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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le Oct 11. 2024

단 하나를 위한…

(6)

“무신… 작은 회사라고 저런 답답이를 견디겠나. 나는 마 저런 아가씨가 아침마다 오늘 주가가 어땠고, 뉴욕 장이 어쩌고 저쩌고 떠들어대면 마 머리 터질 끼다. 짜증 나서…


그나저나… 3번 들어와야 되는 거 아이가? 김 대리야, 아까 버섯전골 12시 20분 예약이라 했재. 아이고야… 지금 30분밖에 안 남았는데? 이라다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그 할마시 칼 같이 취소시키뿌고 은행아들 받을 낀데… 내 제일 싫어하는기 불안한기다이. 한 대리 이놈아 오데 갔노. 2번 손 잡고 집까지 데려다주러 갔나… 야 한 대리!! 니 밖에 있나!!”


상무가 조금 목소리를 높이자 바로 문이 열리더니 당황한 기색의 한 대리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상무님, 3번 분이 화장실을 가셨는데 아직 안 오셔서…”


“뭐꼬, 3번이 아까부터 계속 앉았다 일어났다 두더지 잡기 하던 아 아이가? 아까도 화장실 가는 거 아니었나.”


안 보는 척하면서 다 보고 있다. 그게 상무다.


“예, 맞는데요. 긴장하면 화장실 자주 가는 그런 스타일… 그런 거 같습니다.”


“아, 안 있습니꺼. 왜 꼭 버스 타기 전에도 화장실 한 세 번 가는 그런 스타일…그런갑지예. 순수하니 매우 긴장하는 스타일인갑습니다.”

상무가 진심으로 면접도 안 본 3번을 답답해하니까 그래도 안 부장이 슬쩍 이해를 돕고자 한다.


“아 무신! 순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사회생활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 자주 가는 거 그거 아주 밉상이야. 그 버스 타기 전에 세 번 변소 간 놈, 그놈이 결국 버스 달리는 중에 한 번 더 중간에 세우는 그런 놈이다이. 원래 그런기다. 그런 의미로다가 3번은 계속 마 오줌이나 싸라 하고, 시간도 없는데 빨리빨리 하자. 아예 4,5번 같이 들어오라케라. 어차피 둘 중에 하나 되겠네. 지금 시간이 억수로 촉박해. 김 대리야, 우리 딱 여기서 몇 분에 나가야 그 할마시 데드라인에 안 걸리겠노.”


“음.. 적어도 10분 전에는 나서야 합니다. 

우리 층 높아서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도 감안하셔야 해요.”


“맞제? 20분 예약이라고 딱 20분에 처 기어나가면 절대 안 되제?”


“그러면, 10분 되면 제가 먼저 내려가서 버섯집에 가서 테이블 잡아두겠습니다.”


“뭔 소리 하노, 야가. 니가 왜 그런 험한 일을 해. 것도 우리 회사 귀빈으로 와 계신 분이…”


빈 말이더라도 이런 식으로 ‘내가 너를 얼마나 아끼는데’ 류의 발언을 상무는 적절히 자주 날렸고 속으로 ‘피식’ 하면서도 저런 공치사에 가슴 한켠이 따땃해지는 나는 마름을 섬기는 머슴이다.


“문방구 앞에 두더지 같은 3번은 제끼고, 4번, 5번 합동으로 들어오라케라. 얼른 뽑아서 갸가 버섯집으로 뛰면 되겠네. 첫 업무로다가…”


“아!! 진짜 상무님은 솔로몬이라니까예. 자 그라면 마지막으로 으샤 으샤, 힘내서!! 4,5번 합동 입장!”


면접 보는 사람들이 으샤 으샤 해야지 하품이나 찍찍하고 있던 자들이 왜 갑자기 힘을 내는지 모르겠다.


“아… 그럼 진짜 3번 아가씨는 면접도 보기 전에 … 

제가 말합니까?”


한 대리는 몸을 사리는 스타일이라서 상무한테 백 퍼센트 귀여움을 못 받는다.


“그라몬, 내가 이 먼 데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그 아가씨한테 전달할까?”


“아! 아닙니다… 그럼 그 아가씨도 면접비는 수령을…?”


“줘야지. 오니라고 수고하고 화장실도 그리 자주 갔는데… 아인가? 우리가 물세를 받아야 하나? 하하”


이제 화장실에서 돌아오자마자 말 안 듣는 본인의 방광을 엄청 원망하며 다시 화장실로 눈물을 닦으러 들어갈지도 모르는 3번 아가씨의 운명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도 없어 보이는 이 아저씨들은 오로지 점심 맛집에 사활을 걸었다.


4번과 5번 면접자가 합동으로 들어오고 문이 닫히자마자 반 열린 창가 블라인드 사이로 돌아온 두더지 아가씨의 당황한 몸사위가 보였지만… 원래 정류장 떠난 버스는 후진을 안 하는 법이다…


“지금 면접 시간이 생각보다 좀 지연이 되어서 나머지 두 분은 한꺼번에 들어오시라 했고요, 조금 스피디하게 진행해야 해서 면접관 별로 질문은 하나씩 합니다. 질문은 공통이니까 두 분 다 차례대로 해당 질문에 대답해 주시면 되겠어요.”


이 회사 직원도 아닌 내가 마지막 면접 순서를 정리하고 있다.


“이 전에 있던 회사는 왜 연장 계약 안 했죠?”


김 과장이 먼저 질문을 시작했다. 이직 이유는 항상 중요한 화두다.


“회사가 추구하는 바와 저의 개인적인 이상이 맞지 않았습니다.”


똑 부러지는 5번이다. 하지만 가만히 한 번 더 씹어보면 저 말은 포장이 그럴 해서 그렇지 한 마디로 ‘회사가 돈을 너무 짜게 주면서 드럽게 일만 많이 시켜 자아실현이 힘드므로 때려치웠다.’ 정도로도 해석이 되는 말이기도 하다.


“아, 그래요? 뭐 결혼한 부부도 성격차이로 이혼하고 그러니까 뭐…”


김 과장은 분명 5번의 답이 마음에 안 들어 한 번 더 캐고 싶었지만 상무가 무심한 척 손목시계를 흔들어 2분 전에 본 시간을 또 점검하자 입을 닫았다. 우리는 알고 있다. 어제 위스키로 망쳐 놓은 간을 몸에 좋은 강원도 버섯으로 달래지 않으면 상무는 사흘 밤낮 어떤 이유로든 까탈을 떨 예정이란 것을…


“저는 좀 더 나은 저를 계발하기 위해 영국 어학연수를 6개월 다녀오느라 전 직장을 많은 고민 끝에 그만두었습니다.”


“오! 좋네. 상무실로 외국에서 전화가 많이 오는데 말야. 그거 돌려줄 때도 허구한 날 ‘웨이 러 미닛’ 이거 말고 좀 더 유창하게 대응할 수 있겠네.”


흠.. 꼴랑 6개월 어학연수가 뭐 얼마나 빛날지를 기대하는 이는 없지만 이 여인은 일단 안타를 때리고 들어간다. 전 회사를 욕하지 않으면서 매우 건설적인 퇴사 이유의 견본이다.


“두 분 다 OA 자격증은 있으시네요? 그전에 의사결정 시스템 사용한 경험 있나요?”


어차피 앞의 셋(오줌 싸느라 얼굴도 못 본 3번 포함)은 초반에 제외되는 분위기라 기술 면접은 볼 기회조차 없었다. 이제 이 둘 중에 큰 이변 없는 한 하나 뽑힌다.


“네, 포스나 퀵북은 잘 씁니다.”


또 5번이 먼저 대답한다.


“그건 단순 회계 시스템이지 예산 시스템 같은 의사결정 시스템은 아닌데요? 그리고 질문에 대답은 번호 순서대로 해주세요.”


일부러 까칠하게 굴려고 말 한 건 아니었지만 면접자가 아니라 면접관 자리에 있어보니 사실 눈에 들고 아니고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는 것이 보였기에 한 지적이었다. 오늘 안 되더라도 다음 면접에서는 유념하도록…


“저는 의사결정 시스템은 안 써봤는데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구조는 배운 적 있습니다.”


4번이 아무래도 낫지 싶다.


“김 대리야, 데이터베이스를 쪼매 아는 정도면 가르치면 예산 시스템은 쓰겠제?”


“그럼요. 어차피 저희가 쓰는 이 프로그램을 써 본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데이터베이스 지식이 좀 있으면 훨씬 쉽습니다.”


“오케이…”


상무는 이미 결정은 4번으로 했고, 시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이제 마무리할 모양이다. 눈치가 드럽게 빠른 박 대리가 이미 면접 서류를 덮었다.


“아 그러면… 이제…

아 잠깐만! 마지막은 아무래도 센스 테스트를 해야겠제? 내가 선창 하면 순서대로 가장 어울리는 대꾸를 해보도록 합시다. 자자, 오케이!!”


이건 뭐 그냥 던져 주는 답이다.


99년 겨울에 이 기름집 구호를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은 없었을 거다. 기름집 주유소마다 대문짝만 하게 붙어 있었고, 텔레비전을 틀면 한 30분에 한 번은 들리는 소리… 아니나 다를까 두 여인이 동시에 손을 든다. 조금이라도 높게 들어 먼저 말할 기회를 얻고자 함의 의지 표현으로 숨어 있던 가제트 팔을 2센티 더 꺼내서 조금이라도 옆의 경쟁자보다 더 길어 보이고자 한다.


“김 대리가 말했던 대로 이번은 마지막 문제니 만큼 순서대로 4번 면접자부터! 자, 내가 선창 하면 찰떡같이 대꾸를 하면 되는 낍니다이. 오케이!!”


가방 끈 제일 길고 지금까지 적절하게 잘 대답한 4번 면접자다. 이 문제 통과하면 거의 확정… 그녀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수줍게 웃었다. 자신 있다는 거겠지…


“바리!!!”


갑자기 조용하다. 그녀의 엉뚱한 센스에 웃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아, 내가 말했나? 이 아저씨들이 다 설렁설렁 노는 것 같아도 애사심이 얼마나 남다른지 모른다는 것을… 그들에게는 이 세상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신전과 같은 이 회사다. 그런데 이 유명한 회사 대표 구호를 모르다니… 이 여인을 어쩌면 좋나…


“흠… 이번에는 5번! 오케이!!”


“에수케이!!”


5번은 이가 한 32개는 한꺼번에 보일 정도로 크게 미소 지으며 완벽한 정답을 외쳤다. 그 쉬운 질문에 잘 대답하여 면접관들에게서 기립 박수를 받으며… 사실은 면접이 끝났으므로 잽싸게 버섯집으로 달려갈 준비 중이지만… 


“한 대리!! 밖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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