야 한데이. 인재 잘 뽑아서 오늘은 저녁에 내가 회장님 하고 선약이 있으니께, 점심 회식으로다가… 맞다. 그라믄 김 대리야, 지금 한 대리한테 연통 미리 넣어놔. 그 저번에 갔던 버섯전골집 거기 개안턴데 거는 예약 안 하면은 근처 은행 놈들이 다 자리 깔아뿐다이가. 미리 전화해야 돼.”


누군가는 떨어지고 누군가는 선택받는 참으로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이 아저씨들은 점심에 맛집 예약 안 해서 못 먹을까 봐 그게 더 걱정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회생활 잘하는 김 대리다. 사회생활을 잘 한 다는 것은 상사를 향한 존경심 가득한 가면이 벗겨지지 않게 잘 장착하고 속으로 나 혼자 떠드는 생각이 밖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철통 경비를 하면서 어차피 수행해야 할 상사의 지시사항을 최대한 신속 정확하게 답답함 없이 처리해야 함을 말한다. 그래서 나는 이미 상무가 ‘예약 안 하면은…’이라는 말을 꺼낼 때 한 대리에게 문자를 찍는 중이었다. 그만두고 보따리 싸는 중인 경미 씨한테 아직은 네 월급에 포함된 네 일이라며 시킬 순 없으니까… 문자 전송을 방금 눌렀는데 사회생활 나 만큼이나 잘 하지만 쓸데없는 말도 많은 한 대리가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오케이… 근데 난 버섯전골 싫은데…’ 어쩌라고… 당신이 한 상무 되면 버섯전골 끊으세요…


“상무님, 버섯전골집 12시 20분 예약이요. 예약 시간 어기면 거기는 칼 같이 취소되는 거 아시지요?”


“오, 벌써 예약 완료야? 역시 일을 잘해.”


이런 식이다. 내가 이 회사 심장이나 마찬가지인 유가 변동 예측 시스템에, 회사 예산 시스템까지 다 잘해 주고 있는데 결국 일 잘한다는 소리는 ‘버섯전골집’ 칼 예약에서 획득된다.


“1번 면접자부터 들어오라고 할꼐요.”


나는 그 운도 지지리도 없다는 IMF 세대다.

뽑는 회사가 없어 갈 자리도 없는 고학력 졸업생들이 아르바이트로 전전하고 어쩌다 하나 뽑는 자리엔 수 천명이 달라붙었다. 학점도 그냥 그렇고 유학 경험은커녕 어학연수 한 번 안 다녀온 미천한 스펙으로 미국 현지 MBA를 따고 온 남자 지원자들을 제치고 뽑혔을 때 나도 의아했었다. 사람 살아가는데 운을 무시 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드문 경험이었다. 영어도 사투리 억양으로 유창하게 구사하는 우리 회사 사장은 너무 고 스펙인 지원자들은 적성 고려 안 하고 무조건 월급 받는 데가 필요해 온 것 같아 싫다는 배 부른 소리를 하면서 내가 ‘무궁한 가능성’을 지닌 신입이 될 것이라는 관상쟁이 같은 의견으로 우기다시피 해서 뽑았는데… 나도, 내 사수도, 회사 이사들도 대충 안다. 내가 사장이랑 고향이 같아서 눈에 들었었다는 걸… 내 사수는 그게 불만이라는 나에게 정색을 하고 말했었다. ‘그것도 실력이야. 내가 노력하지 않았어도 얻어걸리는 거… 것도 인생의 실력이라고.’ 그런가 보다 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 다행히 사장의 말대로 참 빨리 배우고 배운 거보다 더 열심히 일해주는 착한 사원이 되어 지연으로 뽑혔다는 뒷말들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졌다.


어차피 세상사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지배하니까… IMF 한파로 얼어붙은 취업 시장판을 돌 때 어떤 날은 하루에 면접을 세 번 간 적도 있었다. 면접이란 참 치사하고 부담스러운 시험이다. 고작 몇 분 안에 나는 일방적으로 상대의 질문에 답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그런 상투적인 질문 몇 가지로 사람을 거르고 뽑고 하는 것도 유쾌하진 않다. 내 반대편에 앉은 저 중년들도 사실 나처럼 여기 각 잡고 앉아 땀을 흘렸던 시절이 있다. 그리고 지금 저 쪽에 드디어 앉은 그들은 나 같던 시절을 대부분은 잊었다. 사람은 세월로 변하는 것이 아니고 앉은자리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법이다.


내가 당하는 입장이 아닌 면접은 부담스러울 것도 긴장될 것도 없었다. 오히려 지겨운 느낌이 든다…


“1번 서류 좀 보자.”


그래도 면접자들 기본 서류는 한 번 훑고 들어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 상무는 오늘 안 심심했으면 경리 뽑는 면접 정도에는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다.


“오잉? 희한하네. 이 아가씨는 고향이 진준데 우째 서울에서 여상을 나왔노?”


대한민국 기득권층에 속하는 아저씨들은 대부분 이렇다. 그 사람의 고향이 일 번으로 중요하다. 역시 상무는 익숙한 본인 고향 진주 출신인 1번에게 바로 관심을 표했다.


‘뭐 다섯 명 다 면접 볼 필요가 굳이 있을까… 1번이 이미 진주 출신인데…’


혼자 조용히 속으로 점쳐본다.


“아, 거기 자기소개서 보시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중학교 때부터 신림동에 있는 작은 아부지 집에서 자랐네예.”


“아이고… 저런… 고생했네…”


아… 아니겠다. 오히려 1번 아가씨는 이미 제외되는 분위기다. 지방 유지 아들로 태어나 지역 내 최고 명문고를 거쳐 서울 상대를 나온 상무는 구김살 없이 큰 사람들이 일도 구김 없이 하고 사회생활도 평탄하게 잘하는 법이라고 믿는 주의다. 아니나 다를까, 1번 아가씨의 면접은 적당한 질문 몇 개 오가다 간략히 끝이 났다.


“맞다, 오늘 면접비 경미 씨가 준비하나? 교통비에 3만 원씩 더 넣으라고 했지?”


“네, 아마 준비해 둘 거예요.”


“그래, 추운 날 오니라고 고생들 했는데 거 면접비 안 챙겨주는 그런 양아치 회사들은 진짜 양심 없다이가. 그체?”


“그럼요, 참 이 기름집은 따뜻한 회사예요.”


“하모 하모. 우리는 마 아낌없이 따땃하게 막 땐다이가.”


그건 정말 진심이다. 추운 날 치마 입고 힐 신고 오돌오돌 떨면서 왔는데, 뽑힐 확률보다 떨어질 확률이 더 높다는 게 자꾸만 생각나는 면접 종료 시점에 택시비라도 넣은 면접비 봉투는 나름 위로가 된다. 갑자기 면접비는 법으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뭐 대충 딱 몇 마디 해보면 누가 진국인지 아니까, 우리 짬밥쯤 되면은… 마 그라고 뭐하러 맘 졸이게 하노. 그냥 오늘 면접 끝나면 합격자도 바로 정해서 점심 회식 데리고 가는 걸로. 그런 의미에서 1번 아가씨는 면접비 수령해서 안전하게 귀가하시라고 해라.”


그럴 줄 알았다.

고생했네… 그 말이 결국은 ‘고생 많이 해서 니는 싫다’ 였다는 거…


상무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던 대로 한 대리에게 바로 문자를 보냈다. 답장 대신 바깥에서 한 대리가 1번 면접자를 안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후 역시 두 번째 지령을 하달받은 한 대리가 친절히 문을 열고 2번 면접자를 들여보낸다.


보통 구직자들은 면접용 복장이 한 벌은 있다. 그 한 벌은 보통 본인 형편보다 무리가 되는 수준으로 큰 맘먹고 구비한다. 카드 할부는 현대인에게는 은총이다. 여러 번 망설이다가 12개월 할부로 구입한 그 정장에는 백수들의 꿈과 희망이 서려있다. 이 옷이 나를 좋은 직장으로 데려다주고, 이만한 할부 값 정도는 웃으면서 갚게 해 주리라… 물론… 남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 못 하고 사람이 겉포장이 뭐가 중요하냐며 알찬 속만 있으면 된다고 믿는 답답이들도 간혹 있다. 그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그들이 제한된 십 여분 안에 그 알찬 속을 십분 다 보여 조금은 무신경해 보이는 그들의 복장도 상쇄시켜 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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